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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쓴 '내 인생의 책'] 연재를 이어가면서 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됐을까 스스로 묻게 된다.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의 고향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초등학교까지 십리 길을 걸어 다녀야 하는 산골 마을이었다. 바로 남한에서 유일한 고원(高原) 지대인 진안고원이었다. 멀리 그 유명한 마이산(馬耳山)도 매일 보면서 자랐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한 학년이 고작 30여 명, 전교생이라야 15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시골에서 나는 책을 좋아해서 동네 누나들과 형들 책을 다 읽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위에 있는 책이라고 해봤자 사실 교과서가 전부였다. 당시 <어린이 자유>라는 월간 잡지가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반공 어린이잡지였다. 어쨌든 그 잡지가 유일하게 내가 볼 수 있는 재미있던 책이었으므로, 그 잡지 나오는 날만 기다렸다. 그래서 그 잡지가 나오면 밥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책을 보는 바람에 종종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정도였다.

인기 폭발이었던 추억의 '고우영 십팔사략'

그러다가 6학년 때 도회지 전주로 전학을 갔다. 그때 처음으로 이층집을 구경했고 연탄도 처음 봤다. 전학 간 지 얼마 안 된 4월 어느 날, 선생님이 갑자기 어린이날 기념으로 시조 한 편씩 쓰라고 해 처음으로 시조를 써서 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시조가 전라북도 1등으로 뽑혀 교육감상을 받고 아침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낭독도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처음으로 써본 시조가, 그것도 두메산골에서 갓 전학 왔던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나로서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아무래도 책을 좋아했던 것이 도움이 됐으리라.

뒷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유일하게 받은 상은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학생에게 주는 다독상(多讀賞)이었다. 그때 나는 도서관 주변에서 많이 지냈다. 당시 도서관 출입문 쪽에 신문대가 있었는데, 그곳에 학생들이 많이 모였다. 특히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되었던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 만화가 대인기였다. 그 만화가 있는 자리는 10여 명이 서로 앞을 다퉈 보느라 항상 붐볐다. 물론 나도 매일 어떻게든 봤다.

세 곳 출판사를 옮겨다니며 출간된 나의 <십팔사략> 
 
책 '십팔사략' 표지.
 책 "십팔사략" 표지.
ⓒ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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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十八史略)>은 중국 고대시대부터 송나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다. 저자는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역사가 증선지(曾先之)로서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漢書)>를 비롯하여 <후한서>, 구양수의 <당서(唐書)> 그리고 탁극탁의 <송사>까지 당시 중국에 존재했던 정사(正史) 18종 사서(史書) 중에서 사실(史實)이나 사화(史話)를 읽기 편하게 편찬한 역사서다. 그래서 <십팔사략>이라는 책 제목은 18가지 역사책을 간략하게 요약했다는 뜻에서 비롯된다.

<십팔사략>은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많이 읽혀진 책으로서 조선 왕들의 경연(經筵) 학습에도 포함된 역사서다. 멀리 경북 영양에서는 그 고장 출신의 어느 조선시대 여류 인사가 십팔사략을 애독하였다 하여 그 분을 기리는 모임에서 필자가 쓴 <십팔사략>으로 함께 모여 공부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책이란 저자도 잘 만나야 하지만, 출판사도 잘 만나야 한다.

내가 쓴 <십팔사략>은 그간 출판사를 세 번 옮겨다니며 출간되었다. 1990년대 초에 처음 <십팔사략>을 집필해 출간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절판되었고, 필자가 중국에 유학하던 무렵 국내의 한 출판사 요청으로 재출간한 바 있었다. 그러다가 그 출판사가 기울면서 다시 절판이 되었는데, 2015년께 다른 출판사가 필자에게 연락이 와 다시 출간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출판사와는 '궁합'이 잘 맞아 <십팔사략>을 낸 이후 <사기>, <논어> 그리고 <도덕경>을 계속 그곳에서 함께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쓴 <십팔사략>, 생명력 있는 책이고 나와 인연도 대단한 책이다.

태그:#십팔사략,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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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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