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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과 편견 책 표지
▲ 독설과 편견 독설과 편견 책 표지
ⓒ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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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양김씨 단일화 실패, 현대사의 대사건

1987년 시민들의 6월항쟁으로 얻어진 절호의 민주주의 기회는 분명 '공공재(公共財)'였다. 그러나 이를 '사유화'하려는 DJ와 YS 양김씨는 끝내 '단일화'하지 못한 채 노태우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말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비단 군부독재 종식의 지체만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양김씨 단일화 실패의 과정과 이후 '민주 진영'이 극심하게 분열된 것은 물론이고, 군부독재의 피해자이자 '선한 세력'으로만 여겨져왔던 '민주 정치세력'에 대해 대중들이 극적으로 불신하게 됨으로써 민주주의의 대중적 토대는 크게 훼손되었다. 또한 영호남의 극심한 지역갈등이 폭발됨으로써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정상적 발전 역시 심각하게 뒤틀어졌다. 이렇게 1987년 단일화 실패는 현대사의 대사건이었다.

'정치세력'과 '민주화운동 진영'은 달라야 한다

'정치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상이한 존재다. '정치세력'은 언제나 '공공재'를 아무런 의식 없이 본능적으로 '사유화'하려는 세력이다. 그러므로 민주화운동 세력은 당연히 이들 '정치세력'과는 상이하고 또 달라야 한다. 다르지 않고 혼동되어 정치권과 민주화운동이 일체화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결정적인 적신호일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 민주와 정의 그리고 진실은 결정적으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민주 진영'이 '정치세력'에 대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동시에 건강한 견제와 비판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이 땅에도 건강한 '정치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판과 견제는 결여된 채 줄서기와 기회 포착에 능했던 이른바 '386' 혹은 '586'의 실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어차피 정치권이 사유화하고 독점하는 것이 현실의 철칙이고 세상 이치인데 그것을 구태여 따져 '밥그릇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이라면 이 세상에 굳이 정의와 가치 그리고 진실이 존재할 필요도 없으며 추구할 의미도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진보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은 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은 지나친 기득권 옹호의 시각이고 보수주의 그 자체일 뿐이다.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한다면, 반드시 현실의 기득권적 현실을 어떻게든 극복해내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역사이고 진보이며 인간으로서의 책무가 아닌가! 어떠한 현실과 상황에서든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아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뜻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임무일 것이다.

한 선배가 필자를 어떤 일에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추천받은 사람은 필자가 근무처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란 말을 들었다며 거절했다. 이것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중요한 문제다. 솔직히,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서 있는 일자리에서 현장의 문제는 못 본 척 눈 감고 그저 기득권 지키기 위해 순종해왔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지금처럼 왜곡되고 비정상을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 더 '분란'을 일으켜야 사회가 비로소 전진하지 않는가! 심하게 말하자면, 모두 '분란'을 결코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추천받았던 그 사람도 항상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인물인데, 그렇다면 본인은 왜 구태여 그런 '분란'을 일으키는가?

광주 진상규명을 무력화시킨 전두환 사면, '개인적 용서'의 차원일 수 없다

'DJ 비판'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다루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어떤 인물이든 공과(功過)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문제와 민주주의 공헌 등 DJ의 '공(功)' 측면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차고 넘치도록 언급되어 왔다.

DJ의 '과(過)'에 대해 필자는 서두에서 언급한 '공공재의 사유화', '단일화 실패'와 아울러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YS에게 전두환 사면을 요청해 결국 전두환을 사면시켰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개인적 차원의 용서'와 '광주 진상 규명'은 전혀 다른 범주의 문제로서 DJ 개인이 처리할 수도 없고 절대 처리해서도 안 되는 문제이다. DJ는 '국민통합'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광주 진상 규명은 철저하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두환은 그것으로 학살에 대한 자신의 모든 책임이 사면된 양 뻔뻔하게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결국 명분으로 내세워졌던 '국민통합'은커녕 정쟁과 분열은 갈수록 가열화되고 있다. 이 역시 '공공(公共) 문제의 사유화'와 연결되는 문제다.

한편 DJ 집권 이후 IMF의 압력과 함께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양산, 금융시장의 대외 종속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후과는 바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그로 인한 대다수 국민들의 고단한 삶이다.

과유불급, 지나쳤고 또 부족했다

1987년 대선 이후 십수 년 동안 'DJ 문제'는 민주화운동 진영 분열의 핵심적 요인으로 계속 작동했다. 그리하여 DJ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에의 진입을 둘러싸고 민주화운동 진영은 끊임없이 분열하였고 끝내 지리멸렬해졌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필자는 이 'DJ 문제'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정치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을 실천해온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태도였다. 또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라 생각한다. <독설과 편견> 책은 그 결과물이었다. 다만 과유불급(過猶不及), 필자의 비판은 지나친 점이 적지 않았고 동시에 부족한 점 또한 많았다.

근본적 질문과 성찰이 필요한 지점

촛불항쟁으로 국정농단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킨 뒤 정치 공간 역시 '공공재'였고, 그것이 현대 대의제도 하에서 정당에 의해 '사유화'된 측면도 다분하다. 그 취약점들은 지속적으로 노정되어왔다.

우리들은 과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정치'와 '운동'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관계를 지녀야 하는가라는 문제부터 민주주의와 대의제도의 본질과 약점 그리고 인간의 본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어떠한 현실과 조건에 직면할지라도 최선의 노력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적 임무일 터이다.

태그:#독설과 편견,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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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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