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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나온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을 읽었다. 표지 빛깔은 그대로인데 내지는 누렇게 바랬다. '바래다'란 말을 이렇게 딱 들어맞게 써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는 닳은 것을 쓰기는 하지만 색이 바랜 것은 웬만해서는 보기 힘들다.

그의 나이 28살 때 낸 시집이다. 28살 청년이, 결혼 2년차 새 신랑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집은 지식인을 비롯하여 노동자의 가슴을 후벼 팠다.
▲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그의 나이 28살 때 낸 시집이다. 28살 청년이, 결혼 2년차 새 신랑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집은 지식인을 비롯하여 노동자의 가슴을 후벼 팠다.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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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집은 1984년 초판본이다. 이때는 활판인쇄를 했던 때이다. 그래서 색은 바랬어도 인쇄발은 여전히 선명하다. 옛날 학생 때 읽었을 때는 모두 다 좋았다. 시가 길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다 좋지는 않다. 그래도 '신혼 日記' '포장마차' '가리봉 시장' '지문을 부른다' '휴일특근' '노동의 새벽'은 2018년 오늘 읽어도 감동이다. 이 시집이 나온 해가 1984년이니까 그의 나이 28살이다. 28살 청년이, 결혼 2년차 새 신랑이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집은 지식인을 비롯하여 노동자의 가슴을 후벼 팠다.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할아버지 노래패 철부지, 할머니 노래모임 여고시절을 이끌고 계신다.
▲ 고승하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할아버지 노래패 철부지, 할머니 노래모임 여고시절을 이끌고 계신다.
ⓒ 김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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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 고승하의 마음도 움직였다. 고승하는 1979년 33살 나이에 창원대학교 음악학과에 입학한다. 이때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1983년 학교를 졸업하고 남해상고와 마산여상에서 1989년까지 음악 교사로 일한다. 1984년, 그의 마음을 꽉 채운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전태일과 박노해였다. 전태일은 1948년생 쥐띠로 그와 동갑이다. 전태일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불꽃으로 살아 있었다.

그는 <노동의 새벽> 시집 두 시에 곡을 붙인다. '노동의 새벽'과 '고백'이다. 그는 이무렵 '여공일기'와 '친구에게'도 작곡한다. 이 네 노래는 마산창원 지역 집회에서 시위대가 부르는 노래가 된다. 네 노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가 '고백'이다. 이 노래는 <노동의 새벽>에 실려 있는 시 '아름다운 고백'에 곡을 붙인 것이다. 원래 시는 53행이나 되는 긴 시였다. 그는 이 긴 시를 단 여섯 줄로 줄여 곡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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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가요 〈고백〉 악보 ·
ⓒ 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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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날더러 신세 조졌다 한다
동료들은 날보고 걱정된다고 한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나는 신세 조진 것 없네
친구들아 너무 걱정 말라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가
노동운동 하고 나서부터 참 삶이 무엇인지 알았네
이 노래는 마산여상 교사로 일할 때 붙인 노래이다. 그는 노동자로 취직해 나가는 제자들을 생각하며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선물이라도 주자는 생각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28살 혁명가가 쓴 시에 경남 마산의 서른일곱 음악교사가 곡을 붙인 것이다. 물론 악보에 작곡자 이름은 없었다.

고승하는 밑줄 친 곳에 곡을 붙여 〈고백〉을 불렀다.
▲ 노동가요 〈고백〉의 원시 〈아름다운 고백〉 고승하는 밑줄 친 곳에 곡을 붙여 〈고백〉을 불렀다.
ⓒ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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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고승하, #고백, #박노해, #아름다운고백,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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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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