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는 해마다 윤동주 시 작곡 경연대회를 연다. 윤동주 시에 곡을 붙여 참가하는 대회다. 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가면 지금까지 수상한 작품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2012년 금상 란이 비어 있고, "해당 컨텐츠는 기념사업회 사정으로 사용이 불가능합니다."라고 씌여 있다. 이렇게 된 사정이 있다. 사실 이 해 금상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작품('편지')이 나중에 알고 보니 윤동주 시에 붙인 노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안치환이 그의 4.5집 'Nostalgia'(1997)에 수록한 노래 〈편지〉와 관련이 있다.

1997년 4집과 5집 사이에 낸 4.5집 ‘Nostalgia’다. 안치환은 젊었을 때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가 이 세상 노래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노래가 있었다. 이 음반에는 바로 이런 노래가 담겨 있다. 그에게 이 노래는 향수이고 동심이다.
▲ 안치환의 4.5집 Nostalgia 1997년 4집과 5집 사이에 낸 4.5집 ‘Nostalgia’다. 안치환은 젊었을 때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가 이 세상 노래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노래가 있었다. 이 음반에는 바로 이런 노래가 담겨 있다. 그에게 이 노래는 향수이고 동심이다.
ⓒ 안치환

관련사진보기


안치환의 노래 '편지'

안치환의 노래 '편지'는 윤동주의 시 '편지'에 고승하(71, 전 민예총 이사장)가 곡을 붙인 노래로 알려져 있다. 노랫말은 이렇다.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유튜브에서 '안치환의 편지'를 검색하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안치환은 오직 기타 반주 하나에 노래를 부른다. 노랫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방편이다. 그는 가냘프고 애잔하게, 애처롭고 애틋하게, 한없이 구슬프게 부른다. 체념을, 그러면서도 이심전심을 바란다. 그립게, 죽도록 그립게 부른다.

고승하가 '편지'에 곡을 붙이게 된 사연

그런데 이 노랫말은 윤동주의 시 '편지'가 아니다. 고승하의 기억에 따르면 그 사연은 이렇다. 이 노래는 1985년 그가 마산여상 음악교사로 있을 때 작곡한 노래다. 고승하는 한 학생의 공책 표지에 "윤동주 시 '편지'"라고 써 있어 윤동주 시인 줄로만 알았다. 그는 쉬는 시간 5분 만에 교무실에서 곡을 붙이고 바로 그 다음 음악 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불렀다. 학생들은 졸업한 뒤 안치환의 '편지'를 듣고 연락을 해 왔다.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이 노래를 가장 먼저 불렀다고. 위 노랫말에서 2연 "긴 긴"과 "진정", 3연 "긴 긴"과 "행여"는 고승하가 더한 말이다. 그리고 이 노래를 안치환에게 소개한 이는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에 곡을 붙인 최창남 목사이다. 그는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모두들 여기 모여 있구나', '노동해방가', '고마운 사랑아' 같은 노래를 작곡했다. 당시 작곡가 '김용수'로 알려졌는데 최창남 목사가 바로 그다.

앞줄 왼쪽부터 윤영선, 송몽규, 김추형이고, 뒷줄 왼쪽 윤길현, 오른쪽 윤동주다. 안치환의 〈편지〉는 기타리스트들이 자주 부르는데, 그 가운데 ‘오월소년’이 부른 노래(https://blog.naver.com/mayboy7/120174489346)를 추천하고 싶다.
▲ 일본 유학 첫해 여름(1942년 8월 4일) 앞줄 왼쪽부터 윤영선, 송몽규, 김추형이고, 뒷줄 왼쪽 윤길현, 오른쪽 윤동주다. 안치환의 〈편지〉는 기타리스트들이 자주 부르는데, 그 가운데 ‘오월소년’이 부른 노래(https://blog.naver.com/mayboy7/120174489346)를 추천하고 싶다.
ⓒ 윤동주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윤동주의 시 '편지'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 '편지'는 어떤 시일까. 아래에 시 전문을 옮겨 본다.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동시'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네이버나 다음 사이트에서 '윤동주 편지'를 검색하면 안치환의 '편지' 노랫말이 올라온다. 2012년 제1회 윤동주 시 작곡 경연대회에 참가해 금상을 탄 이도 안치환의 '편지' 노랫말이 당연히 윤동주 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사를 했던 사람들도 참가자들(모두 여섯 팀)이 윤동주 시가 아닌 노랫말로 참가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참가자도 심사위원도 모두 몰랐던 것이다. 윤동주기념사업회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제1회 금상 수상작 란을 빈 란으로 해 놓는다. 이런 일을 영어로는 '해프닝'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뜻밖의 사건'이라 한다.

이 시를 쓴 사람을 찾고 싶다

다시 안치환의 '편지' 노랫말을 보자. 시가 아주 절절하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이 시를 쓴 사람을 찾고 싶다. 혹시 이 시를 쓴 시인을 알고 있다면 아래에 댓글을 달아 주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안치환, #편지, #윤동주, #고승하, #김찬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