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재작년 졸업한 영준(가명)이를 만난 곳은 며칠 전 버스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들른 편의점에서였다. 학창시절 마치 애교부리는 딸자식처럼 워낙 살갑게 군 탓에 졸업한 뒤로 어떻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던 아이다. 영준이는 웬만한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할 성적은 됐지만, 당시 가정형편 때문에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지방 국립대를 선택했다.

영준이는 고3 시절 "그 성적에 왜 지방대를 가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친구들 앞에서,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희망한 대학이었다"라며 되레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마는, 또래 친구들 앞에서 가난을 내보이기 싫었던 거다. 그는 이따금 도서관 정보검색대에 와서 지원하려는 대학마다 입시 요강에 실린 장학제도를 맨 먼저 챙겨보곤 했다.

영준이를 만났을 때는 공교롭게도 그의 아르바이트 교대 시간이었다. 영준이가 일하는 편의점 앞에 놓인 간이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캔맥주 하나씩 나눠 마시며, 그의 두문불출 2년간의 대학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맥주를 들이켠 그의 입에서 맨 먼저 튀어나온 말은 "정말 힘들다"였다. 깊은 한숨에 실려 나온 외마디 그 말이 사제지간 오랜만의 만남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대학 2년생 된 제자 "수능 끝나면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영준이는 느닷없이 '로또'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1억이 당첨되는 꿈을 꿨다면서, 돈에 쪼들리지 않고 제대로 된 대학생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더는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맨 먼저 했다는 그에게 대학생활은 시작부터 전혀 녹록지 않았단다. 등록금 고지서를 받는 순간, 대학생인 자신에겐 '공부가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마다 휘황찬란하게 소개된 장학제도의 혜택을 누린다 해도, 부모님에게 기대지 않고 대학을 다닌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고작 2학년인 그도 학비를 대느라 빚을 지고 있는데, 대학 동기 중에 절반 넘는 학생이 자기처럼 빚이 있어 '외롭진' 않다고 넉살 좋게 말했다. 학교에선 다들 '워킹 푸어'와 '하우스 푸어'에 이은, '스터딩 푸어'라며 푸념한단다.

물론,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네 시간씩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는 수백만 원 단위의 학비를 감당할 순 없다. 어차피 등록금은 졸업 후 갚아야 할 빚이니, 적어도 점심값과 통신비 등 생활비만큼이라도 손수 벌어 충당하겠다는 거다. 외제차 타고 등하교하는 '금수저' 문 친구들을 마주칠 때면 부럽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 약해지지 말자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게 된단다.

"선생님, 저희가 참 순진했던 것 같아요. 수능이 뭐 대수라고 수능만 끝나면, 대학에 합격만 하면 '고통 끝 행복 시작'이라 여겼거든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니 중학교 입학할 때부터 오로지 대학입시를 향해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내달렸으니,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죠. 선생님들도 유일한 격려 말씀이 '수능 날까지 조금만 더 견디자'였거든요.

그런데, 대학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과 이따금 만나 술 한 잔 마실 때면 쓴웃음 지으며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해요. '고통 끝 행복 시작이기는커녕 고통 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라고, '대학생활은 고3 시절의 변종된 연장'이라고. 대학 졸업장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인간 대접해주는 신분증이니 솔직히 자퇴할 용기는 없지만, 부모님 등골 빼먹고 손에 책보다 스캐너 쥐는 시간이 더 많은 이런 대학생활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요."

사실 그랬다. 선생으로서 나는 영준이 때도, 또 지금 가르치는 그의 후배들에게도 전가의 보도처럼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자"고만 외쳐왔다. 아이들에게 수능 이후 그들에게 펼쳐질 세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수능에 방해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솔직히 대학생이면 성인인데, 내 소관이 아니라며 쉬이 방관하는 일종의 자기합리화다.

영준이는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전히 그의 책상 앞에는 고3 시절 수능을 준비할 때 아로새긴 좌우명이 붙어있다고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수능을 치를 당시에는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막상 대학에 와보니 그 격언이 강자들이 지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고, 출발선이 다른 경주에서 패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승자의 횡포를 담고 있다는 거다.

"적어도 자신에게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앞에서 나는 '죄인'이 돼 있었다. 연거푸 마신 맥주 탓인지, 그래도 학창시절 내 수업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다며 뽐내듯 한국사 지식을 줄줄 외워대는 그의 모습에 더욱 괴로웠다. 그따위 지식이 무슨 쓸모있느냐며 자조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영준이가 고3이었던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수능 전날 '격려 해달라'는 아이들

시험 임박한 시험장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 시험장에 앉은 수험생들이 시험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감독관의 안내에 따라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시험 임박한 시험장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 시험장에 앉은 수험생들이 시험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감독관의 안내에 따라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제 내일(12일)이면 수능 날이다. 아침부터 고3 아이들 몇몇이 와서 "격려 한마디 해달라"고 졸랐다. 하긴 수능을 하루 앞두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친다고 공부가 될 리 없다. 그럴 땐 차라리 마음을 가라앉힐 겸 가벼운 책을 읽거나 바깥 공기 쐬며 산책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굳이 내게 찾아와 생뚱맞은 격려사를 부탁하는 것도 그저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의 하나일 터다.

"지금껏 잘 견뎌낸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이제 불과 하루도 남지 않았다. 고지가 저기다.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쏟아보자."

그들 앞에서 격려사랍시고 '낡은 레코드판'을 틀어대려니 갑자기 영준이 생각이 났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이들 역시 지금 내일이 지나면 '고통 끝 행복 시작'이라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이들의 꼭 2년 뒤 모습이 영준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하니, 비록 내색하진 않았지만, 적이 괴로웠다. 애써 웃는 얼굴로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꼬옥 안아주었다.

영준이를 떠올리며 정작 그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들에게 교사로서 도저히 말 꺼낼 수 없는 '저주'일 테지만, 머지않아 그것이 현실임을 깨닫게 될 그들에게 숨긴다고, 미룬다고 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 고3들에게 '헬조선'이란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는, 아니 자신에게만은 상관없는 말로 여기고 있을 테니 말이다.

'대학은 이제 지성의 전당도 아닐뿐더러 너희의 미래를 보장해주지도 않아. 어느덧 기업이 돼버린 대학은 값비싼 졸업장을 사고파는 공장으로 전락했지. 곧 스승과 제자가 아닌, 오로지 공급자와 수요자만 존재할 뿐이야.

엄청난 빚을 진 채 대학을 졸업해도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고통에 허덕이는 악순환을 피할 길이 없어. 그런데도 그걸 모를 리 없는 학교와 사회는 '수능만이 살길'이라는 듯 너희 앞에서 연일 떠들어대지. 어쩌면, 수능과 대학입시는 근 20년 동안 기성세대들이 너희 청춘의 삶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인지도 몰라.'

'수능 대박'을 입에 담진 않겠습니다

지난 11일 오후에는 수능 감독관 회의에 참석했다. 주변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위해 한데 모인 자리다. 시험이 치러질 장소를 확인하며 감독관으로서의 유의사항을 숙지하고 공유하기 위한 하루 전 예비 모임인 셈이다. 감독관 경험이 없는 신규 교사들의 경우에는 설명 하나하나에도 귀를 쫑긋 세울 만큼 고3 못지않게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교육청으로부터 파견된 장학사도, 고사장 책임자인 학교장도, 운영 책임자인 교감도 돌아가며 수능의 중요성을 중언부언 강조하고 있다. 교시별 시종과 부정행위의 사례, 반입·소지 금지 품목 등은 하도 많이 들어 누구나 암기할 정도가 됐다. 숙지해야 할 유의사항이 많은 건 단 하나의 이유에서다. '수능으로 한 아이의 인생이 좌우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감독관 회의는 "수능 날 듣기평가 시간 때는 전국의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중지될 만큼 중요한 시험"이라는 말로 마무리됐다. "감독관의 사소한 잘못 하나 때문에 아이의 인생이 뒤틀리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자"는 말도 덧붙여졌다.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그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정말 수능이 아이들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그렇게 중요하냐고. 고작 수능 하나로 결정될 만큼 아이들의 삶이 보잘것없는 거냐고.

어쨌든 수능 날이다. '수능 대박'을 입에 담진 않겠다. 천박하게 느껴져서다. 대신 고3 수험생 모두의 건투를 빈다. 잘 보든 못 보든, 수능 이후에도 고통스러운 삶은 계속된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