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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사회 과목 교사다. 부임한 후 줄곧 아이들에게 한국사 과목만 가르쳐왔는데 처음으로 '외도'를 하게 됐다. 넓게 보자면 지금껏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 과목이 '범사회 교과'로 분류되어왔으니, 남들이 보기에 특별히 이상할 건 없다. 지방의 소규모 중학교의 경우, 수학교사가 과학도 가르치고, 심지어 국어교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실정이고 보면 솔직히 투정부릴 처지는 못 된다.

올해, 나는 한국사 아닌 사회교사다

올해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한국사 과목이 빠진 탓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고1이 치르게 되는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한국사가 이른바 '국영수의 반열'에 올랐는데 무슨 소리냐며 오해할까 봐 미리 밝혀둔다.

어차피 두 학기 동안 배우게 될 텐데, 아무래도 1학년 때 미리 공부하는 것보다 수능을 코앞에 둔 3학년이나 2학년 때 배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전략적인' 판단에서다.

그 덕분에(?) 지난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논란'이 전국적으로 일었을 때도, 적어도 여느 학교에서처럼 개학을 코앞에 두고도 교과서를 선정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겪지 않아도 됐다. 역사 교사로서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든 1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으니 8종 교과서 모두를 꼼꼼하게 살펴본 뒤 선정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 셈이다.

교과서는 받았으되, 대개 과목 교사에게 함께 지급되는 '교사용 지도서'는 받지 못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올해 사회 과목은 원래부터 나오지 않았단다. 하긴 학년 초 교과서 선정이 끝나면, 인근 서점에서 부나방처럼 달려들어 자기 출판사의 것을 부교재로 써달라고 모든 과목의 참고서나 문제집을 책상 위에 쌓아두고 가는데, 어쩐 일인지 사회 과목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사회는 도덕 교과와 함께 폐지됐다가 여론의 반발로 가까스로 회생한 터였다. 함께 사라진 도덕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정부는 사회와 도덕 교과 내용을 중학교 과정과 세분화된 고등학교 선택 과정에 반영할 것이라 계획을 발표했으나, 민주시민교육이 축소되고 되레 국영수만 강화될 것이라는 여론에 밀려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아이들 둘 중 하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꿈이 없다'고 소리죽여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나아가 지금껏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대해 생각해보질 않았다는 뜻일 테다.
 아이들 둘 중 하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꿈이 없다'고 소리죽여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나아가 지금껏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대해 생각해보질 않았다는 뜻일 테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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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한 과목이라 서둘러 급조된 탓일까. 내용이 기존의 사회 교과서와는 사뭇 달랐다. 예전엔 대개 1학년 때 배우는 공통 교과로서, 정치와 경제는 물론, 지리와 역사 분야를 두루 다뤘다.

그런데, 지금 받아든 교과서에는 그런 내용들이 아예 빠져 있거나 소략하다. 겉표지를 가린다면, 무슨 과목인지조차 헛갈릴 정도다. 첫 번째 소단원의 제목이, 적이 당황스럽게도, '나는 누구인가'다.

얼핏 교양 교과로 개설된 진로 과목이나 철학 과목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가 하면, 지금껏 대학별 논술 고사 때 출제된 시험 문제들을 그러모아 책 한 권으로 엮어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회 현상을 평가하는 기준, 개인의 권리와 국가 정책의 충돌, 기부 문화와 삶의 질, 지역 개발과 환경 보전 등 소단원의 제목마다 자못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두 번쯤 깊이 생각해본 주제들이니 생소할 것까진 없어도, 그걸 아이들 앞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더욱이 처음 맞닥뜨린 과목이니 마치 갓 부임해온 신임교사처럼 긴장되었다. 하나 위안 되는 게 있다면, 수능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목이라는 점이다. 전공인 한국사야 십 수 년 간 가르쳐온 터라 익숙하긴 해도, 아이들에게 수능을 대비시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사회 과목 교사로서의 첫 수업, 신입생 아이들 앞에 섰다. 전공이 아니라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고, 함께 배우며 공부하자고 말했다. 국영수만 해도 버거울 텐데, 수능과 무관한 '기타' 과목으로서 학습 부담을 주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교과서 내용을 꺼리 삼아 자유롭게 대화하고 토론하며 한 해 동안 즐겁게 공부하자고 부탁했다. 그렇게 새 학년이 시작됐다.

이번 주 공부한 단원은 '생애 발달과 생애 설계'에 관한 꼭지다. 생애 발달 단계별 과업을 이해하고 생애 설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생애 주기'니 '발달 과업'이니 하는 낯선 용어를 잠깐 접어두고, 꿈 이야기로 수업을 열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의 꿈이 뭔지를 물었다.

과학자, 의사, 교사, 프로그래머, 변호사, 전문경영인 등 다양한 직업들이 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꿈을 직업과 등치시켰고, 하나같이 단답형이었다. '의사가 되어 오지로 가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식의 그 흔한 '장문형' 답변이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직업의 이름을 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게 진정한 꿈 아니겠느냐며, 예시 삼아 내 꿈이 뭔지 들려주었다.

"선생님의 꿈은 세계 일주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가슴을 뛰게 한다. 그 경험을 교실에서 너희들과 나누고 싶다."

그 말에 아이들은 '나이도 든 데다 이미 교사가 된 마당에 무슨 꿈이냐'며 농을 걸기도 하고, '그런 게 무슨 꿈이냐'며 의아해하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꿈은 '장래 희망'이고, 곧 직업을 일컫는 말이라는 지독한 편견에서 나온 반응이다. 짤막하게나마 구체적으로 직업을 거론한 경우는 그나마 낫다.

아이들 둘 중 하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꿈이 없다'고 소리죽여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나아가 지금껏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대해 생각해보질 않았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도 그들의 책상 위에는 사회 교과서 아래에 예외 없이 두툼한 수학 참고서와 영어 단어장이 놓여 있었다.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다보면 없던 꿈이 생겨날 것이라 여기는 걸까.

꿈 이야기를 하며, 학습 목표였던 생애 발달 단계별 과업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자연스럽게 설명되었다. 교과서에는 청소년기에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가치관과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일이라 적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학교는 아이들에게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입시를 위한 문제 풀이 시간조차 부족하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며 눙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당장 중간고사에는 출제를 해야 할 텐데, 문제를 풀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조롱하게 될까 걱정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수행해야 할 발달과업에 대해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했다. 바로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자신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며 이미 늦었다고 비웃듯 말했다.

"선생님, 발달 단계별 과업 수행에 실패하면 불행을 느끼게 된다면서요. 바로 전 단계인 아동기라면 초등학교 때를 말하는 걸 텐데, 저흰요, 그때 올바른 생활습관과 도덕성을 학습했던 기억이 없어요.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영어, 수학 학원을 다녔고, 그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 못 간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어요. 이 시기, 가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친구도 학원에서 사귀고, 저희 또래에게 공동체 정신을 함양시켜준다는 놀이란 컴퓨터 게임밖에 없어요. 그런데, 생애 발달 단계별 과업은 무슨."

교과서에 나온 대로 '이상'을 가르치는 교사와, 이미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닳아버린 아이들이 그렇듯 멋쩍게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궁색한 답변만 늘어놓으며 수업시간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한편으론 올 한 해가 정말 재미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철든' 아이들과의 좌충우돌 만남과 대화를 통해 올 한 해 나도 한 뼘 성장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올해 나는, 한국사가 아닌, 사회 과목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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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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