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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70주년 전승절 기념행사와 한국 외교의 방향

지난 9월 3일 중국의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戰勝節)가 천안문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한국과 러시아를 비롯 30개 국가의 정부수반과 19개 국가의 정부대표(총 49개 국가대표단)가 참석하였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주중대사가 정부대표로 참석했고, 일본은 참석하지 않았다.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열병식에서는 70주년을 상징하는 70발의 예포가 발포되고 시진핑 주석이 기념연설을 하였다. 200명의 군인들이 청일전쟁 121주년을 상징하는 121걸음을 인민영웅기념비로부터 행진해서 오성홍기를 게양했다. 중국 역대 최대규모로 거행된 열병식에는 1만 2천여 명의 인민해방군과 500여 대의 무기장비 및 200여 대의 군용기가 동원되었다.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려는 시진핑의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거행한 전승절 70주년의 국제정치적 의미부터 우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승전을 기념하는 행사는 원래 유럽에서 오랫동안 거행해 왔다. 독일이 베를린에서 항복승인서에 조인한 1945년 5월 9일을 기념해서 유럽은 전쟁의 폐허위에 미래지향적인 평화를 건설하자는 기념식을 거행하여 왔다. 러시아 역시 이날에 전승기념일을 거행하고 있다.

유럽의 전장이 아닌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은 이러한 행사를 거행하고 있지 않다. 당시의 패전국 일본이 현재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기에 항일전승일을 기념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원래 항일전쟁을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를 해왔다. 중국은 9월 3일에 전승절 행사를 한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고 우리에게는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8월 15일에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그날보다는 미 군함 미주리함 선상에서 공식 항복문서가 조인된 9월 3일에 항일 전쟁 승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70주년을 기념해서 이전에 강조하던 항일전쟁 승리보다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의 의미를 부각해서 이 행사의 대외적 의미를 전세계적 차원에서 확장하고자하는 의도가 부각되었다.

시진핑의 신형대국론에 입각한 전승절 행사

종전의 항일전쟁 승리의 의미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의 의미로 확장해서 행사를 치른 중국의 의도를 시진핑의 기념사와 행사 내용에서 읽을 수 있다. 시진핑은 기념사에서 중국은 30만의 병력 감축을 발표하는 등 평화를 지향하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그러나 기념사의 많은 부분을 항일전쟁의 평가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사에 할애하였다. 이는 역사청산에 진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일본의 아베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미일동맹을 축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도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시진핑은 과거 케네디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전쟁의 위협으로 언급했던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을 재론하면서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 엄존함을 지적하였다. 열병식에 동원된 최첨단 중국제 무기들을 통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G2로 상징되는 초강대국 중국이 자신의 '근육질'을 자랑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폄하될 수 있으나, 자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대응한 것이라 풀이된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다방면으로 추진해 왔다. 미국에게 '신형(新型)대국관계'를 제안하면서 자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정책 수정을 요구해 왔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설을 통해서 미국이 배제된 아시아 국제금융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중국 내륙의 경제발전과 연관된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은 과거의 실크로드 교역에 착안해서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가들과의 경제권역 확장을 기하고 있다.

이른바 '주변외교'의 강화를 통한 초강대국 위상의 확보가 진행되는 맥락에서 이번 전승절 기념행사가 치러졌고, 시진핑은 이번 행사와 그 열병식을 통해서 중국의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전승절 참석의 진정한 의미

이번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한국 정부수반의 참석은 중국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양국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와 항일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설득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마침 발생한 목침지뢰 폭발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된 남북관계에 중국이 배후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남북의 8.25 합의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기사가 전송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전승절 기념행사에 초대된 정부수반 중 미국의 동맹국으로 유일하게 참석한 한국의 정상과 유일하게 단독으로 오찬을 했고, 한중 양국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열병식 참석을 둘러싸고 국내의 보수 언론과 동맹국 미국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라는 카드를 제안하면서 일본과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서 역사청산 문제를 이유로 그동안 답보된 한일 및 중일 정상회담을 진행시키고자 한 것이다.

국내 언론들은 다소 과장적인 보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높게 평가하고자 했다.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박 대통령의 위치, 시주석과의 오찬 등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을 초청받은 김정은을 대신해서 참석한 북한의 최룡해 노동당 비서 처우와 비교해서 보도하면서 마치 한국이 북한보다 중국으로부터 우선적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이제 중국의 국익은 한국이 북한을 대체한다는 논리로 발전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의 한국 정상 초청은 전승절 기념행사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에 보내는 메시지의 중요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사실 한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입장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없다고 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평화통일'과 같은 외교수사들은 중국이 항상 사용하던 용어들이다. 목침지뢰 폭발사건을 계기로 합의한 '한반도 긴장을 초래하는 어떤 행위에도 반대한다'라는 시진핑 발언도 중국 입장에서는 남북한과 미국을 모두 염두하는 외교적 수사이다.

청와대는 정상회담 직후 한중일 정상회담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데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외교부의 공식적 발표에 이러한 내용은 빠져있다. 중국은 그동안 일본과 역사인식과 영토(디아오위/센카쿠) 문제로 3국 정상회담의 개최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잔치인 전승절 기념행사와 열병식 참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얻은 외교적 성과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한중 정상회담으로 국내의 지지율이 세월호 이후 가장 높은 54%에 이르렀다는 점은 박 대통령의 방중 동기를 추측케 한다.

물론 한국의 경제적 의존도가 비대칭적으로 높아가는 중국의 참석 요구에 불응한다면 한국의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이 쥐고 있는 레버리지는 많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이러한 현실에서 경제계의 요구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외교 순방이 국내 지지율을 반등하여 끌어올리는 능력을 보여왔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행사와 열병식 참석이 가져온 공(功)은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어떤 보수언론과 한미동맹절대주의자들도 한국 정상의 이 중국 행사 참석을 비판하지는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이유에서 중국의 이 기념행사와 열병식에 참석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향후 한국의 정부수반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국익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확보한 셈이 되었다.

앞으로의 한국 외교 방향

이와 관련하여 이번 한국 정상의 전승절과 열병식 참석을 대중 편향적인 외교로 간주하여 대미관계를 우려하는 관점은 이제 버려야 한다. 한국의 대 강대국 외교를 더 이상 편가르기식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에게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배척하는 대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 중화문명권과 미국에게 편승전략(bandwagoning)을 통해서 국가이익을 도모해온 역사에서 유래된다. 과거의 편승전략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타율적이고 강요된 것이었다. 한국의 존재와 역할은 미중의 패권경쟁이 무력충돌이라는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는 일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 모든 국가들이 당면한 책임과 역할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중국과 통일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다라는 전망도 원론적으로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뿐만 아니라 관련국들과의 통일 논의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이 진행된다는 전제 조건 속에서 현실적이고 의미있는 논의로 진전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을 고립시키고 배제시킨다는 신호로 읽혀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보다 당당한 입장과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기념관 리모델링에 든 7억 원과 같은 재원을 이제 더 이상 중국정부의 재정에 의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는 군사력의 근육을 과시하는 대신 평화의 의미를 강조하는 행사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이 기념식이 군사력을 자랑하는 시대착오적인 행사로 더 이상 비춰지지 말아야 중국이 원하는 소프트 파워는 제고될 것이다.

이 행사에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의 국가들 정부수반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중국정부는 곱씹어야 할 것이다. 전승절 기념행사를 유럽의 평화를 위해 거행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교훈을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되새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차창훈 교수는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전승절, #종전 70주년, #시진핑, #박근혜,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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