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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전쟁 법안에 대해 일본 시민 사회는 아베 퇴진과 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안보 투쟁 이후 일본 사회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일본 시민 사회도 놀라고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은 전쟁 법제를 반대하는 일본 시민 사회의 움직임과 이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전쟁 법안 및 전후 일본 정치사에 대해 이영채 일본 게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의 글을 2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일본 시민 사회의 움직임은 한반도의 평화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 기자 말   

2012년 12월 등장한 제2차 아베 내각은 제1차 아베 내각과는 달리 여러 측면에서 세련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먼저 헌법 개정과 안보법안 등의 정치적 과제보다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을 우선시하면서 국민의 지지기반을 강화했다. 둘째, 미디어 전략을 철저히 활용해 NHK를 비롯한 주요 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셋째, 소위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과거 좌파 운동권 세력을 측근으로 활용하면서 반대파들의 논리에 적극적인 대항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넷째,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의 멤버를 내각에 전면 기용해 각 분야에서 보수 우익의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섯째, 제2차 아베 내각은 정책 결정의 프로세스에서도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전문가로 이뤄진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몇 개월에 걸친 회의 끝에 정책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제2차 아베 정권의 성격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 관련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 관련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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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아베 담화를 준비하면서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6개월간 검토를 거친 후 정책 제안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아베 담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이 위원회의 내용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원회는 이미 멤버의 구성에서부터 아베 총리의 최측근이나 보수 우익 인사를 임용했다.

정책 결정 프로세스를 밟고 있는데도 여론에 대한 압력과 조작, 그리고 의회를 무시한 다수의 폭력적 정책 집행은 아베 내각을 독재 정권, 비민주주의 정권, 의회 파괴주의 등으로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의 보수 우익 세력은 제2차 아베 내각을 두 번 다시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파악하고 있다. 모든 정책을 타임테이블을 맞춰 놓고 타협 없이 시나리오대로 실시하는 일방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보법제의 성립은 이들의 숙원인 헌법 개정과 군사적 자립 노선을 위한 포석이다. 지난 8월 14일 발표된 아베 담화는 교육과 역사 인식에 있어서 정치적 자립을 기획하는 보수 우익의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아베 담화가 장문의 추상적인 문장인데도 분석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한국 식민 지배 거부' 아베 담화의 의미

첫째, 아베 담화는 역대 정권의 담화를 계승했다고 하지만, 그 본질적인 성격은 전혀 계승하지 못했다. 담화를 분석할 때 침략 전쟁의 성격, 식민 지배의 인식, 반성과 책임의 표현이 핵심 요소다. 아베 담화는 '침략 전쟁'에 대해 일본의 주체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세계 열강들의 식민지 각축이 일본으로 하여금 전쟁에 참여하게 했다는 외부 요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통렬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반복적으로 이러한 마음을 표현해 왔다"는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아베 총리 자신의 언어로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하는 형태는 피했다.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전쟁과 식민지 지배로부터 결별해야 한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주어가 없는 문장이 많다는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연합군과 중국에 대해 전쟁에 대한 사죄는 밝히고 있지만,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은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아베 담화는 한국에 대해서는 교전 국가가 아니었고 자신들의 식민지 영토였다는 인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910년의 강제 합병에 대해서도 강제성은 일체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식민 지배였다는 인식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아베 총리의 인식은 전후 보상 과제에 대해서도 연합군 포로와 중국에서의 일본 민간인 잔류, 시베리아에서의 일본군인의 억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했지만, 동일한 문제에 연관된 조선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조선인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전후 보상의 추가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담화 전체에서 두 곳에서 언급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아베 담화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일체 사용하지 않은 채, 아베 총리가 유엔 및 미 의회 연설에서 언급한 전쟁과 여성의 보편적인 피해 문제로 대체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의 중요한 포인트였다는 점에서 해결의 구체성이 보이지 않는 담화였다는 측면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 담화는 전후 보상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었다. 다만 이후 '아시아여성기금'을 실현했다.

이외에도 아베 담화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탈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ODA의 군사적 전용을 추진하면서도 '적극적 평화주의'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아베 담화는 이처럼 전체적으로는 모순된 표현이 많고, 아베 총리가 역대 발언해 왔던 내용과의 괴리도 심각하며, 실질적인 정책이나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진심 어린 담화라고 보기가 어렵다.

아베 담화에 대해 일본의 지식인과 언론조차도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책임도 없고, 문제 의식 및 철학도 부족한 담화'라고 지적하면서 '이럴 거라면 무엇하러 발표하였는가'라며 혹평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의 안보 법제는 '위헌'

아베 담화는 안보법제 정국과 맞물리며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내용으로 변질됐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이 추천한 헌법 학자조차 안보법제는 위헌이라고 지적했으며, 안보법제 처리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생각보다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국회 심의 일정을 9월 말까지 연장해, 아베 담화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회기 중의 담화가 돼 버렸다.

이러한 연유로 아베총리는 안보법제의 통과를 위해서도, 야당과 주변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지지 세력을 결집해야 한다는 당위 속에서 결국 타협적인 담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 담화 속 "러일전쟁은 아시아의 식민지 해방에 영향을 주었다"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극우 세력에 대한 배려와 '식민지, 침략, 반성'이라는 단어를 곳곳에 삽입하면서 미국 및 중국에 대한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한국에 대한 배려는 일체 보이지 않는 담화였다. 이러한 아베 담화의 내용에 박근혜 정권의 대일 외교가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베 담화는 애초의 기획과는 달리 외부의 압력과 주체의 흔들림에 의해 '실패한 쿠데타' 작품이 돼버렸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실패한 쿠데타지만, 한국만은 정확히 확인 사살한 잔인한 작전이었다.

아베 내각과 미국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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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담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원칙론적 입장을 볼 때 의외의 반응이었다. 이것은 9월 이후 전개되는 대중, 대미 외교와 함께 대일 외교에 대해서도 정상회담을 포함한 관계 개선을 기대하겠다는 포석으로 엿보인다. 한일 정상회담을 실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나쁜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국제적인 시각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안보법제와 북핵 위기를 포함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직결돼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재편이 단일 전장 개념에 입각한 한·미·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시점이다. 한국의 대일 외교가 역사 문제만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운 지점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베 내각의 안보 법제 강행처리는 아베 내각의 적극적인 의도라기보다는 미국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의 헤노코로의 미군 기지 이전과 안보 법제의 처리는 아베 내각의 생명줄과 같다.

만약 이 두 사안의 해결이 어려워 보이면 아베 내각의 연명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아베 내각이 '묻지마 강행 처리'의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미국의 압력과 그 압력을 이용하면서 안보의 자주 노선을 추구하려는 보수 우익세력의 이중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일본의 보수 세력은 일체의 무력 행위를 금지하는 헌법 9조의 틀 속에서 1950년대 중반부터 개별적 자위권에 한해서는 헌법의 해석을 바꾸면서까지 그 행사를 인정하기 위해 합리화했다. 1960년대 미일안보조약 개정 이후에는, 자위대의 미군 지원에 대한 무력 행위를 개별적 자위권 영역의 틀 속에 꿰맞추기 위해 여러 특별법과 궤변으로 일관해 왔다.

이러한 궤변이 국민에게 통용되었다. 일본 국민이 헌법9조의 틀 속에서 개별적 자위권적인 무력은 제한적으로 사용되더라도 총체적인 전쟁 참여가 가능한 '집단적 자위권'은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는 자민당 내의 보수 세력의 기본 원칙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을 설득 하지 못하는 아베

하지만 아베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은 위헌이다라고 주장하는 법제처의 관료를 해임하고, NHK의 사장을 우익 인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나서 내각 결정의 형태로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한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 아베 총리의 방미 후 합의한 미일 신 가이드라인은 일본이 동맹국 미국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제3국에 대한 선제 공격까지도 가능케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안보 법제가 통과되고 나면 헌법 9조에 의해 일본은 제한적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논리는 야당 및 국민을 더 이상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및 일본의 극우 보수 세력에게 아베 내각이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정권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이번 기회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야당 및 시민운동 세력에게도 안보법제의 실현은 전후 일본의 평화 국가를 위한 기본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미국의 전쟁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전쟁 국가가 된다는 점에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인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위기에 빠진 아베 내각을 박근혜 정권이 역사 문제로 고립시키지 않고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해 구하고자 하는 것은 한일 간 관계 개선의 측면보다는 안보법제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를 표현하는 것이며 한·미·일 보수 동맹을 강화하려는 의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베 담화의 분석에서 보이듯 한일 정상회담 속에서 아베 내각이 한국에 양보할 수 있는 역사 인식 및 전후 보상 문제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 30일 10만 명이 넘는 일본 시민이 국회 앞 정문에서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음에도, 아베 내각이 추진하는 안보법제의 폐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것은 시민의 데모 역량이 부족하기보다는, 첫째 의회 내에서의 자유주의 보수 세력의 역량이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점, 둘째 자민당과 야당 전체를 통틀어 현재 아베 총리를 대체할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점, 셋째 야당과 시민운동의 집회가 전쟁 반대 및 민주주의 수호의 구호는 선명하지만,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난 일본인들의 한계

학생긴급행동(SEALDs :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 등 젊은 층의 운동 속에 '전쟁은 싫다, 평화가 좋다', '민주주의 지키자'라는 슬로건은 존재해도, 아시아 침략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슬로건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 젊은 대학생들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등장한 이후 보수적인 역사 교육을 받은 세대고 또한 근현대사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세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젊은 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학생긴급행동의 운동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일본의 전후 사회 운동의 역사 속에서 이들의 사회 운동이 어쩌면 마지막 희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중 조직이나 정치 조직에 속하지도 않고 역사 교육 및 사회 과학의 학습도 받지 않은 비정치적인 이들 세대가 '민주주의'의 과정에 문제 제기를 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대중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안보법안의 성립 이후에도 일본의 평화운동 및 사회 운동을 이끌어 갈 대중적 기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의 사회 운동이 진정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현 외로 이전하고, 미일 안전 보장 조약을 개정하고, 안보법안을 폐기하는 건 이러한 일본의 안보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한국 전쟁의 종전과 한반도의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할 때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 대학생을 비롯해 평화 운동이 한반도 분단 모순의 해결과 아시아 냉전 구조의 해체를 일본의 평화운동의 우선적 과제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한반도 내의 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될 때가 일본의 안보 법제 폐기를 위한 한일 연대 운동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새로운 사회 운동에 한국의 젊은 대학생이 연대하고 이들과 함께 손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한국 대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의 폭주 때문에 안보법제는 성립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한일 간의 새로운 평화 세대들의 연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면,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고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실현해 동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라는 공동의 과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이 글을 쓴 이영채 교수는 일본 게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입니다.



태그:#평화헌법, #평화협정, #집단자위권, #가이드라인, #평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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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 경제통상, 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입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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