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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립과 국군창설 이후 60년 넘게 유지되어 온 징병제는 근래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징병제의 장점이자 존립의 근거가 되는 몇 가지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즉, 징병제는 많은 병력을 값싸게 공급하는 공평한 제도이지만 시대의 변화가 이를 더 이상 지지해 주지 않게 되었다. 군사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현대전은 군사력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함을 하나의 상식으로 알고 있다.

징집제의 문제점과 모병제의 한계

다수의 젊은이들을 상당기간 군대에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하는 것이 국방비를 절약해주지만 국가경제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공평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징집대상자들과 그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에 대하여 안심하는 부모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징병제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모병제는 징병제의 그러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모병제가 비싸고 위험하다는 인식이다. 징병제의 유지를 주장하거나 모병제를 채택하더라도 장기간에 징모혼합제 등을 거쳐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을 선호하는 논거는 대개 시기 상조론으로 환원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경제적 측면에서 모병제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현재 한국군의 70% 정도를 점하고 있는 의무복무병사들을 모두 직업 군인화하여 민간사회 해당 연령대의 평균봉급을 지급한다면 국방비를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경제가 이를 감당하기엔 이르지 않은가?

경제논리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안보논리이다. 모병제의 가격을 낮추려면 병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100만 대군을 지척에 두고 아무리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병력을 쉽게 줄일 수 있단 말인가. 아직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사회적 측면에서도 모병제의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 누가 군대에 가려 하겠는가? 결국 빈부의 차이가 병역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계급적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가 분열되지 않겠는가? 아직은 우리 사회의 의식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공역제 도입을 위한 7대 제안

모병제의 반대논리가 시기상조론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는 징병제와 모병제의 장점을 적절히 배합하는 징모혼합제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아마 미래에도 그것이 순수한 모병제보다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징모혼합제와 함께 병행 실시를 검토할 수 있는 것이 공역제이다. 공역제는 통일 이전에 징모혼합제를 뒷받침하는 더 보편적인 제도이다. 징모혼합제의 대상은 현재와 같이 의무 복무하는 병사로 국한하고 부사관과 장교의 충원제도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아이디어의 뼈대는 향후 적절한 기간 안에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공공영역에서 1년 정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공역(公役)제도'를 징모혼합제와 함께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일단 병력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또한 공역제도가 병역제도를 부분적으로 보완하도록 하고 의무 복무기간은 국민 개인의 생애계획에 특별한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 공역제 도입을 위해 7가지를 제안하고 한다.

50만 병력 유지와 전국민 의무복무 1년

첫째, 상비 병력의 규모는 향후 '적절한 기간' 내에 약 50만 명 수준, 이후 여건에 따라 추가적으로 감축한다.

병력규모의 재설정은 모병제이든 징모혼합제이든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 된다.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과적 성공여부를 가늠하게 해준다. 이 글에서는 현재 63만여 명의 병력을 향후 '적절한 기간' 내에 5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고(이 중 병사는 약 30만 명), 이후 다시 수 년에 걸쳐 적절한 규모로 더 감축할 것을 제안한다.

어느 정도의 병력규모가 최적인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은 불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지상 전투에서 공격 측이 방어 측에 비해 3배 이상의 병력이 있어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믿음이 있었다. 현대에도 이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보수적으로 생각하여 최소한 북한 지상군의 1/3 정도의 육군을 유지한다고 가정한다. 처음엔 주로 육군에서 병력을 감축하고 해공군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커지도록 한다. 이후 병력을 추가로 감축할 때에는 육해공군과 해병의 비율을 최적화한 후 일정 비율로 감축한다.

둘째, 공역제도는 전 국민에 대하여 의무복무 기간을 1년으로 한다.

신체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공동체를 위한 봉사로서의 공역(公役) 의무가 지워진다. 복무기간은 1년으로 하되 시기는 개인의 희망에 따라 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다. 이 정도면 현대인의 생애주기 상 학업이나 경력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공역의 종류는 공공기관업무 보조, 사회봉사, 자연 및 환경보호, 교통 및 경범죄 감시, 질서유지, 노인 및 장애인 돌봄, 교육 및 의료봉사 등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지정하고 융통성 있게 운용한다. 따라서 공역 의무 면제자는 극히 적을 것이며 형평성 논란도 거의 없앨 수 있다. 아마 기피(시도)자도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장애인도 등급에 따라서는 특별한 분야에서 공역 복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역의 중요한 영역이 바로 평상시 정규군에 대한 지원이다. 중무장이 필요 없는 군 시설의 경계나 군의 단순 행정업무 등을 포함한 '전투근무지원' 업무의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공역 복무의 근무지는 복무자의 희망을 일차적으로 고려하고 근무시간은 출퇴근제를 원칙으로 한다. 복무자에게는 식비, 제복, 숙소(출퇴근 불가시)와 최소한의 용돈을 제공한다. 단, 전투근무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복무자들에게는 복무기간을 약간 단축해주거나 업무에 따라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공역복무 대상자 중 지원자로 병역 복무

셋째, 징모혼합제에서 병사의 징병부분은 공역복무대상자 중에서 신병으로 충원하되 복무기간을 단축해주고 일정한 급여를 지급한다.

사실 병역자체도 크게 보아 공역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적절한 기간 경과 후 총 상비 병력이 50만 명 수준이고 이중 병사가 30만 명 수준이라고 가정할 때, 공역복무 대상자 중 지원자를 병역에 복무케 하되, 지원자가 소요(예컨대, 1년에 10만 명 정도)를 초과할 경우는 선발하고 부족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징집한다.

지원자 또는 선발된 자에게는 인센티브로서 복무기간을 단축해 줄 수 있다. 따라서 군복무를 하더라도 현재와 비교할 때 복무기간이 1년 이하로 대폭 짧아진다. 또한 병역 복무자에게는 일정한 급여(예컨대, 직업군인 병사 초봉의 절반정도)를 지급하고 병영생활을 하도록 한다. 병역복무자는 보병과 같이 단기간의 훈련으로 충분히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분야와 주특기에 근무하면서 전투기량을 연마하고 일정 금액의 용돈을 저축하여 제대할(공역을 마칠) 수 있다. 더 전문적인 주특기에서는 의무복무 후 계속 직업군인으로 근무할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충원되도록 해야 한다.

공역을 필한 병사를 직업군인으로 모집

넷째, 징모혼합제에서 병사의 모병부분은 공역 복무를 필한 자 중에서 직업군인으로 모집하고 의무 복무기간은 2년 정도로 한다.

직업군인 병사는 공역을 필한 자 중에서 선발하되 가능하면 유사한 주특기에서 병역 복무한 자를 우선시한다. 선발된 자에게는 상병계급으로 복무를 시작하여 병장에서 2년의 의무복무를 마치고(공역복무기간까지 합하여 약 3년), 이후에 자격을 갖추고 본인이 원하면 부사관이나 장교로 계속 진출할 기회를 부여한다.

따라서 병사의 병력구조는 대략적인 숫자를 사용하자면, 공역으로서의 병역의무자 10만 명과 직업군인 병사 20만 명이 되며, 매년 병역 의무자 10만 명이 입영하고 제대하며, 직업군인 병사는 10만 명이 상병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병장 10만 명이 제대하는 모양이 될 것이다. 직업군인 병사의 초봉은 일반사회의 같은 연령대 평균봉급에 비해 크게 못하지 않은 정도로 한다. (예컨대, 연봉 1,000만원에 다양한 수당과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병영생활, 주거, 출퇴근 근무여건 등을 대폭 개선하고 2년 이상 장기근속하는 자의 안정적인 생활과 직업적 전문성의 향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추가비용 3조원 소요되지만...

닷섯째, 새로운 병역 제도의 추가적 비용은 대략 3조원이며 공역제도의 효과는 그보다 클 수 있다.

추가적 비용은 우선 병역제도 변화에서 대략 현재의 의무병(주로병사) 급여 총액과 감축된 규모의 병사(공역의무 복무자와 직업군인 의무복무자)에게 지급되는 새로운 봉급 총액간의 차액이 될 것이다. 약간 보수적인 계산을 위해 현재 병사의 급여는 0으로 하고 병력 규모가 50만 명으로 감축될 경우 병사의 수는 30만 명이 되고, 간부의 총 급여에서는 변화가 없다고 가정한다. 또한 병사의 급여는 공역 의무 복무자 연봉 500만원에서 직업군인 병장 1500만원까지로 하고 계급별 인원 분포가 균일하고 따라서 평균 1000만원으로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추가적인 (병사) 인건비는 1000만원× 30만 명 = 3조원이 된다. 이는 2014년 국방예산의 약 8%, 정부예산의약 0.8%, 2013년 GDP의 약 0.25%에 해당한다.

제도의 효과측면을 보면 우선 병력감축으로 인한 절감효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고(단기적으로는 시설 변화 등으로 오히려 추가비용 발생가능), 의무복무기간의 단축과 함께 민간 노동력이 증대되고 대학생들의 교육의 연속성이 덜 훼손될 것이다.

일반적인 공역의 시행은 그 자체의 운영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비용절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효과의 정량적 산출은 변수가 많고 가정 사항들에도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공역제도와 연계된 병역제도의 시행으로 지금까지 발생했던 병역관련 여러 가지 비리와 불평등, 고통과 불만, 신념에 의한 거부와 인권투쟁 등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사회적 비용도 절감될 것이므로 전체적인 효과는 금전적인 비용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요컨대, 공역제도는 거의 완벽한 형평성을 가지고 있으며 복무기간과 내용은 누구나 감당할 만하고, 공동체 정신의 함양에도 무형의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비군 및 동원제도가 필수

여섯째, 병력감축과 징모혼합제의 성공을 위해 강력한 예비군 및 동원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상비 병력의 감축은 탈냉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으나 여기엔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군의 현대화가 함께 추진된다. 군의 현대화는 유형적으로 무기와 장비를 첨단화하면서 반드시 운영체계의 고도화를 병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쟁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 이므로 병력의 감축은 특별히 신중한 접근을 요하며 감축된 병력을 유사시 충원할 수 있는 예비적인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단시간 내에 전투원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상태로 준비해 두어야한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국가의 군사운영체계 또는 전쟁대비 계획의 일부로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유지 하느냐에 대하여 군과 정부와 민간사회가 공통의 인식을 가지고 협력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잘 정비된 예비군 제도는 유사시 상비군과 함께 국방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원 집단을 제공하며, 비전투 인원과 장비, 시설 등의 동원제도를 평시에 국민의 큰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련해두면 그것이 곧 국가의 총체적인 전쟁수행과 전투작전능력으로 환원될 것이다.

안보의 정치화 배제

일곱째, 안보는 결국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접근 할 문제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중요한 문제들은 모두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다. 병역제도 문제는 그 외연이 병력감축, 군현대화, 국방개혁, 국가 안보로 넓어갈수록 급격히 이념, 정파, 계급 등을 달리하는 집단 간의 감정적 논쟁으로 비화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한다는 점에서 놀랄 만큼 유사하다.

다른 것은 오직 이익의 내용과 그것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는 근거 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나 알만큼 뻔한,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그래서 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래도 그것밖에 없는, 결론이 있다. 안보는 결국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이 글을 쓴 문장렬 교수는 국방대학교 교수입니다.



태그:#병역제도, #징병제, #모병제, #징모혼합제, #공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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