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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밤 한화백의 작업실 앞 가족 음악회
 초여름밤 한화백의 작업실 앞 가족 음악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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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저녁, 석양이 막 앞산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헤이리의 갈대광장으로 이어진 생태축인 녹도(綠道)는 차의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의 산책은 절로 걸음이 느려지고 느린 걸음으로 녹도를 걸으면 발밑의 침목(枕木)이 참 알맞은 간격으로 내 발을 맞는다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야외에서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여름밤, 누가 정원에서 바이올린 연습이라도 하는 건가?"

고요한 산책길은 다람쥐가 나무를 타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립니다. 그 악기소리는 한스갤러리의 뒤뜰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음악회를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스피크를 양쪽으로 배치하고 작은 콘솔을 뒤쪽으로 뺀 다음 수채화 물감이 묻은 작은 이젤에 마이크도 설치해놨습니다. 금방 한상구 화백의 작은 스튜디오 앞 데크가 무대로 바뀌었습니다.

한상구화백의 책상용 이젤이 마이크 거치대가 되었습니다.
 한상구화백의 책상용 이젤이 마이크 거치대가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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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청소년들은 목청도 가다듬고 악기의 조율도 마쳤습니다. 이날 모이기로 한 가정은 모두 네 가족. 한 화백의 두 딸 영주와 진주는 공교육에 참여하고 있지만 세 가정은 자녀들을 홈스쿨링으로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십수 년을 함께 아이들의 교육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막역한 이웃이 됐습니다.

공교육이나 좀 더 특화된 대안학교를 택하는 대신, 홈스쿨링이라는 모험적인 자녀교육방법을 택한 부모들은 서로의 경험을 모으고 나누기위해 함께 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집에서 혼자 학습 계획을 세우고 혼자 그 계획을 실행할 수밖에 없는 자녀들이 서로 동료가 되고 선후배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게 됩니다. 이런 연합 활동은 홈스쿨링 과정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교우관계를 확장하고 사회성을 신장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한 화백이 헤이리로 이사온 것은 10년 전. 도시를 떠난 삶을 지켜보던 한 가족이 두 달 전에 파주로 이사했습니다. 한 가족은 애초에 파주에 살고 있었으니 세 가족이 파주로 뭉쳤습니다.

이날 밤은 작년에 미국으로 대학을 진학한 홈스쿨링의 동료자매인 지유와 지수가 방학을 맞아 귀국함으로 만들어진 가족들의 재회 모임을 '한가족 음악회'로 꾸민 것입니다.

▲ . 무대화가의 작업실 뒷뜰에서 이루어진 가족음악회. 지유와 지수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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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마다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정해 두어 가지 음식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정원에서 함께 나누는 팟럭 파티(Potluck Party)로 구성했습니다.

한 가족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각 가정에서 각자 두 접시의 음식을 만들어와 테이블에 놓으니 어떤 뷔페도 부럽지 않습니다. 작년에 미국으로 갔던 지유와 지수가 여름방학을 맞아 돌아왔습니다. 밀린 얘기가 보를 이루었습니다.
 한 가족에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각 가정에서 각자 두 접시의 음식을 만들어와 테이블에 놓으니 어떤 뷔페도 부럽지 않습니다. 작년에 미국으로 갔던 지유와 지수가 여름방학을 맞아 돌아왔습니다. 밀린 얘기가 보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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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교통정체 때문에 늦게 도착한 한 가족이 합류하고 식사를 마치자 사위가 적당히 어두워졌습니다. 화실의 실내등과 데크의 야외등만으로 무대조명을 감당했습니다. 정원 조명은 담장이 없는 헤이리 건축의 음덕으로 녹도의 가로등이 대신했습니다. 초름한 불빛이 오히려 무대에 집중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머리에 붉은 종이꽃 한 송이를 꽂아 포인트를 준 진주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처음으로 음악회의 사회를 맡게 됐습니다. 누가 맡긴 게 아니라 본인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진주는 6살 되던 해에 서울을 떠나 헤이리로 이사 왔습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시골소녀의 화려한 밤무대(?) 데뷔인 것입니다.

이제 적당히 어두워졌고 음악에 집중할 시간입니다. 난생 처음, 사회를 맡은 진주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선은 관객을 향하는 대신 들고 있는 메모지에 시종일관 꽂혀있습니다.

6살 코흘리개로 이사 온 진주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또래의 세인이도 숙녀 티가 납니다. 파주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지요.
 이제 적당히 어두워졌고 음악에 집중할 시간입니다. 난생 처음, 사회를 맡은 진주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선은 관객을 향하는 대신 들고 있는 메모지에 시종일관 꽂혀있습니다. 6살 코흘리개로 이사 온 진주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또래의 세인이도 숙녀 티가 납니다. 파주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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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쪽지에 적힌 내용을 읽는 것조차 떨리고 말은 느려졌습니다. 하지만 청중들은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진주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습니다. 첫 곡도 본인이 맡았습니다. 언니 진주의 건반 반주에 맞추어 클라리넷으로 넬라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소화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머리위의 붉은 꽃만큼이나 발그레해진 얼굴이 비쳤습니다.

진하와 성하의 자작곡 듀엣, 우찬이의 첼로, 주은이의 바이올린, 성하의 피아노, 진하의 보컬….

번갈아 연주자와 관객이 되는 가족음악회
 번갈아 연주자와 관객이 되는 가족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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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엄마, 아빠들의 아카펠라와 재즈 즉흥연주 등 장르를 경계 없이 넘나드는 레퍼토리는 밤이 깊어지는 것을 잊게 했습니다.

지유와 지수가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1학년의 자매는 미국에서도 사실은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한국에 귀국한 후에 조우한 것입니다.
 지유와 지수가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1학년의 자매는 미국에서도 사실은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한국에 귀국한 후에 조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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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진주가 사회자의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자신의 동갑네기 친구 세인이에게 건판을 한곡 연주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세인이는 진주보다 3년 뒤에 이사 왔지만 진주의 7년 단짝입니다. 유일한 헤이리 주민의 게스트가 된 셈입니다.

진주는 사회자의 직권으로 친구 세인이에게 찬조출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진주는 사회자의 직권으로 친구 세인이에게 찬조출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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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자매·부부·모자·모녀·부녀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어떤 음악회보다도 친근하고 편안했습니다.

▲ . 초여름밤의 가족음악회. 한상구, 한영주 부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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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마음껏 기량을 발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내 진주가 폐막을 알렸습니다. 연주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다시 연주자가 되는 이 한가족 음악회의 막간 게스트는 여름날의 풀벌레소리였습니다.

한가족 음악회 Repertoire
-한진주_넬라판타지아(클라리넷)
-장서영 외 1명_외국인의 고백, 악동뮤지션
-홍지유_Blackbird, The Beatles
-정주은, 정우찬, 장서영_죄짐맡은 우리구주
-홍지우, 홍지수_The Chain, Ingrid Michaelson
-정주은_Cantabile(바이올린)
-유진하, 유성하_자작곡
-홍지유, 홍지수, 반주 홍윤성_ O Worship the king
-유진하, 유성하 아버님_성악
-정우찬_Waltz Sentimentale(첼로)
-유진하, 유성하_Love is so amazing, 제이레빗
-김세인_알리샤키스, If I ain't got you
-한영주, 한상구_바이올린 기타협연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한가족음악회, #한스갤러리,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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