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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게 존재하였던 가족이란 것이, 세월을 두고 한 명 두 명 줄어들어, 지금은 나 혼자라 생각하니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보였다. ... 무슨 SF같다. 우주의 어둠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중에서

 

적막. 고요. 빈자리. 누군가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 그것은 시간의 상실로 다가왔다. 5분이나 걸렸을까. 죽음을 처음 마주한 것은 중학생 무렵. 함께 있던 사람이 먼저 자리를 나섰는데 한 시간 후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거리로 나가 택시를 타고 트럭에 짓눌려 5분 후 사망. 정말이지 무슨 SF같았다. 현실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죽음이란 것.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죽음은 머리를 멍하게 하고 감각을 마비시켰다. 어둠. 그야말로 우주의 어둠. 누군가 죽었다는 것조차 실감나지 않는.

 

장례식에 참석해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 없이 계속되는 일상들. 그런데 한 달 후. 길을 걸어가다 눈물이 흘렀다. 구석으로 가서 울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늘 보던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 아무리 기다려 봐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존재가 삶 가운데 차지하던 시간이 사라지는 체험. 후유증이 생겼다. 누군가 택시를 타고 떠나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영영 사라져버릴 듯 한 불안감. 상실감이란 무서운 거였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나처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마음이 아프겠지. 사랑을 나누는 존재라면 더욱 더 아프겠지. 그렇다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차라리 좋을지도 몰라. 섬처럼 혼자 떨어진 채로. 사랑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시절이 내게도 찾아왔다. 그러나 어쩌면 비겁한 변명. 내 자신의 부족함과 상처를 감추고 싶어 하는 비겁함. 용기가 부족한 것에 대한 변명.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그 시절, 섬이 되겠다던 나는 결국 죽기로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날 위해 울어주며 슬퍼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고 느끼던 시절에 나는 죽기로 했다. 아마도 그런 외로움과 절망과 공허 속에선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술을 마시고 목을 맸다. 마지막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초침 소리. 언젠가 소년지에서 주인이 죽으면 시계도 같이 멈춘다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내 시계는 나와 함께 멈춰 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산 지 얼마 안 된 시계인데 안 멈출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릴 적부터 시달려온 만성 기관지염. 1년 동안 맞은 엉덩이 주사 때문에 의자에 앉는 것이 너무 아파 학교 가기가 두렵던 초등생 시절부터 나는 발작처럼 기침을 했다. 길게는 한 시간도 넘게. 때로는 하루 종일. 커 가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있는 고통.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한 괴로움과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목이 너무 간지러워 미칠 지경. 죽기로 하는 마당에 발작이 시작됐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목구멍이 너무나 간지러워 긁고 싶어 버둥거리다 보니 떨어졌다. 왠지 코미디 같아서 웃음이 피식. 또 서글퍼져서 눈물이 찔끔.

 

투신을 하려고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제외. 언젠가 아파트에서 어느 미치광이가 사람을 칼로 난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니 바닥에 흥건한 피가 거울이라도 되는 듯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비춰대며 철퍽거렸다. 꽤나 오래도록 공기 중을 떠돌던 녹슨 쇠 비린내. 칼을 든 남자의 표정. 죽음을 마주한 피해자의 눈동자. 이후 일 년 동안 그 순간의 기억에 시달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것보다 더 피가 많이 나겠지. 토마토처럼 으깨어져 사방으로 튀길지 몰라. 그럼 누군가는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 없는 이웃들인데도 민폐를 끼치는 건 싫었다.

 

미수에 그친 자살 이후 열심히 살기로 했다. 무서운 게 없어졌다. 하지만 일만 알고 살아도 허전하긴 마찬가지. 다시금 찾아오며 깊은 상처를 내기 시작하는 공허. 갈등하고 있을 때 구원처럼 찾아온 사랑. 가슴 깊은 곳의 열망과 갈증을 채워주는 단 하나의 존재. 어쩌면 사람은 사랑을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 그렇다고 느끼고 있다. 굳이 Live와 Love가 한 글자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내 심장을 뛰게 만들고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있을 때 비로소 삶의 이유도 생기는 것이리. 물론 알고 있다. 이 달콤한 순간도 결국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내게도, 그녀에게도 언젠간 죽음이 찾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유서 대신 연애편지를 남기고 싶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사랑이 끝난다 할지라도. 나에게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준 그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미쳐 표현하지 못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다. 내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해 주고, 내가 미안해 할 때 더 크게 미안함을 전하는 그녀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이 세상 단 하나의 존재가 충격과 상실감에 슬퍼하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용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응모글


태그:#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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