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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국 꽃들이 흐드러진 망우리 공동묘지의 어느 무덤
 금계국 꽃들이 흐드러진 망우리 공동묘지의 어느 무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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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죽음만큼 공평한 것도 없다. 가난하고 못난 사람이나 최고의 권력을 누린 대통령을 지낸 사람, 엄청난 돈을 모은 재벌들도 피할 수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만큼 불공평 한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100세를 넘겨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나자마자 죽기도 하고 10대, 20대, 30대, 또는 한창 일할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맞이하게 될지 맞는 순서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죽음, 그러나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가까운 친지의 부친 중에 95세에 세상을 떠난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지의 부친이 93세 때 가벼운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면서도 또 너무 불공평한 죽음

문병을 간 친지들이 "어르신은 평소 건강하셔서 충분히 백수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 위로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자 이 노인이 "백수라? 그럼 앞으로 몇 년 안 남았네?"하며 섭섭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결국 노인은 2년 후에 세상을 떠났지만 삶에 대한 욕구는 90을 넘긴 나이에도 변함없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말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80세, 90세를 넘긴 노인들도 대개 마찬가지다. 그래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항상 아쉬움과 슬픔을 남긴다.

그런데 죽음을 아주 초연하게 맞이한 젊은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같은 회사 후배사원의 부인이었다. 회사 후배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서로의 집을 오가기도 하며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후배 부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술자리도 함께 어울리곤 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아주 중증인 3기였다. 죽음의 그림자가 단란했던 가정을 뒤덮었다.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짜리 남매를 둔 30대 중반의 엄마에게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후배의 가정은 순식간에 암울한 어둠이 드리웠다.

얼마 후 대학병원에서 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 동안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랐다. 후배의 가정은 항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후배 부인은 아직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죽을 수 없다며 투병생활에 진력하는 모습이었다. 후배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술도 거의 끊다시피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부부가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30대 중반 후배 부인에게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그들의 기도는 항상 길었다. 예배가 끝나고 다른 교인들이 기도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도 그들 부부는 자리에 엎드려 있곤 했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난 어느 날 후배의 가정에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치료받던 대학병원에서 수술한 직장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수술환자의 수술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후배와 부인은 암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지만 절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게 3개월여가 지난 어느 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의 부인이 위독하다는 전갈이었다. 이웃들 몇이 함께 마지막 문병을 가자는 것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후배부인이 입원하고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후배부인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이 중환자실이 아니었다.

병실로 들어서자 후배가 부인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우리들을 맞았다. 매우 침울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부인은 코에 산소 호흡용 호스를 끼운 채 잠들어 있었다. 후배는 조금 전까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방 잠들었다고 했다.

후배는 병실 밖으로 잠깐 나가 담당의사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병실 밖에서 후배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가자 환자가 두 눈을 살그머니 뜨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뜻밖의 표정이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문병 온 남편 선배와 이웃들에게 미소를 짓다니,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서는 죽음의 그림자나 슬픔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이제 곧 갈 거예요. 저기 천국으로요, 지금 제 눈에는 천국이 보이고 있어요."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온함과 기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우리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 저 없어도 건강하게 잘 자랄 거예요. 새 엄마 랑도 잘 지낼 거구요. 전 걱정 안 해요. 애들 아빠도 곧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여보! 슬퍼 하지마, 나 이 세상보다 훨씬 좋은 천국으로 가니까."

우리들이 어린 아이들도 있는데 힘을 내라고 위로하자, 환자가 침착하게 또박또박 하는 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웃들 몇 사람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그녀가 그런 이웃들에게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보내며 위로까지 하는 게 아닌가.

초연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은 후배 부인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초등학생 남매를 두고 죽음을 맞는 30대 중반의 엄마가 어떻게 저리 초연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단 말인가. 문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이웃들은 조금 전 병실에서의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몇 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더니만, 신앙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먼."

믿기지 않는 불가사의한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오는 이웃들의 결론은 신앙심이었다. 신앙의 힘이 젊은 엄마에게 초연한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한 힘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시어머니 돌아가실 무렵 되니까 팔십네 살이었는데도 죽지 않게 해달라고 자식들을 얼마나 달달 볶던지. 4남매가 얼마나 시달렸는데."

40대 이웃아주머니는 문득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나 후배 부인이 평온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는 표정은 내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후배 부인은 잠자듯 아주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요즘도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오를 때나 정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하는 이야기 단골 메뉴가 바로 그 후배 부인의 이야기다. 그 후배는 아직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부인이 죽은 지 2년 후에 전 부인과 비슷한 외모와 나이의 다른 여성과 재혼하여 정답게 살고 있다. 두 남매도 반듯하게 잘 자라 사회에 진출했다는 후문이다.

덧붙이는 글 |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응모 글입니다-



태그:#초연한 죽음 , #후배 부인, #직장암, #이승철, #30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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