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화해

고집스런 쇄국정책에서 보듯이 편향적 보수주의자 흥선대원군은 일찍 고아가 된 만만한 며느리 민씨를 왕비로 책봉한다. 초심을 잃어 버린 경복궁 중건은 백성들의 부담이 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쇄국정책으로 국제관계가 악화 되면서 대원군은 어려움에 처한다.
명성황후는 반대 세력을 결집하여 고종의 친정을 선포하고 시아버지 대원군과 대립한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친정을 주도 하면서 섭정 10년의 대원군과 그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여 진보적 정책으로 일본과 수교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조선을 탐하려는 주변국들의 간섭은 심해지는데 그들의 대립과 갈등은 계속 된다.

일본과 수교한 명성황후는 일본을 밀어 내려 청나라와 러시아를 끌어 들이고, 쇄국정치 하던 대원군은 일본을 활용하여 재등장 하였으나 일본의 술책에 이용 당하며 명성황후가 궁중에서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한다. 결국 대한제국은 한일병합 된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갈등과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지역 갈등이나 빈부 격차문제.남북 문제에 대한 소모적 이념논쟁, 사대주의적 외교 문제 등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대립은 예나 다르지 않다. 비효율적인 우리 내부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본을 극복할수 없고 일본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선진화는 없다.

이제라도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화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2.남산 장충동에는 장충단이 없다

서울 남산 장충동에는 장충단은 없다. 억세게 굴러온 돌이 장충단을 폐하고 공원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청계천에서 굴러온 돌 수표교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수표교/ 장충동. 장충단비 옆 동대입구역 인근
 수표교/ 장충동. 장충단비 옆 동대입구역 인근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을미사변때 일본으로 부터 명성황후를 지켜내기 위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국한 많은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어진 장충단은 지금 남산에 없다, 우리는 반복하여 독도는 우리땅 이라고 철없이 외치면서도 남산에서 장충단은 이름조차 사라졌다.

3.장충단비는 눈물에 젖어

장충단비에는 비둘기 눈물만 흐르고,그의 영혼을 위로하는건 소나무 뿐이다.

 장충단비.1900년(광무4년)/ 장충동. 수표교옆 3호선 동대입구역 인근
 장충단비.1900년(광무4년)/ 장충동. 수표교옆 3호선 동대입구역 인근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장충단 지역에는 남산위에 철갑을 두르던 소나무 단지 조차 없다. 제자리 잃어버린 장충단비는 비둘기의 배설물이 눈물처럼 흘러 내린다,차라리 비둘기 배설물이 정겹다. 주인잃은 장충단비는 그나마 무심히 자란 몇그루의 남산소나무가 위로해 줄뿐이다.

4.남산 장충단이 독립기념관이다

서울 남산에는 사라진 장충단 뿐아니라 대한제국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에게 빼앗긴 잃어버린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목숨 바친 분들의 기념비나 동상 등 자료가 많다.

남산의 동쪽, 장충동 지역에는 장충단비 뿐아니라 일성 이준 열사 동상, 순국열사 이한응 기념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기미년 3.1 독립운동 기념탑, 유관순 열사 동상, 춘강 박승희 기념비, 외솔 최현배 기념탑, 만해 한용운의 님의침묵 시비 등 독립운동 자료가 많다.

남산자락 서쪽 지역에는 백범 광장에 김구 주석 동상과 성재 이시영 동상, 남산도서관 옆에 안중근 의사 동상과 기념관(신축중), 김소월 시비 등이 있다. 이들이 장충동 쪽으로 옮겨지고 서울 시내에 산재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보완 된다면 장충단 지역은 역사적 독립기념관이 된다.

장충동 지역에 독립운동 기념비 등 자료가 많은건 장충단 때문이다. 장충단은 일본으로 부터 대한제국을 지켜내기 위한 우리 민족의 처절한 몸부림의 장소이고 대한 독립을 위한 희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남산에 있는 동상과 기념탑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연대별로 모았다.
(자료가 많아 1910년 한일병합을 기점으로 전편 "장충단에서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화해"/"빛나는 보수 황석영,아름다운 진보 이문열". 후편 "장충단에서 김구주석과 이승만대통령의 화해"로 나눠서 게재한다)

5.조국을 그리워하며, 순국열사 이한응

주영국 서리공사로 을사조약 강제 체결로 외교권을 빼았기자 조국을 그리워 하며 자결한다.(1905년 순국)

 순국열사 이한응 기념비/ 장충동. 장충단비 안쪽 동국대 정문 우측
 순국열사 이한응 기념비/ 장충동. 장충단비 안쪽 동국대 정문 우측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6.대한제국이여 영원하라, 이준 열사

        
 이준 열사 동상/ 장충동. 열사 이한응 기념비 옆
 이준 열사 동상/ 장충동. 열사 이한응 기념비 옆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이 황제의 뜻이 아니고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헤이그 만국평화 국제회의에 전하고 을사조약을 파기하려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들의 냉대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한제국을 그리워하며 자결한다(1907년 순국)

7.안중근 의사/ 장충단을 위하여

일제가 장충단을 폐하고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어 사꾸라나무 심고 민족정신 말살의 장소가 되었던 건 잘 알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 남산 서편 백범 광장 위쪽.남산도서관 옆
 안중근 의사 동상/ 남산 서편 백범 광장 위쪽.남산도서관 옆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서 사살한다(1909년) 일제는 흉악스럽게도 우리의 장충단 지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국민 추모대회를 연다. 장충단에 추모 사당을 짓고, 그후에는 사꾸라 만발한 절(박문사)까지 세워 추모했다.
일제강점기는 나라만 빼앗긴게 아니다 우리의 정신과 전통 문화마저 빼았으려 했다.

8.역사적 의미로 본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장충단 

기념관을 지을때 설립 장소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 할때 의미는 두배가 된다 
남산도서관 옆에 새로 신축되고 있는 안중근 기념관은 장충단 지역이 제격이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현재 안중근 동상 뒤쪽에 신축중인 기념관은 장충단 지역에 건립 될때 그 의미는 두배가 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현재 안중근 동상 뒤쪽에 신축중인 기념관은 장충단 지역에 건립 될때 그 의미는 두배가 된다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일제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앞세워 장충단을 민족정신 말살의 장소로 이용했다. 안중근은 말하고 있다, 제군들아 너희가 장충단의 의미를 아느냐, 이제라도 장충단이 복원되고 내 동상과 그 기념관이 박문사 절터 위에 세워 진다면 나는 비로서 조국을 위해 죽어간 영혼과 함께 하리라.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남산르네상스는 남산의 역사적 의미와 사실 복원에 충실해야 한다.

9.소나무는 남산을 떠나지 못하고(3)

우리는 잘자란 남산소나무 한그루도 지켜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갈등과 대립은 계속 되고 있다. 사철 푸른 소나무는 이기적인 보수와 기회주의 진보를 모른다. 소나무는 소모적인 이념 대립과 갈등도 없다. 영호남에 산재한 소나무들은 지역 갈등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의 끝없는 갈등과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소나무는 남산을 떠나지 못한다.

 남산소나무/ 왜 잘렸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너를 지키지 못했다.
 남산소나무/ 왜 잘렸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너를 지키지 못했다.
ⓒ 이진수

관련사진보기



10.빛나는 보수 황석영, 아름다운 진보 이문열

아름다운 진보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철없는 악풀에 흥분하며 우측만으로 치우치던 소설가 이문열은 편향적 보수 신문의 찬양에 고무된듯 정치에까지 발을 담가 편가르기 한다. 쇄국적 보수주의자 흥선대원군의 그림자가 보인다.

대표적 진보 소설가 황석영의 변화를 두고 요즘 설왕설래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국 순방길을 수행한것 부터 노선이 중도냐 아니다, 변절이냐 아니다 의견이 분분하다. 진보적 정책으로 일본과 수교했으나 청나라와 러시아를 끌어 들였던 명성황후의 모습이 보인다.

보수가 존경받지 못하는 건 축적된 가치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가 존경스럽지 못한 것은 새로움이 하늘을 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슬기롭게 변화할 때가 되었다. 하늘 향해 소리내어 걱정하는 조국이 있고 소신있게 살아온 축적된 진정성이 있다면 황석영의 빛나는 보수로의 변화와 이문열의 아름다운 진보로의 변화와 역할을 기대해 본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화해의 길로 가는건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다. 남산 장충단이 복원되는날 아름다운 진보 이문열과 빛나는 보수 황석영이 함께 손잡고 서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 나는 당신의 죽음을 원망한다 그리고 슬퍼한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여
위에 글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전에 준비된 글과 사진이다. 추모열기와 더불어 일부에서 제기하는 화합과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와 필자의 생각은 다른 부분이 많다. 6월1일 게재 예정인 다음글 "장충단에서 김구주석과 이승만대통령의 화해" 이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시점에서 본 우리사회의 갈등 해소와 화해에 대하여 별도로 글을 게재할 예정이다.                            

남산르네상스/ 소나무는 남산을 떠나지 못하고(10부작 예정임)
1부/ 소나무는 죽어서도 남산을 떠나지 못하고
2부/ 우리는 장충단에서 벚꽃 축제를 한다
3부/ 빛나는 보수 황석영,아름다운 진보 이문열
     (장충단에서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화해)
4부/ 장충단에서 김구주석과 이승만 대통령의 화해(6월1일 게재예정)
5부/ 노무현대통령 서거 시점에서본 갈등과 해소(6월 예정)
6부/ 남산 팔각정에서는 서울이 보이지 않는다(6월 예정)
7부/ 남산은 알고 있다
8부/ 남산다리 아래로 구름이 흐른다
9부/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팔도소나무까지
10부/ 남산르네상스

덧붙이는 글 |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 해소에는 양식이 살아있는 지식인의 역활이 중요하다 생각하던 중인데 소설가 황석영의 변절에 대한 논란이 있어 시류를 쫓아 제목까지 바꿨다. naver 블로그에는 원래 구상했던 제목 "장충단에서 명성황후와 흥선 대원군의 화해"로 게재 한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