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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우리집 뒷편 대숲 한쪽면이 잘려나갔다
ⓒ 송성영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을 보내고 대전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닭장을 빠져나온 병아리들이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병아리들을 닭장 안에 넣어 놓고 한 마리 두 마리 셈 해 보니 3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요 며칠 닭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도독고양이가 물어 간 것이 분명했습니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비탈 밭을 둘러보기 위해 집 뒤편 대나무 숲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우두커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땅 속 깊이 박힌 말뚝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대나무 숲 한 쪽이 뭉툭 잘려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대나무 숲과 집 뒤편 사이에는 20여 평 남짓한 손바닥만한 밭이 있습니다. 그걸 일구기 위해 밭주인이 대나무 숲을 망가뜨린 것이었습니다.

밭주인은 트랙터(혹은 관리기)를 몰고 왔던 것입니다. 트랙터 길을 내기 위해 20여평 남짓 밭 면적만큼의 대나무 숲 한쪽 면을 인정사정없이 까뭉갰던 것입니다. 그것도 일 년에 단 한 차례, 들깨를 갈아 먹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바람을 머금어 기분 좋은 '대숲 음악'을 연주해 주는 대나무 숲. 산자락을 타고 무시무시하게 불어제치는 태풍조차 온몸으로 휘감아 주었고 겨울이면 찬바람을 막아 주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쏟아냈습니다.

대나무 숲은 우리 식구들만의 기분 좋은 숲이 아닙니다. 대나무 숲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냅니다. 기분 좋은 마음을 담아갑니다. 그 좋은 마음으로 좋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좋은 생각으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내줄 것입니다.

하지만 잘려나간 대나무 숲을 보면서 나는 팔 한쪽이 잘려나간 처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처참한 기분은 알게 모르게 세상에 번져 나갈 것입니다.

▲ 망가지기 전의 대숲 돌담길
ⓒ 송성영
대숲이 망가지는 바람에 늘 푸른 대숲을 끼고 도는 삼삼한 돌담길도 사라졌습니다. 거기다가 농약까지 살포했습니다. 밭 주변의 쑥이며 들꽃들이 싯누렇게 말라 비틀어 가고 있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봅니다. 우리 식구가 이곳에 이사 온 지 딱 10년 하고 두 달 쯤 지났습니다. 5년 전쯤에는 울울창창하던 앞산 숲이 사라졌고 그곳에 밤나무 묘목이 심어졌습니다.

또한 3년 전 부터는 우측 산자락이 깎여 택지가 조성되었고, 좌측 산자락조차 야금야금 깎여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10년 동안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었던 뒷산자락 아래 대나무 숲마저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어처구니없어 했습니다. 녀석들은 언제 가져왔는지 삽을 들고 나왔습니다. 밭 한 가운데다가 대나무 가지를 심고 있었습니다. 대숲을 망가뜨린 밭주인에게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이 씨, 누가 이렇게 망가뜨린 거여, 에이 씨, 나쁜 삐리리~."

녀석들은 엄마 아빠 앞에서 욕설이 튀어 나올 때는 '삐리리'로 대신하곤 하는데, 엄청 화가 났을 때 내뱉는 욕설이기도 합니다.

▲ 시위용으로 대나무 가지를 심고 있는 우리집 아이들
ⓒ 송성영
나는 아이들이 밭 한가운데 시위용으로 심어놓은 대나무 가지를 보면서 돈키호테를 떠올렸습니다.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 등에 올라탄 돈키호테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돈키호테는 분명한 길이 있다지만 나는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옆 산을 까뭉개는 투기꾼들과 싸워왔듯이 대숲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밭주인과 싸워야 하는가? 하지만 옆 산이 내 소유의 산이 아니었듯이 대숲도 내 소유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대숲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것입니다.

나는 평생을 싸워 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얻어맞지 않기 위해 싸웠고 머리통 굵어서는 제 고집을 내세우기 위해 또는 나름대로 정해 놓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싸웠습니다. 결혼해서는 아내와 서로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부질없이 싸웠습니다. 자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저 추악한 자본가들과 싸워 오고 있습니다.

밭주인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 싸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신경전을 벌이지 않고 서로 마음 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네 것 내 것을 확실하게 금 그어 놓고 살아가는 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밭주인이 대나무 숲을 더 이상 까뭉개지 않는다면 장마철이 돌아오면 망가진 숲에서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대나무 싹이 오를 것입니다. 대나무 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으니까요.

태그:#대나무숲,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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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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