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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름의 맨 꼭대기에는 구슬 같은 무언가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여의주다…….”

혼자말인지, 아니면 바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지 백호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들이 언젠가 하늘로 올라가는 용으로부터 빼앗았던 그 여의주인 게 확실했습니다. 구름 끝에는 그 여의주가 매달려 구름괴물이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겁에 질려서 그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소름끼치게 끔찍한 그 구름을 본 바리 손에 힘이 풀려 여의주가 땅으로 떨어져 버릴 뻔 했습니다. 바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손에 힘을 주어 여의주를 품에 안고 빠른 걸음으로 백호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백호야,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대체 저 해가 왜 우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거야? 그리고 저 괴물 같은 구름은 뭐야?”

백호는 눈길을 그 구름 괴물에 고정시키고는 겨우 입술만 떼어 대답해 주었습니다.

“바리야, 저건 호랑이 대왕이야.”

“호랑이 대왕?”

“그래, 호랑이 대왕…. 네가 보았던 그 눈이 붉었던 호랑이들과, 호랑이가 된 영혼들을 손에 쥐고 있는 호랑이 대왕이야….”

“호랑이 대왕이라구?”

그냥 거대한 자루처럼 뭉실뭉실 자라고 있던 그 구름은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몸집을 위아래로 불려나갔습니다.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구름벌판 위에 펼쳐진 또 다른 하늘을 가득 메울 것처럼 그 구름괴물은 온 방향으로 몸집을 부풀렸습니다. 일월궁전 뒤에 서있는 상제님의 궁전의 높이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 거대한 구름덩어리의 꼭대기에서 또 무언가 쑥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구름괴물의 머리 같았습니다. 양쪽에 산처럼 서있는 귀가 보였습니다. 귀 밑으로는 지고 있는 태양 주위를 물들이는 붉은 노을로 칠한 듯 날카롭게 그어진 무언가가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이었습니다.

그것은 백호가 말한대로 하늘에 맞닿을 만큼 거대한 호랑이의 대왕이었습니다. 이마에는 빛을 발하는 여의주를 매달고 당장이라도 세상의 주인이 된 듯이 온 몸을 떨면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랑이가 갑자기 그 붉은 같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우와!”

“아악!”

그 구름의 형태가 똑똑히 드러나자 일월궁전이 다시 아우성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상제님의 궁전을 향해서 뛰어가기도 했고, 선녀들 품에 안겨들어 큰소리로 울기도 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고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마침내 구름벌판에 감추어져 있던 다리를 들어 한발을 앞으로 내딛었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바람이 일월궁전에 몰아닥쳤습니다.

“얘들아, 전부 이리로 오렴, 전부 우리에게 와.”

선녀들은 일월궁전을 뒤집어버릴 듯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지만, 어딘가에서 보랏빛 비단 같은 꺼내어 바람막이를 만들어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땅에 엎드려 바닥을 기기도 하면서, 아니면 바람을 등지고 쪼그리고 걷기도 하면서 선녀가 부르는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백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바람을 가르며 아이들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전부 입으로 물어서 등으로 던져 올리고 선녀들이 만들어 놓은 비단벽으로 태우고 갔습니다.

도영이와 순덕이는 우물 꼭대기에 올라가서 두레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레박을 손으로라도 잡아서 우물 속으로 집어넣어야 되는데, 발 밑에서 맴돌고 있는 두레박엔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우물 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니 늦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직 하늘은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순덕이가 보는 우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가 내려가야할 마을에는 아침이 되도록 해가 뜨지 않고 어두컴컴하여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순덕이도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와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닿을 듯 말 듯 발 밑에 걸려 있는 두레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을 돌고 있을 뿐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심하게 바람까지 불기 시작해서 우물 꼭대기에서 제대로 서있기도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조금 아래로 날아내려가서 두레박을 손으로 잡아올리면 될 것 같았지만, 이렇게 엄청난 바람은 우주 공간으로 날려보낼 듯이 잔뜩 겁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내려가면 해와 달은 우물 꼭대기에 걸린 채 저 세상은 낮이나 밤만 지속되어 큰 혼란이 생길 것이 뻔했습니다.

“순덕아, 괜찮니?”

도영이가 동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빠, 난 괜찮아, 거봐, 내가 저 이상한 구름들이 올라올 거라고 이야기했지?”

“저건 호랑이야, 큰 호랑이라구.”

도영이가 하는 말이 바람에 실려서 순덕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순덕이는 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물었습니다

“오빠, 어떻게 해야 되지? 대체 누가 해와 달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거야? 저 호랑이들이야?”

“나도 몰라. 아무리 봐도 저 두레박이 왜 저기에 걸린 건지 보이지가 않아, 그냥 제자리에서 맴돌고만 있다구.”

“저 호랑이들은 그럴 능력이 없을 거야, 저런 몸집만 커다랗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괴물 주제에….”

도영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서 우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해와 달의 길을 막을 사람은 단 한 사람, 지리천문신장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문신장님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설마 정말 그렇게 하신다 하더라도 이런 중대한 시간에 장난을 치듯이 해와 달의 길을 막을 분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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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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