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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을 담고 우물 위로 올라가던 그 두레박은 덜커덩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멈춰
서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과 선녀들은 전부 그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두레박이
걸리는 소리가 쩌렁 쩌렁 일월궁전에 울려 퍼졌습니다.

해와 달을 담은 두레박은 이미 꼭대기에 거의 다다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에 걸렸는지 더 이상 올라가기를 멈추고 같은 자리에 서서 맴을 돌고 있었습니다.

그 우물엔 못은커녕 자그마한 압핀 하나 박혀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서 만든 우물이 아니라서 나무 가시 하나 돋아나와 있는 것이 없었고, 골짜기에서 바위를 캐다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조그만 자갈 하나도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해와 달을 담은 두 두레박이 잠시 쉬기라도 작정한 듯 한꺼번에 멈춰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그 두레박이 도영이와 순덕이를 놀려주려고 심술궂게 잠시 쉬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위로 올라가기만을 바라며 우물 꼭대기만을 쳐다보았습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할 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오빠, 대체 두레박이 어디 게 걸린 거야? 왜 올라오지 않는 거지?”

한동안 조용한 일월궁전의 구름 벌판 위를 맴돌던 괴괴한 적막은 순덕이가 외치는 소리에 놀란 듯 휙 사라졌습니다. 도영이 역시 아무리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두레박이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실감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우물 아래에서 여의주함을 열기 위해 손을 뻗은 바리는 얼른 여의주함에서 손을
떼어 한걸음 물러났습니다. 두레박에 해가 우물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여의주함을 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큰 실수라도 했는가 싶어 겁을 잔뜩 먹은 바리는, 머리만 돌아가는 인형처럼 두 다리는 여의주함 앞에 그대로 고정시킨 채 고개만 백호를 향해 겨우 돌려서 말했습니다.

“백호야….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어떡…..”

바리는 백호에게 물어보려던 말을 순식간에 잊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듯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서있었습니다.

바리는 굳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놀라운 것을 본 듯한 눈동자는 백호의 등 뒤를 응시한 채 고정되어있었지만, 목소리가 입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 듯 다물지 못한 입은 백호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 것처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백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커다란 구름덩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과 선녀들은 전부 그 이상한 구름덩이를 보고 바리와 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못이 박힌 채 꼼짝 않고 서있었습니다.

그런 구름덩이는 일월궁전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특별히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잘 알만했습니다.

바리와 백호가 조왕신과 함께 천둥고래를 타고 날아온 그 방향이었습니다. 마치 바리와 백호를 따라온 것처럼 시커먼 구름이 일월궁전을 향하여 뭉게뭉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구름은 땅 위를 쓸어버리려는 비구름처럼 짙은 회색빛이었습니다.

썩은 피를 잔뜩 머금은 구름 같았습니다. 진흙바닥을 헤치고 밖으로 나온 거대한 굼벵이 같이 꿈틀꿈틀 기어오르고 있던 것입니다. 시커먼 배를 가르고 비를 뿌리면 일월궁전은 순식간에 빗물에 잠길 듯 온통 시커먼 구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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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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