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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을 받아먹고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할 숲속의 새들은 둥지 안에서 두려움에 떨며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500년 밤이란 긴 세월을 땅에서 보낸 뒤, 나무 위에서 번데기를 지어 쉬던 애벌레들은 이제 오래된 가죽을 벗고 새 몸과 날개를 끄집어 내서 햇빛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여전히 어둠이 땅을 뒤덮은채 아침이 오지 않으니, 차가운 날개를 말리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리도 또 다른 곳이 천지구슬 속에 드러났습니다. 시간이 늦도록 해가 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밤이 늦도록 해가 지지 않는 하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의 거북은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해변가에서 알을 낳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서편 하늘은 여전히 밝게 빛나기만 했습니다. 해가 진 후 밖에 나가야 하는 부엉이들과 박쥐들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큰 불이 난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지구상 위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전부 하나가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하늘에 올라가 해를 꺼내올 수도 또 끌어내릴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작은 벌레 할 것 없이 전부 하릴없이 해와 달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며 하늘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천지구슬 주변의 붉은 복숭아 같은 불덩이 주변의 구름은 스멀스멀 한곳에 모여들었습니다. 그 반대편에서 천천히 돌고 있던 은빛구슬은 이미 불이 꺼진 채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부인님이 말했습니다.

"천문신장님,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지리천문신장님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저 아래 사람들 같은 생각을 하시는구려. 모든 것은 다 준비 되었습니다. 하느님들은 바리와 함께 모든 일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느님들도, 저 별들도, 저 인간계의 모든 생물들도 해와 달이 떠오르기만을 바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건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염려됩니다. 저 아래에 사는 중생들이 얼마나 두려워 떨고 있을지…."
"저도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지, 저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하나가 되어서 한 가지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구름의 왕이 일월궁전에 옵니다."
"하지만…."

부인님은 복숭아처럼 빛나는 태양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불덩이 근처에 스멀스멀 모이고 있는 그 흉칙한 구름 덩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구름 반대편엔 지리천문신장님의 명령을 받은 기린이 그 불덩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길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 기린은 해도 달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길을 막은 채 지리천문신장님의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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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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