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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29일 밤이었습니다. 지리천문신장님 집 주변의 숲은 평상시처럼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천문신장님의 예쁜 집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은 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하게 그 자리에서 서있기만 했습니다.

지리천문신장님과 부인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지구슬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지금쯤이면 바리와 백호가 조왕신과 함께 일월궁전에 올라가 여의주함에 여의주를 넣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여의주함에 새 여의주가 들어가면 일월궁전을 움직일 새로운 힘이 이곳으로 내려와 새해를 맞을 준비를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천지구슬 주변을 돌고 있는 저 복숭아 같은 붉은 불덩이가 검은 구름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구름은 황금기린이나 황금새들이 아무리 입김을 불어도 그 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지구슬의 질서대로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 다른 구름이었던 것입니다.

부인님께서 걱정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바리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지금쯤 조왕신도 상제님의 궁전에 들어가 있을 텐데… 저 구름이 이렇게 빨리 저 일월궁전으로 도달할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리천문신장님 역시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습니다. 별빛이 가득한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올해도 예전처럼 용이 올라갔더라면 그 호랑이들은 용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또 여의주를 빼앗았을게요. 그 호랑이들은 아무리 꾀를 써도 조왕신이 천둥고래를 타고 올라가는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소. 그 역술서에서 얻은 도술을 이용해서 열심히 구름을 쌓아 올려 일월궁전에 도달을 한 것입니다.”

황금기린과 황금새들이 낮은 목소리로 울면서 지리천문신장님 곁으로 날아 모여 들었습니다. 어깨 위에 앉은 새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천문신장이 도포자락으로 천지구슬을 한번 문지르자 어수선한 세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인님이 안쓰러운듯 말했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해가 떠오르지 않아서…… 온통 어두컴컴하고….. 달도 없고….”

그 세상에는 사람들이 해를 기다리면서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미 아침이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동편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하기만 했습니다. 검은 안개가 끼어있는지 별조차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해를 기다리는 것은 단지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해를 맞이해야할 동편의 어두움이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탉들도 닭장과 마당을 불안하게 돌아다니며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던 암소들도 무언가 이상한 듯 하늘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음메 하며 울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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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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