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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 아래 세상에는 이미 아침이 되었지만, 하늘에는 칼로 그어놓은 듯 날카로운 초승달만 덩그러니 떠 있을 뿐 해가 떠오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이글거리는 해가 하늘에 남아서 사람들의 잠을 방해하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바리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얘들아, 이러지 마, 우리가 그래서 가신님들의 힘이 담겨 있는 이 여의주를 가지고 올라왔잖아, 이 여의주를 가지고 있으면 그 호랑이들도 꼼짝을 못한단 말이야."

하지만 바리가 여린 목소리로 말하는 그 말은 아이들 귀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땅에 엎어져 울기도 하고 그냥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란을 떨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자 선녀들이 내려왔습니다. 일월궁전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서라, 아라, 유라 선녀 세 명이었습니다.

"얘들아, 대체 무슨 일이니?"
"지금 해를 내려 보낼 시간이야, 얘들아, 울지 말고."

아이들은 선녀들에게 우루루 달려가 울먹이며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저 아래서 나쁜 호랑이들이 올라오고 있대요, 우리를 다 잡아먹을 거래요."
"우리 일월궁전을 다 빼앗아 버릴 거래요,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아이들 틈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발만 구르고 서 있는 바리에게 아라 선녀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네가 바리로구나."
"네, 맞아요, 얘는 제 친구 백호에요. 여의주를 가지고 왔는데, 전 어디로 가지고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전 여의주함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바리의 눈에서도 금방 눈물을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라 선녀가 바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염려하지마,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라 선녀가 이 말을 마치자 어딘가에서 맑은 음악소리가 펴져나왔습니다. 어린이들 틈에서 서라 선녀가 수금을 꺼내어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스피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이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선녀가 연주하는 그 수금 소리는 일월궁전에 가득 울려퍼졌습니다.

그 소리는 선녀 수백 명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꺼번에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울기를 멈추고 선녀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선녀들은 다가오는 아이들을 전부 하나씩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그 사이 도영이가 바리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그 여의주는 저 우물 사이에 있는 여의주함에 담아야돼."

바리가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그럼, 어서 담아"

도영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해를 얼른 우물 밑으로 내려야만 해, 그런 다음 여의주함에 넣어야 해."

서라 선녀가 말했습니다.

"도영아, 네가 얼른 순덕이를 데리고 해를 아래로 내려다오. 지금 해가 떠오를 시간이 지났지 않았니, 지리천문신장님이 기다리고 계실거야."

햇님이 쉬고 있는 기와집 지붕이 마치 폭발할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도영이는 달을 내리는 우물로, 그리고 순덕이는 해를 내리는 우물로 바쁘게 올라갔습니다.

도영이가 우물 아래에 가자마자 우물 벽에 칠해진 은색선이 반짝이며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도영이는 날개옷을 입은 것처럼 그 은색선을 따라서 뱅뱅 돌면서 우물 위로 날아올라갔습니다.

순덕이도 도영이와 동시에 해를 내리는 우물로 올라갔습니다. 역시 금색으로 칠해진 우물이 반짝이면서 그 금색선을 따라 순덕이가 나비처럼 날아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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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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