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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덕이가 바리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물었습니다.

“난 순덕이야, 네 이름은 뭐니?”
“난, 바리라고 해.”
“바리? 참 예쁜 이름이다, 넌 여기 어떻게 왔니? 너 같은 아이가 일월궁전에 온 것이 처음이야.”

그러자 바리가 잊어버린 것을 생각해 낸 듯 말했습니다.

“아. 이것을 전해주러 왔어. 백호야, 여의주.”

백호가 신비한 색으로 빛나는 여의주를 꺼내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여의주 근처로 모여 들었습니다.

“이거 여의주 아니야? 왜 용이 가지고 오지 않고, 네가 가지고 온거야?”

바리가 여의주를 오른손에 들고 말했습니다.

“저 아래 나쁜 호랑이들이, 여의주를 가지고 올라올 용을 다치게 하고, 여의주를 빼앗아서 가지고 있었대. 그래서 내가 대신 온 거야.”

바리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말도 안돼. 용은 작년에도 왔었고, 그리고 재작년에도 왔었어.”
“그래, 여의주는 언제나 용이 이 곳으로 가지고 올라오는 거야.”

바리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호가 모시고 있는 백두산 산신님이랑 진달래 언니는 나만이 가지고 올라갈 수 있다고 그랬어. 내가 저 아래 세상의 호랑이들의 눈을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바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백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렴, 언젠가 섣달이 되었는데도 용이 이곳으로 올라오지 않은 적이 있지 않았니?”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이 눈을 아래로 깔고 열심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갑자기 큰소리를 질러 아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맞아요, 저 아래 세상이 밤이 되어도 빛이 비치지 않고, 사람들이 차를 타고 숲과 산 사이를 빠르게 왔다갔다 하기 전이었어요. 그때 용이 한 번 이곳에 올라오지 않았었어요.”
“맞아요. 그때는 조왕신님이 이곳에 먼저 올라오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용이 올라오지 않은 적이 있었어.”
“뭐야, 그럼 올해는 용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거야? 재미 없어.”
“그럼, 저 여의주함에는 누가 가서 여의주를 집어넣지?”

아이들이 불만스럽게 숙덕거리고 있는데, 바리 곁으로 한 사내아이가 나오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난 도영이라고 해, 순덕이 오빠야.”
“혹시 너희 둘이 하늘나라에서 해와 달이 되었다는 그 두 남매들이니?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바리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지만, 도영이와 순덕이는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도영이가 되물었습니다.

“여긴 우리 말고도 해와 달을 땅으로 내려주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 여기 있는 아이들이 전부 해와 달을 관리해 주고 있는 걸.”

순덕이도 말했습니다.

“나쁜 호랑이들이 그 용을 왜 다치게 했는데?”
“그 여의주를 빼앗아서 그곳에 들어있는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이곳에 올라오려고 그랬대.”

바리가 다급하게 대답하자 주변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이곳에 뭐하러 올라오는데? 여기 있는 과자하고 떡이랑 다 뺏어먹으러?”

그러자 다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먹으라고 그래, 우린 아주 많아, 호랑이들이 원래 떡을 좋아하잖아.”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바리는 아이들이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지나 않을까 내심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전혀 겁을 내지 않자 슬슬 답답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호랑이들이 아주 많이 올라와, 저 아래서 사람들을 많이 잡아다가 다 호랑이로 만들어 버렸대, 우리 엄마 아빠도 호랑이들이 잡아갔어.”

도영이가 물었습니다.

“호랑이들이 네 부모님을 잡아간거야? 그래서 호랑이로 만들었어? 지금 어디 계신데?”
“나도 어디에 계신지는 몰라. 지금 호랑이들이랑 같이 살고 계셔. 이곳에 여의주를 가지고 올라오면 만날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여의주를 가지고 올라온 거야. 게다가 호랑이들이 동성군님의 구름차를 빼앗아서 이곳에 올라오려고 한단 말이야. 그래서 일월궁전에 올라와서 해와 달을 자기 맘대로 조종하려고 한다구. 내 말 못
알아들어?”

아이들은 그냥 머리만 긁적이면서 수근거리고만 있었습니다.

“호랑이들이 올라오면 해와 달을 나누어 가지면 되지, 뭐.”
“여기 햇님하고 달님들이 많아. 호랑이들하고 나누어 가져도 돼.”
“그 대신 우리하고 시간을 잘 맞추어서 햇님과 달님을 땅 위로 내려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럼 저 학교에서 호랑이들하고 같이 공부를 해야 하나?”

아이들은 호랑이들이 우물에 올라가서 두레박을 내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깔깔 대며 웃었습니다. 바리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호랑이들은 나누어 가질 줄을 몰라. 다 자기들이 가지려고 해. 그래서 이 세상을 전부 호랑이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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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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