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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명이 바리에게 물었습니다.

“넌 누구야? 이 호랑이랑 친구야?”

바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어, 내 친구야, 난 백호라고 부르는데.”

다른 아이가 또 물었습니다.

“난 호랑이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데.”

“와, 이게 호랑이로구나, 전혀 무섭지 않게 생겼는 걸.”

“너무 멋지다, 저기 동산에는 호랑이가 한마리도 안 살아.”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 사당에서 본 그림에 나오는 거랑 비슷해.”

“이 호랑이 등에 타고 구름동산을 뛰어다니면 일월궁전을 금방 한바퀴 돌 수 있겠다.”

백호는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아이들에게 손과 발을 맡기고는 착한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 백호 등에 올라타 귀를 만져보는 아이, 수염을 잡아당기며 장난 치는 아이, 긴 꼬리를 돌려 보는 아이 등 백호는 순식간에 귀여운 장난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귀여운 호랑이를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백호가 그렇게 귀엽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좋아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바리가 백호를 보며 말했습니다.

“백호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백호의 귀를 들여다 보고 있던 머리 숱이 많은 아이가 물었습니다.

“이 호랑이 말도 할 줄 알아?”

그때 도영이가 우물쭈물 하다가 대답을 했습니다.

“말을 하는 호랑이는 아주 못된 동물이야, 우리 엄마를 잡아 먹었어.”

누가 그런 말을 하는가 보려고 바리가 고개를 들어보았습니다 백호 근처에 와서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 뒷편으로, 오누이인듯한 두 아이가 따로 저만치 떨어져서 심통난 표정으로 백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순덕이도 거들었습니다.

“맞아, 그때 우리집에 엄마옷을 입고 왔던 그 못된 호랑이도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있었어. 다른 호랑이들은 말을 하지 못해.”

순덕이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잠시 겁을 먹었는지 동작을 멈추고 백호를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당황한 백호가 그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난 나쁜 호랑이가 아니야, 나는……… 바리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러 왔어.”

아이들이 놀라 숙덕거렸습니다.

“와, 정말 말을 할 줄 안다.”

순덕이가 백호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너도 신선님이랑 같이 사는 거야? 저 아래 산에서?”

“그래, 난 백두산에서 왔어.”

다른 아이가 구슬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습니다.

“넌 사람은 안 잡아 먹어?”

백호가 머쓱해하며 말했습니다.

“우린 사람을 잡아 먹지 않아.”

“그럼 뭘 먹는데?”

“저기 도영이 어머니에게 나쁜 짓을 한 호랑이도 네 친구야?”

백호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눈이 아주 큰 꼬마애가 백호 앞에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습니다.

“아니야, 백두산에서 왔다면 저 천둥고래하고 친구겠구나.”

천둥고래가 맑은 눈을 반짝이며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재잘대고 있을 때, 조왕신님 앞으로 선녀 세명이 내려와서 공손히 절을 했습니다. 절을 받은 조왕신은 바리와 백호를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바리야, 나는 지금 상제님의 궁전으로 가 봐야겠구나, 난 바리와 백호를 믿는다. 지금 당장 나쁜 호랑이들이 이곳에 온다고 하더라도 바리와 백호 덕분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지금까지 잘 해 왔잖아.”

바리는 잠시 머뭇 거리더니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죠? 부엌에 들어가면 맨날 조왕신님을 생각할 거에요. 조왕신님을 보고 싶으면 불꾼님을 부르면 되죠? 불꾼님들은 언제나 부엌에 있을 테니까요.”

조왕신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호에게 다가가 손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백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바리는 백호가 하는 일을 말 없이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저 아래에서는 언제 호랑이들이 구름을 타고 올라올지 모르는데, 조왕신님은 자기만을 남겨두고 상제님의 궁전에 간다니….. 호랑이들이 몰려오면 이 일월궁전이 금방 끔찍한 곳으로 변할 텐데, 왜 저 세상의 가신들은 아무도 이 위험한 순간에 바리를 도와주러 이 곳에 올라오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왜 조왕신마저도 저렇게 야박하게 보일 정도로 바리를 혼자 놔두고 상제님께 가시는 것인지…..

바리는 고개를 돌려 조왕신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조왕신도 천둥고래도 이미 그 선녀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사를 마친 백호도 고개를 들자마자 조왕신님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사뭇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이제 이곳에 남은 것은 바리와 백호 단 둘이었습니다.

바리는 아이들에게 조왕신이 가는 걸 봤냐고 묻는 듯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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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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