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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말했습니다.

“어, 저기 천둥이 등 위에 조왕신 말고 다른 사람이 타고 있다.”

“그래, 맞다. 다른 손님이 오시는거야.”

“대체 누구지? 성주님이 오시는건가?”

고래 머리 위에 서있는 조왕신 옆으로는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월궁전에 찾아오던 손님들과는 아주 다르게 생긴 두 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여자아이 같았는데, 뒤로 머리를 묶고는 치마도 저고리도 아닌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옆에는 사람이 아닌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의젓하게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저 애 여자아이 맞지? 옷차림이 너무 이상해. 저렇게 먼데서 오는 아이가 두루마리도 걸치지 않았고 치마 저고리도 아니야, 저런 이상한 옷은 처음 봐.”

누군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저 옷 청바지다, 나 알아, 나도 저 옷을 입어본 적 있어.”

“저런 옷을 입고 어떻게 다녀. 에이, 너무 이상하게 생겼다.”

“저렇게 꽉 끼는 옷을 입고 있으면 답답하지 않을까?”

말을 꺼낸 아이는 여전히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야, 저 옷 입으면 얼마나 멋진데, 그리고 얼마나 편하다구.”

“저 아이가 여기에 뭐 하러 오는거지?”

아이들은 처음 보는 이상한 풍경에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바로 도영이와 순덕이였습니다.

순덕이가 오빠를 향해 말했습니다.

“오빠, 저기 호랑이가 오고 있어, 호랑이가!”

도영이가 순덕이의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걱정마, 저기 조왕신님이랑 같이 오고 있잖아, 나쁜 호랑이가 아닐 거야, 염려하지 마.”

그러는 사이 고래는 항구에 도착하는 배처럼 우물 가운데 가볍게 들어와 멈추어 섰습니다. 마치 먼지가 이는 것처럼 구름조각이 고래 위로 나풀거렸습니다, 천둥고래는 큼지막한 눈알을 굴리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얘들아, 안녕, 잘 있었니?”

“안녕…….”

아이들은 처음 보는 손님들 때문인지 백호를 만난 산오뚝이들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래의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고래가 말했습니다.

“우리 일월궁전의 아이들이 어디가 아픈 모양이로구나. 이곳에서 병이 났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대체 왜들 이러고 있지, 왜 아무런 말들이 없는 게야?”

그때 조왕신이 긴 치마를 끌면서 고래 등에서 내려왔습니다.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치마의 색깔은 밝은 구름색 때문인지 백두산에서 보았을 때처럼 그리 환해 보이진 않았지만, 조왕신의 모습은 고래 범선으로 구름바다를 항해하고 돌아오는 용감한 선장님 같아 보였습니다.

“얘들아, 일월궁전에 오늘 친구가 왔단다, 아주 멀고 먼 길을 여행한 친구들이지, 어서 내려오렴.”

그리고 조왕신은 한 걸음 물러서서 백호와 바리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백호는 벌쭘히 서있는 바리를 등에 태우고 훌쩍 뛰어내려왔습니다. 호랑이가 구름에 발을 디디자 아이들은 겁이 나는 것도 아니면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습니다. 아마 도영이와 순덕이에게 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바리는 백호의 등에서 내려와 구름에 발을 살짝 디뎠습니다. 땅 위에서 흙을 밟을 때와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해변가의 모래사장을 밟을 때 느낌 같기도 했고, 잔디밭을 거닐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진 풍경은 아무리 솜씨 좋은 화가도 따라 그리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눈 앞에 펼쳐진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바리는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일월궁전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살고 있는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이전에 살던 보육원에서 보던 아이들 같기도 했습니다.

바리가 그렇게 수줍은 듯 물먹은 수세미마냥 백호 주변에서 눈치를 보고 있자, 일월궁전의 아이들은 호기심이 생기는지 바리 곁으로 나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아이들에게 정다운 눈빛을 보내는 백호에게도 다가와 이것 저것 만져보기도 하면서 신기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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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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