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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신이 일월궁전에 오시는 날이면 아이들은 무척 신이 납니다. 조왕신이 일월궁전의 아이들에게 무슨 신기한 선물이라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왕신이 상제님께 가시려고 하늘나라로 올라오는 섣달 29일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조왕신이 하늘나라에 올라올 때 타고 오시는 천둥고래를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일월궁전의 동산에 있는 신기한 놀이거리들은 매일 타고 놀고 놀아도 끝이 없을 정도이지만, 조왕신님이 하늘나라에 타고 오는 그 고래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름 벌판에 살지 않는 새로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때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 고래는 재미난 이야기꾼이기도 합니다. 그 고래는 가끔씩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곤 합니다. 백두산 천지에 살고 있는 다른 동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는 것 등 고래의 큰 몸뚱아리 속에는 이야기가 가득가득 들어찼는지,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해와 달을 내려 보내는 것도 깜빡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왕신이 올라오고 나면 언제나 용은 상제님 궁전 앞 뜰에 여의주를 물고 나타나 여의주함에 여의주를 담고는 다시 아래로 사라집니다. 용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멋진 구름과 함께 여의주를 물고 올라오는 모습 역시 아주 멋집니다.

재미있는 것이 가득찬 일월궁전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궁금증은 지평선을 넘어 우주 공간에 이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 아래세상에도 재미있는 것이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도영이와 순덕이가 일월궁전에 도착할 무렵에, 일월궁전의 아이들은 해와 달을 내려 보내는 그 우물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전부 그 천둥고래가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도영이가 천둥고래를 기다리면서 수근거리는 아이들 틈에 들어와 말했습니다.

“조왕신님을 기다리고 있는거야? 아직 안오셨어? 용이 올라올려면 아직 멀었겠네”

옆에 있던 아이가 말했습니다.

“너네들은 다른 곳에서 더 재미있는 놀이를 하다가 오는거 아니야?”

“넌 어디서 놀다가 지금 오는거야. 넌 조왕신을 만나는 것보다 순덕이랑 다른데 가서 노는 걸 더 좋아하잖아.”

노란 저고리를 입은 아이도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어디 갔다가 지금 오는거야? 아라 선녀님이 계속 찾았단 말이야.”

순덕이도 끼어들었습니다.

“오늘 조왕신님이 오시는 날 맞아? 내가 저기 가보니까 구름벌판에 구멍도 여기저기 뚫려 있고, 그리고 아래동네는 설 기분도 안났어. 아마 올해는 안 오실 것 같애.”

도영이가 순덕이에게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습니다

“너 무슨 소리 하는거야, 조왕신님이 안 오시긴 왜 안 오셔. 아까 아라 선녀님이 이야기하는 말 못 들었어? 귀한 손님이랑 같이 오고 있다고 했잖아.”

순덕이는 지지 않으려고 얼굴을 더 찌푸리고 말했습니다.

“오빠도 봤잖아, 저 아래 이상한 구름들이 모이고 있는 거 말이야.”

아이들은 이 오누이들이 하는 이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도령복을 입은 어린이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왕신님은 섣달 29일이 되면 맨날 천둥이를 타고 오셨다구, 조금 있으면 도착을 하실 거야.”

도영이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아, 순덕이는 괜히 이상한 것을 보고 쓸데 없이 걱정을 하는거야.”

순덕이가 입을 삐죽대며 말했습니다.

“저 아래 이상한 구름들은 대체 뭐냐구, 오빠도 봤으면서….”

옆에 있던 색동옷을 입은 아이도 물었습니다.

“지금 조왕신님이 다른 손님이랑 오고 계시다구? 누굴까, 너무 재미있겠다.”

“이곳에 손님이 오신 게 언제였지?”

“그럼, 그 손님한테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신난다.”

아이들이 그렇게 서로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한 아이가 우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저기 봐, 저기 오신다. 저기 천둥고래 등이 보인다.”

전부 와 하면서 엄마새에게서 모이를 받아먹는 아기새들처럼 고개를 같은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두 우물 사이 멀리서 파란 빛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둥고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고래는 검은 배가 구름바다 위를 헤엄쳐오는 검은 범선처럼 일월궁전을 향해 항해해 오고 있었습니다.

고래는 구름 속에서 잠수하듯이 몸을 감추기도 하다가 구름 위로 숨을 쉬로 올라오는 것처럼 다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고래가 일월궁전에 더 가까와지자 검은 바위 같던 몸색깔이 푸르스름하게 빛났습니다.

우물 근처에 다다른 천둥고래는 반짝이는 두 눈을 일월궁전 아이들의 눈을 향해 깜빡이면서 멀리서 인사를 보냈습니다. 도영이가 말한 대로 고래 등 위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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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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