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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구평화시장 앞 처마 밑에 앉아 있는 매
ⓒ 김진석
청계천 상가에 웬 매?

26일 저녁 7시께 청계천 6가 구평화시장 앞 처마 위에 매로 추정되는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한 상인에 따르면 이 새가 건물에 부딪힌 뒤 10여분 간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몇 명의 상인들이 새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오른쪽 눈 밑에 빨갛게 핏자국이 나 있었다. 새는 머리를 좌우로 가끔 흔들기도 하고 오른쪽 발로 눈가를 긁기도 했다.

청계천 취재를 하던 기자는 새가 부상을 입은 것 같아 119에 신고를 했다.

"여기 구평화시장 앞인데요. 매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부상을 입고 앉아 있어요."

119에서는 녀석의 상태를 물어본 뒤 출발하겠다고 했다.

ⓒ 김진석
녀석은 처음 기자가 목격한 뒤 5분여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날갯짓을 수차례 하더니 20m 정도 떨어진 가로등으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두 번 얼굴을 발톱으로 긁었고 곧바로 청계 고가도로 밑으로 자취를 감췄다.

기자는 다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고 신고를 취소했다.

녀석이 처마 밑에 앉아있을 때부터 계속 봤다는 지게꾼 박남현(54)씨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10년 이상 여기서 일했는데 매는 처음이에요. 어릴 적에 시골에서 매를 많이 봤죠. 매가 닭 잡아가는 것도 봤었는데…. 그 때 본 놈은 굉장히 컸는데 이 놈은 작네요.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요."

한 상인은 "누가 기르던 것을 놓친 것 같다"며 "놀러왔을지도 모르지"라고 농담조로 읊조렸다. 순식간에 "청계천에 매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퍼졌다.

청계천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정복수(46)씨는 사람들에게 "정말 매가 맞아?"라고 확인한 뒤, 무척이나 반겼다.

"산에 있어야 할 매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걸 보니 산에도 공해가 심해진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사실 비둘기는 몰라도 매를 봤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어찌 보면 아름답기까지 하네요. 우리 상인들 장사 안 된다고 다들 울상인데 훨훨 나는 새처럼 날아보라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청계천 복원공사 때문에 걱정이 많은 상인들에게 매의 출현은 그야말로 '길조'(吉兆)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신기해하는 그들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순간이나마 펴지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새는 '매'가 아닌 '황조롱이'였다. 황조롱이도 매과에 속하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매'와는 조금 다르다.

황조롱이도 매만큼 희귀한 새다. 황조롱이는 천연기념물 323호로 지정됐는데 5~6년 전부터 서울 도심 지역에서 가끔 나타난다고 한다.

한 전문가는 "매보다 크기가 작은 황조롱이는 하늘에 정지한 상태에서 밑으로 곧장 날아가 쥐 등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바람개비 매'라는 별명이 붙은 새"라며 "예전에는 남산에 서식했는데 최근에는 한강주변, 고궁근처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록 매는 아니었지만, 청계천 상가에 날아든 '매과'에 속하는 천연기념물 새 황조롱이. 복원공사로 괜히 불안한 상인들의 가슴에 '길조'의 꿈을 키우고 있다.

▲ 처마 밑에 앉은 황조롱이를 한 상인이 유심히 보고 있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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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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