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으며 경기장 떠나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밝은 표정으로 메달을 보여주며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활짝 웃으며 경기장 떠나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밝은 표정으로 메달을 보여주며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이희훈


기뻐하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 기뻐하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 이희훈


3만7400m. '철인' 이승훈이 평창동계올림픽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결승선에는 금메달이란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24일 남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이승훈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꿈의 무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나와서는 "그 동안 많은 과정도 생각나고 너무 간절히 원했던 메달이었기 때문에 부담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해냈다는 것에 너무 감격스럽다"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올림픽이라는 무대만으로도, 여기서 메달을 따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해 꿈을 꾸는 것 같다."

눈물 닦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시상대에 올라 눈물을 닦고 있다.

▲ 눈물 닦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시상대에 올라 눈물을 닦고 있다. ⓒ 이승훈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총 네 종목에 출전했다. 모두 장거리 종목이었다. 이승훈은 11일 5000m, 15일 1만m, 18일 3200m(팀추월 준준결승), 21일 6400m(팀추월 준결승·결승)를 주행한 데 이어 이날 1만2800m(매스스타트 준결승·결승)를 또 달렸다. 총 3만7400m를 주행한 그는 금메달(매스스타트)과 은메달(팀추월)을 목에 걸었다.

21일 총 2만4600m를 달리고 난 뒤 이승훈은 "한 바퀴, 한 바퀴 돌 때마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이날 매스스타트에서 자신의 말이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음을 스스로 검증했다.

이승훈은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매스스타트에서, 그것도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우승해 너무 영광스럽다"라며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그 동안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꿈꿔왔고 평창이란 무대를 꿈꿔왔다"라며 "꿈의 무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너무 행복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금메달 결정짓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환호하고 있다.

▲ 금메달 결정짓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환호하고 있다. ⓒ 이희훈


"8년 만의 금메달, 지금이 더 감격스러워"

이승훈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5000m 은메달, 1만m 금메달을 거머쥐며 장거리 강자로 등극했다. 하지만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선 이 두 종목에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이날 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승훈은 "8년 전엔 앞만 보고 달려서 딴 메달이었다"라며 "지금은 많은 생각을 갖고 레이스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의 감격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대한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부담을 느끼기보다 금메달은 이미 갖고 있으니 마음을 비우고자 했다"라며 "매스스타트만큼은 저도 기대를 많이 했고, (기자 여러분도) 다들 기대했잖나. 이뤄져서 기쁘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승훈은 "관중들의 응원이 얼마나 도움이 됐나"는 질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힘이 떨어졌다고 느낄 때 (응원 덕분에) 힘이 계속 났다"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힘을 얻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함께 경기를 뛴 정재원 선수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함께 경기를 뛴 정재원 선수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희훈


경기 내용과 관련해 이승훈은 "중간 중간 스퍼트를 하는 선수들을 우리 팀 동료(정재원)가 추격해줬고 그러면서 저는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라며 "그러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주효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승훈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란 게 얼마나 도움이 됐나"라는 질문에 "상대방을 추월하는 데 있어 쇼트트랙의 테크닉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 능력은 쇼트트랙을 통해 배운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매스스타트 종목엔 저 외에도 쇼트트랙 출신이 많고 인라인스케이트 출신도 많다. 그것만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승훈은 가족들을 향해서도 "(가족들이) 저보다 경기 때 더 긴장한다"라며 "제가 해내서 너무 기쁘고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쉬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승훈은 4년 후 베이징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매스스타트) 2연패에 도전해보겠다"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태극기 게양되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태극기가 가장 높이 게양되고 있다.

▲ 태극기 게양되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태극기가 가장 높이 게양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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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7.4km 달린 '철인' 이승훈, 올림픽 '초대 챔피언' 꿈 이뤘다

[평창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아시아 최다 메달리스트이자 첫 올림픽 챔피언까지 등극

'빙속 장거리 간판' 이승훈(30·대한항공)이 매스스타트 올림픽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아시아 빙속 선수로는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자신의 후배와 함께한 해낸 합작품이었기에 더욱 빛났다. 이승훈은 24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 획득했다. 2015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올림픽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로 역사에 남게 됐다. 자신이 공들여오고 준비해온 종목에서 목표했던 것을 이룬 것은 물론 후배들과 함께 펼쳤다. 그가 평창에서 달린 거리는 네 종목(5000m, 10000m, 팀추월, 매스스타트)을 합쳐 무려 37.4km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20대 때 세운 기록을 깼고, 기대주들과 함께 레이스를 펼치며 또 한 페이지를 써낸 이승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올림픽 초대 챔피언' 꿈을 이루다이승훈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빙속계에도 상당히 많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그는 장신의 네덜란드 선수를 제치고 5000m 은메달과 10000m 금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10000m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낸 것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충격적인 결과였다.그러나 이후 장비와 부상 문제 등으로 부침을 겪으면서 장거리 분야에서는 밴쿠버 때만큼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순위권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랬던 그에게 매스스타트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었고 장거리 금메달 획득 이후 제2의 목표였다. 매스스타트는 여러 명의 선수가 인, 아웃코스 주로 상관 없이 동시에 레이스를 펼친다. 특히 상대주자를 제치고 곡선 코너링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쇼트트랙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이승훈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서 이것을 자신의 새로운 주력 종목으로 정하고 훈련에 매진했다. 이승훈의 장점은 곧바로 국제무대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평창을 앞둔 지난 시즌부터 이승훈은 이 종목에서 월드컵 랭킹 1위, 월드컵 파이널 1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주요 대회에서 매스스타트 정상을 꾸준히 지켰다. 올 시즌 월드컵에서도 3번의 레이스 중 2번 우승을 차지했다. 꿈의 올림픽 무대에서도 이승훈의 막판 스퍼트는 전매특허로서 역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가장 유효한 작전이었다. 매스스타트 경기가 두 시즌 넘게 진행되면서 이승훈이 계속 이 방법을 쓰자 유럽선수들은 나라끼리 뭉쳐 협공을 펼치며 이승훈의 스퍼트를 막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는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를 막아낸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4바퀴부터 3위 자리에 섰고 한 바퀴를 남기자 곧바로 곡선주로를 돌며 특유의 코너링으로 인코스로 상대를 파고들며 추월에 성공했다. 이미 상당히 스피드가 왔기에 다른 선수들은 이를 막아낼 방법이 전혀 없었고 마치 이승훈에게 길을 내주는 듯했다. 후배들과 함께 이뤄 값진 최다 메달리스트밴쿠버에서 정상에 선 이후 이승훈은 항상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며 '이승훈과 아이들'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팀추월이 그렇다. 이승훈은 소치에서 사상 최초로 팀추월 은메달을 차지했을 때 주형준과 김철민을 데리고 레이스를 펼쳤다. 그리고 4년 뒤 평창에서는 김민석과 정재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모두 500명 남짓한 빙속 인구에서 최정예 멤버들로 보물과 같은 존재다.이승훈은 정상에 오른 후 항상 후배들을 언급하며 "나를 뛰어넘는 후배들이 등장한다면 미련없이 은퇴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승훈이 후배들을 이끌고 나오는 것은 단순히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후배들의 실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후배들은 이승훈과 함께 훈련하고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소중한 경험과 자양분을 얻었다. 올림픽 초대 챔피언 역사를 쓴 매스스타트 경기에서도 이승훈은 후배와 함께했다. 함께 출전했던 정재원은 이승훈의 레이스를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재원은 초반 상대 선수들이 멀찌감치 앞서 나가자 후미그룹의 선두로 나오며 이들과 거리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재원은 약 9바퀴 가량을 3위권에서 달리며 바람막이 역할은 물론 거리를 좁혀 나갔다. 이 덕분에 이승훈은 선두그룹과 격차가 벌어지지 않고 쉽게 선두권에 진입했으며 마지막 대역주를 펼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승훈은 후배들과 함께 아시아 빙속 선수로는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가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만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로 무려 5개다. 혼자가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과 그를 보며 성장해온 미래의 주역들이 함께 했기에 더욱 값진 결과였다. 팀추월에서 김민석, 정재원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고 마지막 매스스타트에서도 정재원과 함께 링크장을 돌며 한국 빙속의 역사를 썼다. 37.4km 달린 이승훈, 진정한 철인이승훈은 이번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 팀추월, 매스스타트 등 총 4개 종목에 출전했다. 자신의 주 종목인 매스스타트 경기가 열기기 전 이미 상당한 거리를 달린 이승훈은 마지막날 매스스타트에서 준결승과 결승 두 차례 레이스를 더 펼쳐 400m 트랙을 32바퀴를 돌았다. 그가 올림픽 개막 후 마지막 경기까지 달린 거리는 무려 37.4km다. 거리뿐만 아니라 기록에서도 이승훈은 이미 놀라운 결과를 여러 번 냈다. 5000m에서 6분14초15, 10000m에서 12분55초54로 2010년 21살의 나이에 출전했던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보다도 빠른 기록을 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30대의 기록이 20대 초반의 기록을 앞질렀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기록이다. 그가 평창을 앞두고 얼마나 독한 훈련을 해왔을지 예감되는 부분이다. 선수층이 얇고 유럽에 비해 선수생명이 길지 않아 20대 후반이면 대개 은퇴 길로 접어드는 한국 빙속계의 현실에서 이승훈은 당당히 'NO'를 외치며 홀로 길을 걸어왔다. 대가 끊긴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뛴 장거리, 후배들과 함께한 팀추월, 스피드 선수로서 자신의 제2의 꿈이었던 매스스타트 올림픽 초대 챔피언, 이 세가지를 모두 해내기 위해 어쩌면 20대 때보다 더욱 독하게 임했다. 그렇기에 그는 진정한 철인이었다.

이승훈의 특급 조력자 정재원... 13살 나이 차, 아무 의미 없었다

정재원, 후미그룹 이끌며 선두그룹과의 간격 유지... 이승훈도 뜨거운 포옹

(강릉=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빙속황제' 이승훈(30·대한항공)이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는 데에는 빙속 대표팀의 막내 정재원(17·동북고)의 조력이 크게 작용했다.2018 평창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는 선수들의 기량 못지않게 전략과 눈치싸움이 중요하다.무엇보다 협공이 필수이기 때문에 결승에 같은 나라 선수가 2명 이상 진출하면 우승 가능성이 커진다.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정재원은 결승에서 특급 조력자 역할을 톡톡하게 했다.이날 레이스 초반부터 일부 선수들이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빅토르 할트 토루프(덴마크)와 리비오 벵거(스위스) 2명의 선수가 일찌감치 속도를 높여 나머지 그룹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아직 역사가 짧은 매스스타트에서는 '필승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초반부터 치고 나간 선수가 결국 우승하는 일도 자주 있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도 일부 선수가 초반에 선두로 치고 나갔으나 후미그룹 선수들이 눈치만 보며 속도를 높이지 않아 손쉽게 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당시 이승훈은 제대로 스퍼트도 하지 못한 채 메달을 놓쳤다. 그러나 이번엔 정재원이 후미그룹을 이끌고 나섰다.후미그룹 선두에서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맞으며 레이스를 이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17살 정재원은 맨 앞에서 여러 바퀴를 이끌며 앞 선수들과의 간격을 유지했다.그 사이 이승훈을 비롯한 여러 선수는 유유히 따라가며 체력을 비축했다.앞서가던 덴마크와 스위스 선수는 이내 지쳤고 3바퀴를 남기고 이승훈은 스퍼트를 시작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으나 이승훈의 스퍼트가 압도적이었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선수들이 앞으로 치고 올라가는 동안 체력이 고갈된 정재원은 뒤로 처지기 시작했고 결국 8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금메달을 거머쥔 이승훈은 가장 먼저 동생 정재원을 찾아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두 선수는 태극기를 들고 금메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mihye@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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