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은메달 질주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가 슬로프를 질주하고 있다.

▲ 이상호 은메달 질주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가 슬로프를 질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초등학교 1학년때 배추밭 위에서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신었던 그 때, 그 순간이 한국 스키 역사를 새로 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배추보이' 이상호(24·한국체대)의 어느 만화같은 이야기다. 이상호가 한국 스키 사상 최초로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상호는 24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네빈 갈마리니(스위스)에 0.43초 뒤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아시아인이 스노보드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이상호가 처음이었다. 한국 스키는 1960년 동계올림픽에 최초로 출전한 이후 58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며 오랜 숙원을 풀었다,

배추보이에서 '최초' 수식어 달고 태어났다

이상호는 199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향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이 더욱 특별했다. 아버지와 함께 고랭지 배추밭을 개조해 만들었던 사북읍 눈썰매장에 방문해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탔다.

그가 스노보드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세 차례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했고 2014년에는 이 대회에서 대회전 은메달, 2015년에는 대회전 금메달과 회전 동메달을 따내며 스노보드계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렸다.

직전 동계올림픽이었던 2014년 소치 때만해도 그는 60위권 밖에 있던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선수였다. 그러나 201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이후부터 그의 기량은 급격하게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성인무대로 올라온 2016년에 그는 3월 유로파컵 알파인 평행대회전에서 아시아 최초로 정상에 섰고, 12월 월드컵 평행대회전에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상호, 깜짝 은메달로 기쁨 선사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후 플라워 세리머니에 참석한 대한민국 이상호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상호, 깜짝 은메달로 기쁨 선사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후 플라워 세리머니에 참석한 대한민국 이상호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지난해 이상호는 평창을 앞두고 아시아 1인자가 됐다.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평행회전과 대회전 모두 금메달을 차지해 2관왕에 오른 것이다. 한국 스노보더가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의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그리고 3월에 연달아 출전했던 스페인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프리스카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평행대회전에 5위에 올랐다. 이 역시 한국 선수로는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이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몸에 항상 달고 다녔다.

그리고 평창이 열리는 2017-2018 시즌, 이상호는 지난해 12월 월드컵보다 한 단계 낮은 유로파컵에서 다시 한 번 챔피언존에 올랐으며, 이후 12월~1월 평창을 앞두고 출전했던 월드컵에서 세 차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 월드컵 최고성적은 7위였다. 평창을 앞두고 월드컵에서 내심 준결승 진출 이상을 기대했지만 8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본무대였던 평창은 역시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꿈의 무대에서 이상호는 마음껏 날아 올랐고 결국 사상 최초의 메달을 수확했다.

체력전 된 평행대회전, 난관 뚫고 해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스노보드를 탄 선수가 알파인 스키 대회전 코스를 질주해 기록이 더 빠른 순으로 순위가 결정되는 경기다. 두 차례 예선 경기를 치른 후 상위 16명의 선수가 결선인 토너먼트 경기에 오르게 된다. 16강부터는 예선 1위와 16위 선수가 맞붙는 대진으로 경기가 진행돼 기록과 상관없이 둘 중 결승선을 더 빨리 통과한 선수가 다음 라운드에 오르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본래 이번 평행대회전은 예선과 결선이 서로 다른 날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기간 내내 알파인 경기장에 강풍이 몰아치며 앞서 있었던 경기들이 모두 경기가 지연됐다. 결국 이 여파로 본래 22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예선이 결선과 같은 날인 24일에 모두 열리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날 경기에서는 레드코스와 블루코스 중 레드코스에서 탄 선수가 이기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레드코스 쪽이 상대적으로 설질이 더 좋아 기록이 더 잘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호는 가장 고비였던 준결승에서 이를 깨고 극적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이상호는 예선 2위였던 얀 코시르(슬로베니아)를 만났다. 레드와 블루 코스 선택은 예선전에서 상위 선수가 택하도록 돼 있어 코시르는 유리한 레드 코스를 택했고, 이상호는 자연스럽게 블루코스에 배정됐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이상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승선 앞에서 코시르를 0.01초차로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짜릿한 대역전극이었다.

종목 향한 무관심 딛고 일궈낸 기적

한국의 설상종목은 그야말로 '불모지 중 불모지'다. 설상종목은 빙상종목과 달리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열리기 때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일수록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대개 12~3월 사이에만 눈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설상 종목 선수들은 옆나라 일본이나 북유럽 등으로 해외 전지훈련이 필수다. 특히 아시아권 국가로는 일본이 평창 이전 유일하게 동계올림픽을 개최해 봤으며, 홋카이도 지역은 겨울철 대표 관광지로 꼽히기 때문에 기반조건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서 설상종목을 처음으로 도전한 건 1960년 크로스컨트리와 알파인스키에서 김하윤과 임경순이 출전하면서부터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1984년 올림픽때 바이애슬론이 처음으로 출전했고,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때는 스키점프 선수들이 뒤를 이었다. 이상호의 종목인 스노보드는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야 최초로 출전했다. 신설종목인 노르딕 복합은 평창이 최초다. 이처럼 아무도 봐주지는 않았지만 출전 영역을 천천히 넓혀왔기에 오늘의 이상호도 있을 수 있었다.

이상호 은메달 질주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가 슬로프를 질주하고 있다.

▲ 이상호 은메달 질주 24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가 슬로프를 질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스키협회는 평창이 유치되고 난후 2014년 11월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스키협회장으로 취임한후 전담팀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술과 왁싱, 장비, 물리치료 등 각 분야별로 전문코치를 영입했다. 또한 심리 전문가들도 고용해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눈에 띄는 것은 포상금이다. 협회는 월드컵,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모든 국제대회에 포상금을 걸었는데, 올림픽의 경우 금메달 3억 원, 은메달 2억 원, 동메달 1억 원을 포상하기로 약속했다. 이상호는 이번에 협회로부터 2억 원의 포상을 받게 됐다.

저변이 없고, 불모지라는 이유로 관심은 없었지만 아주 조금씩 한 발 한 발 걸었던 걸음이 있었고, 덕분에 이상호라는 준비된 선수가 평창에서 결국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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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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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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