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가 뭉쳤다. 영화가 흥행과 별개로 제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원전 사고에 대한 실제 대비 시스템의 수준을 진단하고자 기획한 만남이다. ⓒ 권우성


진짜 인연이라는 게 있다면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말하는 게 맞을 듯싶다. 지난 7일 개봉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영화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두 사람 모두 '핵'에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절대 발생해선 안 되겠지만, 두 사람은 한국이 맞이할 수도 있는 재난 중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로 염두에 둔다. 그래서 한 명은 지난 4년간 영화로 말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수천 건의 강연을 돌며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려 했다.

애초에 서로가 긴밀하게 알고 있었다. 김익중 교수는 <판도라>의 자문위원으로 도움을 줬고, 동시에 박정우 감독의 취지를 누구보다 지지하고 응원했다. 모태펀드 투자 철회, 한국수력원자력 등 관계 당국의 비협조 등을 겪은 박정우 감독 역시 국회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김익중 교수의 존재가 절실했다. <오마이스타>는 영화 흥행 즈음하여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맺힌 한을 풀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 NEW


- 두 분의 첫 만남부터 얘기해보자. 박정우 감독은 <연가시>와 <판도라>로 국내 최초로 재난영화를 연속으로 내놓은 감독이 됐다. 전작은 그렇다 쳐도 원전을 소재로 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은 직감했을 것 같다. 또 김익중 교수 역시 탈핵 운동가로 활동하며 그 한계를 느끼던 와중에 박 감독을 만났다고 들었다.
박정우(아래 박) "4년 전 처음 자료조사 할 때 탈핵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 무렵에 교수님이 쓴 <한국 탈핵>을 보고 제작부에 얘기해서 교수님을 꼭 만나게 해 달라 했다. 그래서 만났는데 당시 교수님이 안전위원회 위원이셨다. 내 입장에선 엄청 힘 있는 분이었지(웃음). 원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영화 시나리오도 보내드리면서 자문을 받았다. 교수님은 '이게 상업영화로 나오는 게 가능한지 물으셨고, 가능하다면 진짜 고마운 일이다'라고 하셨다."

김익중(아래 김) "맞다. 좀 의심했다.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감히? 이 시점에?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쨌든 박 감독이 하시면 도와드린다고 했다. 못 하면 할 수 없는 거고. 감독님에게 '예산이 얼마나 듭니까?' 물었는데 200억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 100억 원을 받았고, 정부 펀드에서 100억이 더 나온다고…."

"(놀라며) 제가 그랬나? 정부 펀드 100억은 제가 좀 뻥을…. (웃음) 펀드는 50억 예상했는데 그게 철회될 줄 몰랐지. 하여튼 당시엔 150억 정도 생각했었고, 돈을 많이 들일수록 투자 쪽에선 부담스러우니 100억과 120억 사이에서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교수님 뵀을 때가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이었고, 투자가 어느 정도 된 상황이었다. 이거면 일단 절반은 된 거니까 영화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교수님을 뵌 거지. 어휴, 이 영화 하느라고 투자사를 세 번이나 옮겼다. 뭐 소재 때문에 쫓겨난 건 아니고 다른 영화처럼 겪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다 NEW(현 투자배급사)에 정착했지."

"사실 이런 영화가 나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다큐멘터리 말고 상업 영화로. 그래서 연극과 교수인 친구 통해서 블록버스터 영화 만드는 감독님들과 접촉하려고 꽤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박정우 감독을 만나기 5개월 전부터 유명 상업영화 감독들을 만나려 했지. 근데 만나도 내가 설득하긴 힘들었을 것 같다. 반드시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여야 했다. 천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그게 내 꿈이었다. 왜냐면 원전 사고는 한 번 나면 감당이 안 되는 규모다. 한국에서 사고 날 확률이 제로가 아니잖나. 미국, 러시아, 일본 등 대표적인 원자력 선진국도 사고가 났다. 우리나라도 보장 못 한다. 땅이 좁아서 훨씬 충격이 클 것이다.

사고 나기 전에 원전을 싹 닫지 않으면 언제가 됐든 일이 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려면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럼 여론이 바뀌어야 하고, 나처럼 책 내고 강연을 하러 다녀서는 도저히 되지 않더라. 적어도 천만 명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론이 바뀌면 정치인들 자세도 바뀔 거니까. 결국, 상업영화뿐이더라. 전문 다큐 말고 핵사고를 직접 다루는 상업영화. 그 고민을 하던 차에 감독님이 딱 그 시나리오를 들고 오셨지. 얘길 들어보니 딱 원하던 영화였다. 정말 신이 도왔다고 생각했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 <판도라> 중 한 장면. 한국수력원자력의 촬영불가 방침으로 발전소 내부는 모두 강원도 춘천 지역 등에 세트를 지어 촬영해야 했다. ⓒ NEW


- <연가시> 때 그렇게 힘들다 해놓고 왜 또 재난에 그것도 원전에 꽂혔는가. 또 김익중 교수께선 어떻게 조언했는지.
"인연인가, 팔자라고 해야 하나. <연가시> 하면서 재난에 대한 참고자료를 모으잖나. 그러면서 본 거였다. 한국에서 재난영화를 나 말고 누군가 한다면 남은 소재는 블랙아웃 아니면 원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찰나에 후쿠시마 사고가 난 거다. 우리도 노후 원전이 있으니 대책을 세우고 여러 논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며 조용히 지나가려 하더라.

<연가시>가 혹시라도 잘 되면 힘들게 찍으며 배운 노하우를 제대로 된 예산에서 마음껏 발휘할 재난영화를 하겠다고 되뇌고 있었다. 한이 맺혀서. 그러다가 <연가시>가 어느 정도 됐고, 아무래도 민감한 소재라 투자사를 살짝 떠봤지. 다음엔 이런 소재가 있는데~ 해서 '에이!' 이런 반응이면 안 하려고 했다. 근데 다들 '오! 좋아!' 이러더라. 원전 소재의 파급력이 상업적으로 계산되니 나오는 반응이었다. 깊이 파면 위험하지 않나 이런 생각보단 일단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어? 세상이 내 생각보단 희망적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지(웃음)."

"난 사실 시나리오만 보고도 이미 만족이었다. 징징 울면서 봤다(웃음). 더군다나 나는 영화화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아니었나. 영화로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눈물 날 정도였는데 <판도라>는 대놓고 울리잖나. 시나리오 보고 울었고, 영화를 보면서도 울었다. 그래픽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사진 한 장 보내면 그걸 딱 구현해내더라. 스토리 자체는 내가 손대면 안 되는 거고, 숫자들과 전문용어들에 대해 조언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게 탈핵 운동하시는 분들은 상업영화 형식을 거부할 수도 있잖나. 사실을 드라마에 얹어서 가니까. 근데 교수님은 흔쾌히 이해하셨다. 또 영화적 내용에 개입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교수님은 안 그러셨다. 뭐 이 영화가 나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분들은 뭐가 사실과 다른지 현미경을 들이대겠지. 그래서 수치 하나 단어 하나 등을 면밀히 교수님께 확인받았다. 그 외에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것들, 지명 사용이나 회사명 사용(한국수력원자력이 영화에서 대한수력원자력으로 표기되는 등) 같은 것도 자문받았다."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연가시> 이후 연이어 재난 영화를 선보인 것에 박정우 감독은 "정신차리지 않으면 속편을 만들겠다"며 호기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극적 긴장감을 전하며 어느새 그는 재난영화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다. ⓒ 권우성


보이지 않는 공포

그렇게 해서 등장한 영화는 21일 현재 기준으로 340만 명이 관람했다. 12월 초 비수기를 감안하면 폭발적 반응이다. 재난영화 장르와 가족애를 강조한 작품 자체에 대해 여러 평가 나오고 있다. 만든 이 입장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가장 과제였을 터. 이에 관해 물었다.

- 사실 현실에선 원전 사고를 겪은 국가는 여전히 암울한데 영화는 나름 희망적이다.
"체르노빌도 여전히 30년이 지났지만, 복구 중이다. 아니, 복구가 아닌 버티고 있는 거지. 후쿠시마도 그렇고. <판도라>도 현실대로라면 절망적이고 비참하게 끝나야 한다. 그렇게 끝내도 되지만 그래도 이런 사고가 나기 전에 우리에겐 막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마지막을 절망으로 끝내는 건 우리 정서상 감독으로서는 몹쓸 짓이라 생각했고. 과학적으로 따지면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몇십 년 뒤에도 복구를 위해 수만 명이 거기 매달려야 하지. 뭐 부산까진 모든 게 다 망가져 있을 거고. 어휴, 이렇게 만들었는데 정신 못 차리고 세상이 그대로라면 속편 또 만들어버릴 거다! (웃음)"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 <판도라>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진'이었다. ⓒ NEW


- 영화에서 원전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진이 등장한다. 이점에 있어서 교수님 생각은 어땠는지. 또 감독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를 묘사하는 게 참 힘들었을 거 같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유일한 불만 지점이었다(웃음). 왜 하필 지진일까. 그간 발생한 원전 사고 사례를 보면 미국 스리마일 건은 사람들의 실수, 즉 인재였고, 체르노빌은 과학자들의 실수, 후쿠시마는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였다. 핵사고의 원인은 엄청 많다. 그중에 딱 세 가지만 나왔을 뿐이다. 이 세 개 중 하나가 반복될 확률은 아주 낮다고 생각했다. 다음 사고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원인일 거라 봤지. 근데 하필 지진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리얼리티가 더 좋아질 거 같더라. 요즘 보면 사람의 상상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고.

"최근 발생한 경주 지진이 아니었으면 <판도라>를 보고 절반 이상은 '설마, 진짜 이럴까?' 생각했을 거다. 교수님도 책에 쓰셨듯 새로운 원인이 등장할 확률이 높을 것 같긴 하다. 깊이 들어가면 부식된 파이프 하나가 터져서 사고 날 수도 있다. 여러 자료를 보다가 우리나라가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고 원전이 활성단층 위에 지어졌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그걸 묵살한 채 지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몇백 년 주기로 큰 지진이 있었다는 문헌도 있더라. 개연성이 있는 거지.

교수님은 더 잘 아시겠지만, 원전 구조 파악과 촬영 협조를 얻기 위해 필리핀 원전에 가봤다. 우리나라 원전과 같은 구조인 시설이다. 사실 원자력발전소 하면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로 보잖나. 갔더니 보일러실 같더라. 엄청 많은 파이프와 배선으로 뒤엉킨 건물이랄까. 이게 진도 7을 버틴다?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만약 그 이상의 지진이 오면 어떻게 되나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상상이라 생각하고 지진을 넣었다. 원인보단 사고 이후를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 그땐 크게 의심치 않았는데 실제로 지진이 딱 나버리니까 당황했었지."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영화를 통해 이미 만난 인연이지만 개봉 직후까지 여타 할 교류가 없었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교수는 서로에 대해서고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김익중 교수는 한수원이 실제로 어떻게 비협조적이었고 압력을 넣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박정우 감독 대답에 "역시"를 연발하며 응답하는 모습. ⓒ 권우성


영화 <판도라>의 주요 설정에 대한 두 번째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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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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