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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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준비 기간, 그리고 촬영 종료 후 1년여의 기다림이 있었다. 모든 영화가 쉽게 탄생하는 게 아니라지만 <판도라>는 조금 더 각별해 보인다. 아무래도 영화가 품고 있는 소재와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클 것이다.
지난 29일 언론에 선공개 된 <판도라>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담고 있었다. 물론 재난영화라는 특성상 현실과 매우 동떨어질 수는 없지만 이미 4년 전 기획된 영화가 이토록 2016년 대한민국의 재난 대비 시스템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을 줄이야. 작품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대변하는 격이었고, 그들의 대사 역시 일상 언어지만 상징하는 바가 컸다. 상업 영화의 탈을 썼지만 마냥 재미로 볼 수만은 없는 <판도라>를 각 캐릭터와 대사별로 나눠 생각해 보았다.
[하나] 재난 콘트롤타워, 정부 관료와 관계부처 사람들<판도라>에서 갈등의 축이자 위기 촉발의 원인이 되는 이들이 바로 정부 인원들이다. 각종 재난과 사건사고에서 국민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존재들이 실은 위기의 원인으로 등장한다는 게 참 씁쓸하다. 이게 사실 대한민국의 단면이기도 하다. 노후 원전 한별 1호기는 지난 1980년에 지어진 실제 국내 원자로 한빛 1호기를 상징하는 듯하며, 원자력발전소 운영에 실질 책임이 있는 공기업 대한수력원자력은 마찬가지로 한국수력원자력의 축소판이다.
노후 원전에 대한 대책 미비와 무리한 운영, 그리고 보신주의 등으로 <판도라> 속 국민들은 비극을 겪는다. 1차적으로는 콘트롤 타워 마비 때문이다. 영화는 노후 원전 관련 보고를 임의로 누락한 총리(이경영 분)와 이를 끝까지 알아보지 않은 대통령 석호(김명민 분)의 무능함을 묘사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사고가 예견되었지만 총리는 대통령과 '정치적' 기 싸움을 한다. 오랜 연륜을 내세워 필요한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청와대 수석들은 이들 눈치만 본다. 이를 파헤치려는 언론에겐 강경 대응 일색이며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 정확하게 지금 청와대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졌던 일과 닮아 있다.
또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는 수력원자력 임원들의 모습도 눈에 밟힌다. 직원들이 끊임없이 위험을 예견하고 호소하지만 묵살하는 모습 역시 우리가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사 혹은 책임자들의 태도다.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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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시민들의 양가적 태도<판도라>는 총체적 재난이 특정 그룹에 의한 일방적인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원전이 들어온 이래 마을 상권이 파괴되었음에도 경주, 양산, 부산 시민들 일부는 자신들에게 떨어진 보상금 등으로 충분히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각성하지 않은 이들은 원전이 싫다고 하는 이들을 향해 누구보다 분노를 표출한다.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에게 "지가 시원찮아 그래 된 기다"고 일갈하거나 무능력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잘만 하고 있다!"고 답하는 모습 등이 대표적인 예다.
동시에 <판도라>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도 시민들 때문이다. 사고 이후 수습에 나서는 이들의 면면을 보자. 수력원자력 본사 직원들이 책임 회피를 하는 동안 일용직, 파견직, 계약직 직원들이 나선다. 정부의 무능력과 안일함에 대해 "사고는 저거들이 쳐놓고, 또 국민들 보고 수습하란다"고 재혁이 내뱉는 대사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마음에 품고 있는 말 아닐까. 영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선한 의지로 상식적 행동을 하는 시민들의 용기를 에둘러 피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한 숱한 이름 없는 영웅들, 최근 부산 공내터널 어린이 버스 전복사고에서 함께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버스를 움직인 이들 모두 일반 시민들이었다. <판도라>는 우리 안에 살아있는 양심의 목소리를 다수의 캐릭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했다.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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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 속 캐릭터가 전혀 남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관객에 따라 <판도라>의 신파성이나 설명적 내용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소재와 구성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거짓말을 해왔고, 공개해야 할 정보를 가리거나 축소, 은폐하기도 했다. 납품 비리와 품질성적서 위조 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터지면 곧 재앙'인 원전을 안심하고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원전 전문가 김익중 교수는 저서 <한국 탈핵>에서 "일본 이후 원전 사고가 날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고, 그 확률을 27%로 분석했다. 무서운 지적이다.
갑갑한 현실에 또 이런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관람을 권한다. 관념과 간접 체험의 괴리도 매우 크니 말이다. 모태 펀트 투자 철회, 각종 보이지 않는 압력 등으로 <판도라>의 제작 과정이 험난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영화 작품 하나에도 이런 압박을 행사했을까.
솔직해지자. 우리 정부는 이미 몇 차례 중요한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구미 불산 누출 사건, 세월호 참사, 경주 지진, 각종 대형 태풍의 반복 등을 통해 드러난 허점으로 누가 고통 받았고, 피해를 입었는가. 촌각을 다투고, 1분 1초가 위급했을 2014년 4월 16일 대통령은 7분도 70분도 아닌 7시간이나 부재해놓고 이리 당당한가.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는 장르영화라기 보단 우리 사회 묵시록이다.
한줄평 : 국민을 구하는 위대한 국민들, 각자도생을 말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평점 : ★★★☆(3.5/5)
영화 <판도라> 관련 정보 |
감독 : 박정우 출연 : 김남길, 김영애, 문정희, 정진영, 이경영, 강신일, 김대명, 유승목, 김주현, 김명민 등 제공 및 배급 : NEW 제작 : CAC 엔터테인먼트 공동 제작 : 시네마파크 크랭크인 : 2015년 3월 7일 크랭크업 : 2015년 7월 21일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36분 개봉 : 2016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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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박근혜 대통령과 판박이... 끔찍해서 끝까지 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