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부 소성욱, 김용민 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 1심 선고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소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성소수자 부부 소성욱, 김용민 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 1심 선고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소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 연합뉴스

 
부부의 자격
 
남자들끼리 결혼한 커플이 있다. 김용민&소성욱, 두 사람은 지난 2017년부터 사실혼 관계(혼인예식 2019년)를 유지해왔다. 2020년 김용민, 소성욱 부부는 보험료 감액, 처방전 발부 등 필요한 경우 배우자가 맡을 법한 일들을 감당하고자 건강보험공단에 배우자 자격으로 피부양자 등록이 되는지에 관한 문의를 했었다. 그때 건보공단 측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고, 그들은 사실혼 관계 배우자로 피부양자 등록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허가가 났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쁘고 감격적이었던 이 사실이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상세히 공개되었을 무렵, 등록이 취소되었다. 이유는 '등록허가는 실수였습니다'였다. 2021년 말 김용민, 소성욱 부부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7일, 그들은 결과를 받았다. 패소! 둘의 성별이 동일하기 때문에 배우자-피부양자로는 등록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슬프고 안타까운 결과였다. 
 
행정소송 판결문에 명시돼 있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혼인제도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입법 문제에 걸려있다. 그래서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프랑스, 남아공, 미국, 우루과이 등 전세계 31개국이 입법과정(&사회적 합의)을 통해 동성결혼을 허가하여 명문화하는 절차를 굳이 밟았다. 그러므로, 한국사회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혼인제도를 새로이 개념정의하게만 된다면 동성 배우자들에게 혼인(시민적 결합?)은 물론 그에 따르는 법률적 보장과 혜택이 제공될 수 있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렇지 않기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략 360명 남짓 존재한다고 집계되는 동성부부는 '부부의 자격'을 얻지 못한 상태다. 
 
위와 같은 김용민, 소성욱 부부 사례를 비롯해 간간이 언론에 뜨는 동성애자 관련 이슈를 접할 때면 나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전개해보곤 했다. 그러던 차에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는데, 탈동성애 운동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었다. 나는 내 생각의 방향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관람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프레이 어웨이>, 상영시간은 1시간 41분. 
      
영화 포스터 <프레이 어웨이>

▲ 영화 포스터 <프레이 어웨이> ⓒ 넷플릭스

 
동성애는 질병인가?
 
1976년 미국에,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치유를 목적으로 한 단체가 설립됐다. 단체의 이름은 '엑소더스(탈출)'였다. <프레이 어웨이>는 '엑소더스'가 전개한 탈동성애 운동이 동성애자들에게 자기기만을 권하고 자기비하를 조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짚어준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존 폴크다. 
 
존은 탈동성애를 성취해 이성애자가 되어, 자기처럼 과거에 레즈비언이었던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둘 낳고 이른바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는 동안 존은 자기의 드라마틱한 탈동성애 과정을 기꺼이 대중에게 공개하였다. 어느새 유명해진 그는 '엑소더스'의 대표가 되어 탈동성애 운동에 앞장서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와중에 웬일인지 존은 불현듯 자기 삶이 진실되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게이바에 출입하지 않는 행동으로 게이가 아닌 게 증명되는가?'를 자문할 때마다 존은 괴로웠다. 행동으로 보면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영혼의 눈으로 자기의 감정흐름을 들여다보면 자기가 여전히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그럴 때일수록 존은 더 이를 악물고 기를 쓰며 탈동성애 과업을 추구했다. 혹여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 속 감정을 들킬세라 더욱 '노오오력'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괴로움이 더해갔다. 결국 그는 탈동성애에서 탈출했고, 현재는 동성연인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기독교 쪽에서 탈동성애(반동성애?)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탈동성애는 기독교인들이 추구하고 지지하는 운동으로 일어났고 번져나갔다. '엑소더스'와 '리빙호프' 등은 모두 기독교조직을 기반으로 했다. 그들이 전개한 탈동성애 운동의 기본방향은 동성애자들에게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기를 쓰고 탈동성애 추구하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엑소더스'가 추구했던 탈동성애의 기초는 '동성애=질병'이라는 명제였다. 이 명제는 부모의 아동학대가 동성애라는 질병을 일으킨다는 (과학적·의학적 근거는 좀 희박한) 이론으로 나아갔다. 아동학대 경험이 전혀 없는 게이·레즈비언들이 다수 있었지만, 그런 실제자료는 무시되었다. 여기에 기독교적 교리가 덧붙여진다. '인간=죄인'이라는 기독교의 원죄 교리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고 '동성애자=죄인'이 최대한 부각된다. 이로써 탈동성애 치유(교육) 프로그램의 구조가 완성된다.  
 
탈동성애(Ex-Gay)와 탈탈동성애(Ex-Ex-Gay)
 
한편, 영화 <프레이 어웨이>는 탈동성애 운동에 참여하는 기독교조직들이 사회적 분노를 촉발하거나 활용했음을 지적한다. '엑소더스'는 신앙적 동기를 기반으로 했지만, 그들에게는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열 받기' 쉬운 주제의 하나인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워 세력을 불려나갔다. 그렇게 하여 커진 세력을 등에 업고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거나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동성애를 직접 반대하며 동시에 치유를 강조할 때에는 이른바 '눈덩이 이론'이 주효했다. 예컨대 "동성을 사랑한다고 동성결혼을 허락하면, 장차 아동을 사랑한다는 아동성애자의 아동결혼도 허락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질문으로 도발하는 것이다(영화 안에서 실제로 나온 질문).  
 
탈동성애 운동단체 중 하나인 '리빙호프'에 참여했던 줄리(레즈비언)는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단체행사에 참여할 때면 끝도 없는 자기비하에 시달렸고, '이를 악물고 기를 쓰고 탈동성애를 추구'하는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자기를 스스로 처벌하고자 위험천만한 자해를 해야 했다. 한편 미국 내 기독교권리단체인 '가정연구위원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베트(양성애자)는 공황장애로 오래도록 고통받았다. 이들 외에도 탈동성애 운동에 동참한 동성애 당사자들은 자신의 대외적 활동과 내면적 현실의 괴리를 목도하면서, 내면에서 죄의식의 끔찍한 폭주를 겪어야 했다. 
 
미국의 몇몇 주에서 동성혼인이 허용되어가던 2013년 '엑소더스'는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그 무렵 창립자, 대표 등 지도자들이 탈동성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탈퇴하거나 타율적으로 퇴출되었다. 그러나, '엑소더스'가 활동을 중단했다 하여 탈동성애 운동이 중단된 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리스토어드 호프 네트웍(Restored Hope Network)'이라는 신생단체가 생겨, 탈동성애 운동을 다시금 힘있게 이어가고 있다. 
 
기억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미국의 로자리아 버터필드, 한국의 이요나 목사처럼 동성애를 치유(?)한 사람들의 사례도 없지 않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연을 대중에게 고백(간증)하며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영향을 주고자 노력한다. 마치 모든 동성애자들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노오오력'을 한다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그런데, A라는 사람이 혼신을 다해 '노오오력'을 기울여야만 (어떤 이들은 그런 '노오오력' 없이 유지하는) 이성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노오오력'이 자칫 소홀해질 때 이성애 정체성이 신속히 위태로워진다면, A의 진짜 정체는 과연 뭘까? A가 인위적으로 자신을 감추거나 수정하려는 '노오오력'을 거둬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진짜 A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일까? 그 진짜 A는 질병에 걸린 병자인 걸까? 
 
<프레이 어웨이>의 메시지
 
둘러보면 (미국사회가 그렇듯) 우리 사회에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는 이들이 제법 많다. 동성혼인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 펄쩍 뛰는 이들도 있다. 물론 동성애 이슈를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면에서 사고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동성혼인 허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반대 쪽이든 찬성 쪽이든 정해지지 않았다. <프레이 어웨이>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회적 합의를 당장 이루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적 합의는 강요나 독재로는 언감생심이고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도 아니라서,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자기대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프레이 어웨이>는 동성애 이슈에 대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 한편 생각의 방향에 관하여서는 유용한 조언을 건네준다. '동성애=질병'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탈동성애가 치유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례들을 확인하며 여타의 대안들에 대한 궁리로 나아갈 것 같다. 반대로 동성혼인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 대화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쪽으로 진전해갈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충돌보다는 합의를 위해 서로 소통, 협동하겠다는 기본전제를 갖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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