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NBA 농구경기 중에는 선수의 반칙이나 심판의 판정과 관련해 사소한 다툼이나 싸움이 일어나곤 한다. 거의 항상 있는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싸움들은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튀어나왔다가, 대개의 경우 심판들이 나서면 대충 수습되고 경기가 속개된다.  

그런데 2004년 11월의 어느 날, 미국 디트로이트, 시즌 준결승전이 열린 '팰리스 오브 오번필스(아래 팰리스)' 경기장에서 시작된 싸움은 위에서 말한 대개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날 싸움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됐는데, 싸움의 모든 행위들이 기록화면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록화면들과 당시 싸움 연루자들의 인터뷰를 모아 다큐멘터리 <말하지 못한 이야기: 경쟁에서 전쟁으로>가 제작됐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며, '말하지 못한 이야기' 컬렉션 중 한 편이다(상영시간 69분).
 
영화 스틸컷  인디애나 페이서스 팀의 주장 레지 밀러

▲ 영화 스틸컷 인디애나 페이서스 팀의 주장 레지 밀러 ⓒ 넷플릭스

 
2004년 11월, '팰리스' 경기장에서 라이벌 상대인 두 팀이 경기를 시작했다(인디애나 페이서스 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서로 막상막하의 팀 전력을 자랑해온 두 팀이었으나, 그날은 웬일인지 홈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DP)가 20점 차로 속절없이 지고 있었다. 모처럼 기대를 잔뜩 안고 경기장을 찾았던 홈팀(DP팀) 관중들은 몹시 실망해서 어웨이팀(IP팀) 선수들을 바라보는 눈에 분노, 아니 거의 살기가 들어차고 있던 차였다.

그때 경기 막바지, 20 앞서가던 IP팀에서 (경기시간 종료까지 20점 차를 지키면 될 뿐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거칠고 의도적인 파울이 나왔다. DP팀 선수들이 즉각적으로 그 파울에 반발하였다. 파울 플레이를 한 IP팀 선수에게 화를 냈고, 심판에게는 항의를 했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장 안에서 선수나 관중 모두 지나치게 과열되어있다 보니, 각 팀에 소속된 몇몇 선수들이 자기 팀 소속 선수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혹은 동료애를 느끼며) 반사적으로 경기장으로 난입(말하자면 '참전')함으로써 일이 커졌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평상시 싸움의 수위에서 아주 많이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라이벌 경기라서 선수들끼리 경기의 규칙을 조금 격렬히 다투고 관중이 우우우~ 흥분을 보이며 야유하는 일상적 싸움처럼 보였다.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심판들과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서로 엉켜서 밀치고 밀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곧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당시 격렬한 감정처리를 위해 평소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던 IP팀의 선수(론 아테스트)가 상담장면에서 자기가 경험했던 대로 기록석 책상 위로 올라가 누워 평정을 취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는 앞서 파울 플레이를 자행한 선수로서 방금 전까지의 싸움에서 말하자면 도화선 역할을 했던 당사자였다.
 
영화 스틸컷 당시 중계화면에 잡힌 장면(기록석 책상 위에 론이 드러누워있다. 하늘색 원)

▲ 영화 스틸컷 당시 중계화면에 잡힌 장면(기록석 책상 위에 론이 드러누워있다. 하늘색 원) ⓒ 넷플릭스

     
그런데, 론이 기록석 책상 위에 드러눕는 모습은 약간 기괴했다. 코트 안에선 아직 상황정리 중이라 선수들과 심판이 뒤엉켜 여전히 어수선한데 혼자서 마치 바닷가에 휴가라도 온 사람처럼 머리 뒤쪽으로 팔을 두르며 벌렁 드러누웠기 때문이다.

DP팀 관중 입장에서 볼 때 그건 상당히 무례해 보이는 행동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자기네가 뒤지고 있어 못내 아쉬운 차에 자기 팀 선수가 의도적 반칙을 당했고, 심지어 선수들끼리 싸우는 와중에 자기 팀 선수가 억울하게 퇴장당해서 분한 마음이 올라와있는 판국인데 심지어 반칙 선수가 편하게(?) 드러눕는 장면을 연출했으니(그것도 경기기록을 담당하는 기록석 책상 위에서), 그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텐데, DP팀 쪽 관중석 뒷쪽으로부터 맥주컵이 하나 론을 향해, 습격하듯 날아들었다. 그러자 나름 평정을 취하려 노력중이었음에도 미처 감정의 평정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론이 튕기듯 일어나 맥주컵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알같이 솟구쳤다. 그때 당시는 정작 맥주컵을 던진 당사자를 찾아내진 못했지만, 우승후보 농구팀 현역 주전선수인 그가 긴 다리로 겅중겅중 빠르게 관중석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전투력 높은 군인이 일반시민을 공격하는 모습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다.

다음 순간 팰리스 경기장은 회복 불가능한 혹독한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선수뿐 아니라 관중들 거의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DP팀 관중들 중 어떤 이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더욱더 거칠어지기만 했다. 혹자는 IP팀 선수를 향해 걸상을 집어던졌고, 혹자는 IP팀 선수를 때리려고 무모하게 돌진했다. 여러 곳에서 몸싸움이 새로 일어났다. 몸싸움이 안 되는 축은 대피하는 IP팀 선수들 머리 위로 경기 내내 먹고 있던 간식과 맥주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부었다.
 
영화 스틸컷 당시 기록화면 중 한 장면(중계방송 캐스터가 경기 중계가 아닌 진짜 싸움 중계를 하고 있다.)

▲ 영화 스틸컷 당시 기록화면 중 한 장면(중계방송 캐스터가 경기 중계가 아닌 진짜 싸움 중계를 하고 있다.) ⓒ 넷플릭스

 
심판들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경찰이 이미 출동해서 와있었음에도 팰리스 경기장 안은 오래도록 아수라장인 채로 방치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지 못한 이야기: 경쟁에서 전쟁으로>는 그 모든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작품 초반, 그날 싸움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IP팀의 저메인 오닐은 해명도 변명도 필요없다면서, "그날 기록화면을 편견 없이 그대로 다 지켜본다면 누구나 진짜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말이 맞다. 2004년 당시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들은 기록화면들을 짜깁기(소위 '악마의 편집')해서 싸움에 직접 참여한 선수들에게 사건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애썼지만,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진짜 문제는 관중 가운데 몇몇 폭력적인 사람들에게 있는 듯 보였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기록화면들 중 쟁점이 될 만한 내용들을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기색이 짙다. 사건 당시, 모든 주요 언론이 선수들의 잘못으로 사건을 보도하자 농구경기 관중 숫자가 줄어들세라 깜짝 놀라 선수들을 중징계하겠다고 이례적으로 황급히 기자회견을 해버린 구단 관계자, 관중 가운데 폭력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았던 점, 이미 패배한 농구경기에서 재미를 못 느끼고 결국 폭력적 싸움 자체를 즐긴 사람들(선수들 아님)의 존재 등을 지적한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그날 농구 준결승전 경기의 일상적 다툼(경쟁)이 어쩌다 폭력적 패싸움(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는지, 그 직접적 계기가 되어준 두 가지 행동을 명확히 포착할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그 두 행동을 공통적으로 의미있게 지적하고, 기록화면에서도 두 가지 문제적 행동이 잘 드러나있다. 하나는 론의 눈치 없는 드러누움이고, 다른 하나는 론의 드러누움에 대한 반사적 대응인 맥주컵 투척이었다.
 
두 행동 중 무엇이 더 문제였을까? 어느 것이 더 폭력적이었을까? 어느 쪽이 폭력적 싸움의 직접적 혹은 본질적 기폭제가 되었을까? 론은 소위 '맥주컵 투척을 당해 마땅할 만한 악한 짓'을 한 것일까? 론의 드러눕는 행동이 맥주컵으로 제지될 수 있는 종류의 행동이었을까? 맥주컵 투척행위는 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다만 따끔하게 지적하며 그 행동을 제지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화풀이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여러 질문들이 줄줄이 떠오를 수 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만큼 역동적이면서도 실화라서 더욱 묵직한 이 다큐멘터리를, 올림픽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어차피 예상했음에도 홈팀 편파판정이 지나치게 연발되는 듯한 베이징 동계올림픽 시즌에 때맞춰 관람하는 것은 나름의 특별한 의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4년마다 한 번씩 전 세계인들의 스포츠 축제로 열리는 올림픽 경기장에서야 경쟁이 전쟁으로 변하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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