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가 시작될 때까지 프랑스인들은 '연쇄살인범'이라는 건 영국 또는 미국에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1970년대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선 이미 연쇄살인사건이 활발했고(?), 그중 미국이 확실히 연쇄살인사건의 온상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먼 앤 머더러 영화포스터

▲ 우먼 앤 머더러 영화포스터 ⓒ 넷플릭스

 
 
그러던 프랑스에, 1991년부터 젊은 여성들이 칼에 수십 번 찔려 죽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비교, 검토해본 결과 누구도 연쇄살인사건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처음 대하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하여 프랑스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직 알지 못했다. 지문이나 DNA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해야 하며, 신속히 대조할 수 있도록 기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에도 프랑스사람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을 정도였다. 
 
수사관들은 연쇄살인사건 노하우도 없이, 법의학적 도움도 딱히 불충분한 상태에서 어떻든 수사를 진행해나갔다. 그러느라 오래도록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옆나라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프랑스에 와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해(1997년), 그 기간 동안에는 연쇄살인사건에 투여될 수사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1991년부터 시작된 연쇄살인사건 수사가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교통사고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야 간신히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지문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있지 않아 사건파일들을 하나씩 열어서 일일이 지문을 대조하는 수작업을 오래도록 진행해야 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그 수작업을 통해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범인의 이름은 '기 조르주'라는 청년이었다. 
 
다큐멘터리 <우먼 앤 머더러>는 체포된 범인 기 조르주를 둘러싸고, 여러 여성들이 곳곳에 포진되어있었다는 사실에 각별히 주목한다. 우선 피해자의 성별이 전원 여성이었다. 또, 기 조르주를 수사한 수사팀의 대장도 여성이었다. 다음으로 기 조르주를 기소한 검사가 여성이었으며, 기 조르주를 변호한 이들은 부부 변호사였는데 두 사람 중 여성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었던 판사도 여성이었다. 
 
그 여성들은 한자리에 모여 기 조르주를 붙잡기 위해 협의하거나 의논한 다음에 공조활동을 펼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성실히 해냈을 따름이었다. 수사팀의 대장은 사건해결의 의지를 불사르며,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인내하며 수사를 진행했다. 그녀는 수작업을 진행하는 전문가를 계속 격려해 마침내 결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여성 검사는 법정에서 절묘하게 기 조르주를 불안하게 만들더니 마침내 그를 의도적으로 자극해 그로 하여금 무심결에 범행을 시인하도록 이끌었다. 
 
한편 부부 변호사는 기 조르주와 인간적 신뢰를 유지하면서 그가 재판에 협조할 수 있도록 도왔다. 부부 중 아내 변호사는 기 조르주가 여성에게 배신당하는 사태를 겪지 않도록 노력했음을 털어놓았다. 마침내 그녀는 (변호사라는 본분을 잊기라도 한 듯) 흡사 상담가의 상담기록 같은 최후변론을 전개한다.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의 무죄를 주야장천 주장하지 않은 것이다. 허나 그녀는 기 조르주를 온정주의적으로 두둔&옹호한 게 아니라, 그의 인생이 뒤틀린 지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였다. 그리고 부부 중 남편 변호사는 (수사관에게도 자백하지 않았는데) 법정에서 기 조르주가 범행을 자백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공을 세웠다. 한 명 한 명 피해자의 이름을 불러가며 "당신이 했습니까?"라고 차근차근 물었다. 그의 질문에 기 조르주는 "예"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법정에 출석했던 수많은 피해자의 어머니들 중 한 명은, 피해자의 이름들 뒤로 따라붙는 기 조르주의 "예"라는 반복적 범죄시인이 비로소 다 끝났을 때 "고맙다!"고 응답하였다. 재판이 끝난 뒤 그 어머니는 자기의 말을 듣고 기 조르주가 고개를 끄덕였음을 의미있게 기억했다. 그녀는 그것을 '대화 아닌 대화'로 표현했다. 범죄자와 피해자 유가족 사이에 최소한도의 유의미한 소통이 일어났음을 느꼈다는 뜻일까? 

 
우먼 앤 머더러 "고맙다!"고 말한 여성(피해자의 어머니 중 1인)

▲ 우먼 앤 머더러 "고맙다!"고 말한 여성(피해자의 어머니 중 1인) ⓒ 넷플릭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피해자의 어머니들 중 또다른 한 명은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사는 기 조르주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어머니의 편지내용은 무조건 기 조르주를 비난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용서한다"고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 어머니는 기 조르주와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어머니의 편지에 기 조르주는 답장을 했고, 차츰차츰 답장에 자신의 삶을 상세히 써보내기에 이르렀다. 시일이 흐를수록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의 양이 엄청나게 쌓여갔다. 그 어머니는 향후 연쇄살인사건 예방을 위한 연쇄살인범 연구가 기획되었을 때 그렇게 쌓인 편지를 훌륭한 연구자료로 가져다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범죄가 일어나면 해당 범죄자를 반드시 붙잡아 처벌해야 한다. 단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흉악한 범죄가 그 사회 안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일도 병행하여야 한다. <우먼 앤 머더러>는 기 조르주를 둘러싸고 주로 여성들이 바로 그 예방하는 일을 해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짚어준다. 
 
그런데 나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범죄예방 과업을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며, 같이 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범죄예방 과업에 참여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품는다면 성별의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우먼 앤 머더러>에서도 따지고 보면 부부 변호사 중 남편 변호사가 제 역할을 해냈음을 알 수 있다. 부부가 힘을 합쳐 기 조르주를 변호했는데, 그들의 의도는 변호사의 흔한 목표(무죄 혹은 무혐의 받아내기!)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연쇄살인사건의 진상을 적합하게 밝혀내겠다는 의도, 그리고 범죄자 주변의 비뚤어진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여 그 현실을 법정에 출석한 모든 이들과 공유하겠다는 의도를 견지했다. 
 
그런 데다 <우먼 앤 머더러>는 영화는 끝나기 직전, 한 가지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 이 사건 이후 유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프랑스사람들이 지문 및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동의했고, 프랑스정부가 이를 승인했다는 내용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들만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찬성하고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무조건 공격했다면 그런 일이 프랑스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범죄에 대항하여 진정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여자사람, 남자사람들이 충분히 많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본 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남의 나라 연쇄살인범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에 대고? 그렇지만 사실이다. 연쇄살인사건 초기에서 중기에 이르도록, 핏대 올려가며 두 눈 부릅떠가며 개인정보 보호를 외치며,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기계화를 격렬히 반대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려보라. 그들의 전격적 반전이 고맙지 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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