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사안에서 꼭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수십 년 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는 음모론을 매사에 적용하는 사고방식을 '편집증적 정치스타일'로 설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음모론에는 언제나 가열된 과장, 지나친 의심, 음모가 당연히 있을 거라는 인식과 감정의 판타지가 수반되어 있다(전상진, 한국사회학대회 논문집, 2009). 

특정 부류의 음모론에 이끌리면 자기가 알고 있는 음모론과 다른 관점을 표방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말 같지 않다'라며 배척한다. 확증편향이다. 바로 그것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에 담겨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중 '지구가 평면이다(Flat Earth)'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이끄는 몇몇 사람들 중 가장 유력한 인물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마크 사전트다. 유튜브 등 개인방송을 통해 마크는 우리의 지구가 크고 둥그런 평평한 땅이며 그 위에 하늘이 반원형 뚜껑처럼 덮여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스틸컷 마크 서전트: 평면지구를 들고 있다.

▲ 영화 스틸컷 마크 서전트: 평면지구를 들고 있다. ⓒ 넷플릭스

 

그가 그런 주장을 하기까지 그를 추동한 것이 바로 음모론이다. 마크는 '지구는 둥글다(globe)'라는 것이 미항공우주국(NASA)과 전세계 과학자들이 가짜로 만들어낸 '공 모양, 구형(globularity)이론'의 소산이며 음모이므로,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구는 평평하다?
 
마크는 영화 <트루먼쇼>를 예시하며, 세트장 속 한 사람의 삶을 실시간 송출하며 광고료를 챙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상상해보라고 권한다. 구형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마크의 견해에 따르면) 평생 속는 줄도 모르고 속고 살아온 <트루먼쇼>의 '트루먼'들이다. 그렇게 속으며 살다 어느 날 구형이론의 허구성을 알게 되는 날이 올 텐데, 그러면 영화 말미에서 진실을 깨닫고 세트장 밖으로 탈출하는 트루먼처럼 온 지구인들이 세트장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마크는 덧붙인다. 
 
그러면 지구평면설의 근거는 무엇일까? 마크는 수평선과 지평선 어디를 바라본들 평평해 보이기만 하는데 어떻게 지구 전체가 곡선으로 이루어진 동그란 구형이라는 걸 믿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 마크의 그런 반문이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잠시 '구형이론이 틀린건가'라고 생각해보게 됐다.

게다가 영화는 지구평면설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마크 한 명이 아님을 알려준다. 마크는 현재 지구평면설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모아 '평면지구모임'을 창설해 활동하는 중인데, 회원들이 꽤 많다. '평면지구모임' 회원들 중 기술자와 예술가들도 간간이 끼어있긴 하나, 전문 과학자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 중 일부 열혈회원들은 스스로 실험을 설계해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평면지구모임' 회원들 중 레이저 광선 실험을 해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레이저 광선을 직선으로 멀리 쏘아서 두 개의 막대를 통과하도록 했을 때 만일 지구가 동그랗다면 첫 번째 막대와 두 번째 막대에 레이저 광선이 닿는 지점이 곡선의 각도만큼 서로 미세하게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그림 참조). 

만일 레이저 광선이 나간 지점과 레이저 광선이 닿은 두 지점(첫 번째 막대와 두 번째 막대)이 모두 완벽히 수평을 이룬다면 '지구는 평면'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는 것(앞서 마크의 반문과 유사한 사고구조를 보여줌). 
 
영화 스틸컷 지구가 평면일 때

▲ 영화 스틸컷 지구가 평면일 때 ⓒ 넷플릭스

   
영화 스틸컷 지구가 곡면을 이루고 있을 때

▲ 영화 스틸컷 지구가 곡면을 이루고 있을 때 ⓒ 넷플릭스

 
 
이 같은 '평면지구모임' 회원들의 독특한 실험과 주장들에 대하여 대다수 과학자들은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조언해주려 해도 그들이 거부하니, 나설 수도 없다. 
 
한편 똑같이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평면지구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한층 더 나아간 (혹은 깊이 들어간) 음모론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면지구모임' 회원들까지도 음모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평면지구모임'을 마크와 함께 이끄는 퍼트리샤의 이름 철자가 -CIA로 끝나는 것이 수상한데 그건 그녀가 CIA의 지원을 받고 있는 증거란다. 이 중첩된 음모론 그룹의 선두에는 매트 보일런이라는 사람이 있고, 매트와 마크는 사이가 좋지 않으며, 각각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동일한 지구평면설을 주장함에도 서로 불신, 반목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지구는 평평해야만 한다)
 
다큐멘터리는 마크와 퍼트리샤가 시애틀의 '휴스턴우주센터'에 방문했을 때의 일을 보여준다. 마크가 우주체험기계에 탑승해서 화면에 보이는 스타트 버튼을 눌렀는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알고보니 스타트 버튼은 화면터치식이 아니라 물리적 버튼식이며, 팔꿈치 근처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크와 퍼트리샤는 하하호호 웃으며 "기계가 고장났다(과학자들이 이런 것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의미에서)"고 비웃으며 통쾌해했다. 
 
이런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의미있게 소개하는 바 '더닝 크루거 효과'다. 더닝 크루거 효과란,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몹시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둘 다 현실파악에서 인지오류를 일으킨 것인데, 후자 즉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우 심리적으로 병증이 심각해질 수 있으며,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반대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를 비웃으며 멀리 할 수도 있으며, 심한 경우 인간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다 외톨이가 되면 자기와 비슷한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만을 찾게 되고, 그 사람들과 똘똘 뭉쳐 배타적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된다. 
 
그런 다음엔 집단에서 나가면 다시금 외톨이가 될까봐 집단적 확신을 유지하겠다는 선택을 한다. 살다 보면 언제고 집단적 확신과 다른 현실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때 과학적 태도를 지닌 사람은 더 나은 진실을 향하여 항상 업데이트할 태세가 돼 있다. 하지만 더닝 크루거 효과를 지닌 사람은 확신과 현실 사이 인지부조화의 해결방안으로 집단적 확신 거부가 아니라 '현실 거부'를 선택한다.  
 
영화 스틸컷 더닝 크루거 효과를 설명하는 과학자의 모습

▲ 영화 스틸컷 더닝 크루거 효과를 설명하는 과학자의 모습 ⓒ 넷플릭스

 
  
영화 스틸컷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한 과학자의 의견이 자막으로 깔려있다.)

▲ 영화 스틸컷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한 과학자의 의견이 자막으로 깔려있다.) ⓒ 넷플릭스

 
세상만사를 음모론으로 풀이해 버릇한다면, 음모론 없는 세상을 이해하기(아니, 살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없는 음모라도 만들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에 등장한 마크, 퍼트리샤를 비롯해 '평면지구모임' 회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 같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반 이후 뒷부분으로 가면서 시청자의 사유활동을 점점 깊이 자극한다. 마크의 형광 안경과 보타이, 퍼트리샤의 여신 의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평면지구모임' 회원들의 심경 발표를 그대로 들려주면서, 음모론자의 머릿속을 추론해보도록 이끈다. 
 
영화 스틸컷 마크의 형광 안경, 퍼트리샤의 여신 의상. (참고: 퍼트리샤는 여신스럽게 우아하게 등장한다.)

▲ 영화 스틸컷 마크의 형광 안경, 퍼트리샤의 여신 의상. (참고: 퍼트리샤는 여신스럽게 우아하게 등장한다.) ⓒ 넷플릭스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 제목이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이지만, 사실은 지구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음모론을 깊이 사유하게 하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작품 전반에 음모론 관련 의미있는 인터뷰 내용도 많고 음모론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화할지에 대한 대응방안도 들어있으니, 음모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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