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 따라선 <퍼핏 마스터>가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와 유사한 종류의 사기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을 것이다. 그러나 <퍼핏 마스터: 최악의 사기꾼을 잡아라(Puppet Master)>는 <데이트 앱 사기>와 약간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데이트 앱 사기>는 사랑, 우정, 연민 같은 우호적 정서를 악용한 전문 사기꾼의 이야기를 서술하지만, <퍼핏 마스터>는 이른바 납치범에게 자발적으로 동조하는 스톡홀름 신드롬, 자율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체념하는 심리적 '이상' 현상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듯 보인다.
 
영화 포스터  <퍼핏 마스터: 최악의 사기꾼을 잡아라>

▲ 영화 포스터 <퍼핏 마스터: 최악의 사기꾼을 잡아라> ⓒ 넷플릭스

 
총 3화로 구성되어있는 <퍼핏 마스터>에서 범인(가명 사용: 로버트 혹은 데이빗)은 이미 다 드러났다. 그럼에도 2022년 현재 아직도 체포 이전이다. 범인(혐의자)이 동거녀에게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지난 2003년 그(로버트)가 지금의 동거녀 말고 다른 피해자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고 있었을 때 체포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는 그와 함께 살고 있던 여성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가 돌봄의 명분으로 감금하고 있던 여성들도 그의 체포를 반기기는커녕 오히려 두려워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2003년 체포된 이후 2005년(1심)과 2007년(항소심)에서 두 차례 재판받을 때 로버트는 자신이 불법감금도 강제납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안타깝게도 피해여성들(남성도 한둘 포함)이 그의 주장을 근거있게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로버트가 꼬드겨 가출하게 해서 1993년부터 수년 동안 끌고 다닌 어린 대학생 청년들(여2, 남2)은, 표면으로만 보면 자진해서 그를 따라다닌 스승-제자 그룹 같았다. 어린 청년들은 도망칠 기회가 와도 도망칠 마음을 먹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 중 한 청년 새라는 로버트 일행과 함께 자기 집에 1박 2일 방문했을 때조차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자기 집에 남지도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로버트를 따라나섰다. 부모보다 로버트를 더 신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와 또 다른 청년(마리아)은 2003년 로버트가 체포될 때까지 무려 9년이 넘도록 별다른 반항행위도 탈출기도도 하지 않은 채 로버트와 함께 지냈다. 마리아의 경우엔, 그동안 로버트의 아이를 두 명 출산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재판부는 로버트를 불법감금, 강제납치의 범인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가출과 동거와 여행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로버트의 사기 수법에서 중요한 특징이 하나 포착되는데, 바로 그가 자신을 영국 비밀정보국의 국내방첩 부문, 일명 '엠아이파이브(MI5, Military Intelligence5)'의 조직원으로 소개하며, "너한테만 비밀정보를 알려주는 거야"라는 말로 비밀스러운 친밀성을 강조하며 접근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 입장에서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엠아이파이브 조직원의 말은 각별히 무겁게, 거의 신비롭게 들릴 수밖에 없다.
 
영화 스틸컷 로버트 혹은 데이빗 (최악의 사기꾼)

▲ 영화 스틸컷 로버트 혹은 데이빗 (최악의 사기꾼) ⓒ 넷플릭스

 
때마침 대학생 청년들이 로버트를 따라 나설 무렵(1993년)은 IRA 폭탄테러가 빈번히 일어나 엠아이파이브 조직원들이 비밀리에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자신을 엠아이파이브의 조직원으로 소개하는 한 남자(로버트)를 만난 대학생 네 명은 그가 향후 자기들을 보호 및 지도해줄 것으로 믿었다.

로버트는 삐끗 잘못하면 너희들이 오히려 폭탄테러 끄나풀로 오인되어 체포될지 모르니 이제부턴 친구도 믿지 말고 나만 따라와라, 강조하며 대학생 청년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었다. 로버트는 청년들의 공포심을 계속 유지시켰고, 두려움을 느낀 청년들은 로버트를 철저히 신뢰했다. 로버트는 이 청년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그들을 크고작은 일터에 위장취업시켜 푼돈을 벌어오게 하거나, 그들이 스스로 자기 집에 연락해 거액의 돈을 송금받을 수 있도록 시켰다. 청년들은 로버트를 완전히 신뢰하였기에 그의 명령이 떨어지는 족족 그대로 순종했다.
 
로버트는 그들을 데리고 다닌 지 5년쯤 지났을 무렵(1998년경), 상부의 명령이라며 이 청년 그룹을 해체했다. 그때부터는 그들을 따로따로 지배했다. 다행히 남학생 존은 로버트의 마수에서 시나브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여학생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새라는 환경이 열악한 로버트의 은신처에 감금됐고, 마리아는 또 다른 곳에서 로버트와 지내면서 온갖 폭행을 감수하며 임신과 출산을 두 번이나 반복하게 됐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로버트는 또 다른 피해자(킴)를 활용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킴에게 첩보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다고 미국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상급단계로 나아가는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도록 거금을 받아내라고 지시했다. 킴은 로버트가 지시하는 대로 수행했는데, 킴의 부모들이 경찰에 협력을 요청했다. 결국 미국과 영국 수사관들이 대대적인 공조수사를 비밀리에 전개해 킴과 함께 공항에 나타난 로버트를 체포할 수 있었다(그때가 2003년이었음).
 
로버트는 수사관들의 신문에 시종일관 '노 코멘트'로 응했지만, 수사관들은 그를 재판에 넘기는 한편 '캐리'라는 이름으로 강제개명되어 로버트가 들여보낸 집에서 가사돌보미로 숨어 살고 있던 새라를 추적해 찾아냈다. 이때 새라는 로버트로부터 스스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연 없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이 모든 범죄행각의 주범 로버트는 재판 결과 불법감금, 강제납치 혐의에서 무죄로 판명되었고, 곧 풀려나 자유인이 되었다(2009년). 자유인이 된 그는 얼른 데이빗으로 변신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장차 그의 손아귀에 자청해 들어올 사람을 물색했다. 이때 걸려든 여성이 두 남매를 키우며 즐겁게 잘 살고 있던 이혼녀 샌드라.
 
현재 샌드라는 자녀들에게서 떠나 오로지 데이빗(이전의 로버트)하고만 살고 있다. 샌드라는 이 다큐멘터리가 공개되기 며칠 전(2022년), 제작진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납치당한 것도 아니고 조종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자율적으로 데이빗과 함께 지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샌드라의 딸 소피, 아들 제이크는 어머니가 데이빗의 거짓말에 속았다고 이해하며,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를 걱정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산마저도 모두 데이빗에게 갖다바쳤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 소재조차 알려주지 않으며, 필요한 때에 전화연락만 하는 샌드라를 두 남매는 어린 청소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른 지금까지 계속 걱정하며 기다린다.
 
영화 스틸컷 <퍼핏 마스터>

▲ 영화 스틸컷 <퍼핏 마스터>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말미에서 두 남매는 어머니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고자, 로버트(지금의 데이빗)에게 9년간 감금되어 살았던 새라를 만나러 간다. 새라는 두 남매에게 말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도망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장담컨대 어머니에겐 자유가 없기에(I bet she has no freedom)."
 
새라의 말을 들으며, 자유가 없으면 자유가 없으니까 자유를 갖기 위해 더 도망치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불현듯 질문이 올라왔다. 상식적으로 생각컨대, 자유를 빼앗은 억압자로부터 도망쳐 벗어나야만 자유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새라는 정반대로 말했다. 자유가 없으면 도망칠 수 없다!
 
우리말로 자유는 한자어로 표기된 '자유(自由)' 한 가지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로 하나다(독일어 Freiheit, 프랑스어 liberté). 그런데 영어로 자유는 두 개의 단어로 갈라져있다(liberty와 freedom). 이 작품에서, 스톡홀름 증후군과 지독한 무기력증 같은 증상을 보이며 감시자로부터 도망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감시자가 없을 때조차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새라는 'liberty'가 아닌 'freedom'을 말했다. 철학자들이 두 자유의 뜻에 관해 "같으냐 다르냐 비슷하냐" 오랜 세월 동안 논쟁중이라던데, 나는 새라가 'liberty' 아닌 'freedom'을 말한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더불어 자유를 갖기 위해 도망친다, 자유를 갖고 있어야 도망칠 수 있다, 그 둘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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