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위조 사건>

▲ 영화 포스터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위조 사건> ⓒ 넷플릭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미국 뉴욕에서 초대형 사기사건이 발각됐다. 사기금액은 8천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900억 원)나 됐고, 사기기간도 길었다(약 20년 가까이). 그런데 이 사기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여성 미술품 중개인 1명이며, 그녀가 선고받은 형량은 '9개월 가택연금형'이었다. 
 
이 사건을 상세히 다룬 다큐멘터리가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위조 사건>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며 상영시간은 90분이다. 다큐멘터리는 이 사기사건 수사에서 용의선상에 올랐던 사람들의 인터뷰를(실형을 받은 여성 미술품 중개인을 제외하고) 다량 포함하고 있다. 
 
FBI가 혐의를 뒀던 용의자는 총 네 명이었다. 글라피라 로잘레스(미술품 중개인), 글라피라와 간헐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미술품을 거래한 앤 프리드먼(갤러리 관장), 글라피라에게 주문받아 미술품위조를 담당한 화가 첸 페이션(중국사람), 글라피라의 남자친구이자 전직 위조사기 범죄자 호세 카를로스 베르간티뇨스 디오스(스페인사람)다.  

미술 위조사건의 용의자 4명
 
글라피라 로잘레스 사기사건 용의자 & 범죄자. (용의자 중 유일하게 실형을 받은 사람)

▲ 글라피라 로잘레스 사기사건 용의자 & 범죄자. (용의자 중 유일하게 실형을 받은 사람) ⓒ 넷플릭스

 
<뒤통수의 심리학>을 펴낸 마리아 코나코바(작가)는 사기꾼들이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골라내는 데 능숙하다고 지적한다. 겉보기에 강인하든 연약하든 우아하든 고상하든 천진난만하든 고지식하든,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사기꾼 눈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사기꾼은 취약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면서 환심을 사는데, 그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면 원하는 대로 사기를 칠 수 있게 된다. 마리아의 결론에 따르면, 글라피라와 호세 커플은 취약한 사람의 심리를 아주 잘 이용한 사기꾼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FBI가 사건수사를 시작하자 호세는 홀연히 미국을 빠져나가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체포되지도 않았다. FBI가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써봤지만, 호세가 자진해서 미국에 들어오지 않는 한 그를 수사하거나 기소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스페인으로 날아가 호세를 만났다. 호세는 글라피라 혼자서 사기행각을 벌였을 거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호세는 앤을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호세는 거래 자체를 원체 즐기는 사람인지, 인터뷰를 마친 뒤 유쾌하게 웃으며 하모니카 하나를 보여주더니 '밥 딜런의 것'이라며 다큐멘터리 감독과 거래를 시도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미술품위조를 직접 담당한 중국인 화가 첸 페이션. 그는 대단한 기법과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매우 아름다웠고, 감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유명화가의 예술기법과 주제의식을 훌륭히 모방, 아니 위조했다. 그러나 첸의 존재가 FBI 수사팀에 알려졌을 때는 그가 이미 중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첸페이션 사기사건 용의자 중 한 명 (화가)

▲ 첸페이션 사기사건 용의자 중 한 명 (화가) ⓒ 넷플릭스

 
호세 경우와 마찬가지로 FBI 수사팀은 첸을 수사할 수 없었지만,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첸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첸은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자신은 미술품의 사본을 만든 것이지 위작을 만든 게 아니라고 피력했다. 작품의 특징과 속성뿐 아니라 원 작가의 서명까지 그대로 복사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위조의 증거였건만, 그는 위조를 극구 부인했다. 

그의 작품이 실제로 위작으로 거래되었다는 증거가 차고 넘쳤건만, 그는 자신에게 범죄동기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더 조사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중국이 자국민을 미국에 인도할 리 만무한 상황에서 첸이 미국에서 조사받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마지막 용의자로서 가장 강력한 의심을 받았던 사람은 앤 프리드먼이다.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165년 전통을 지닌 노들러(Knoedler) 갤러리의 관장이었던 앤은 미술전문가 그룹에 속해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며,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적극 밝힌다. '위작인 줄 알고 전시한 미술품, 판매한 미술품은 한 점도 없었다'는 게 앤의 핵심적 주장이다. 그녀는 자신 또한 사기사건의 피해자라며 호소했다. 그녀의 변호사도 인터뷰에 응하여, 시종일관 앤을 합리적으로 변호했다. 
 
앤 프리드먼 노들러 갤러리 관장 (사기사건 용의자)

▲ 앤 프리드먼 노들러 갤러리 관장 (사기사건 용의자) ⓒ 넷플릭스

 
그런데, 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옹호하는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기는 하다. 그중 한 사람은 단언한다. "만일 앤이 (위조집단에) 공모하지 않았다면 미술 갤러리에서 일한 가장 멍청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라고. 
 
사실 피해자를 자처하는 앤의 자기주장엔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다. 위작 거래기간 동안 갤러리 관장으로서 앤의 연봉이 매우 높았으며,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위작들이 발각되기 전까지는, 해당 미술품(위작) 거래로 인한 반사이익을 넉넉히 보고 있었다고 보는 게 적합할 것 같다.
 
사건이 발발하고 수사가 시작되자, 갤러리 관장이 어쩌자고 미술품의 진위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는가, 왜 허술하게 일했는가, 너도나도 추궁하고 나섰다. 모름지기 갤러리 관장이라면 미술품 전시 및 거래 전문가로서 섬세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허술함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갤러리 관장 앤은 글라피라가 가져오는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그 작품을 둘러싼 독특한 사연을 들으며, 작품이 진품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해당 작품 소유자(Mr. X)가 자신을 공개하지 못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니 양해해주십사는 글라피라의 말에, 앤은 기꺼이 설득되었다. 글라피라는 그런 앤에게 Mr. X가 앤의 일처리 방식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주며 격려했다. 앤은 기분좋게 글라피라와 거래를 지속했다. 
 
또, 유명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같은 대가들의 위작들을 거래하면서 앤이 의심을 품지 않았던 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미술계의 공인된 전문가들, 개별화가를 연구한 학자들, 미술계 공인기관들이 위작들을 의심할 바 없는 '진품'으로 확증해주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의뢰했을 때 공인기관이 보내준 진품확정 공문편지들을 앤은 잘 보관하고 있었다. 둘째, 심지어 로스코의 아들조차 갤러리에 걸려있는 위작을 보고 "아름답다"고 탄성을 내질렀으므로 그걸 진품이 아니라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고 앤은 회상했다. 즉, 작품 자체가 몹시 아름다웠기에 그 작품의 진위여부를 결코 의심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다큐멘터리 말미에 이르면, 앤의 변호를 맡았던 루크 니카스(Luke Nikas) 변호사가 미술품 애호가들뿐 아니라 미술품 감상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살짝 비틀어 재치있게 표현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위작이었을 때 500만 달러(한화 55억 원 이상)를 호가하던, 지극히 아름다웠던 한 미술품이 그 아름다운 자태 그대로 지금 자기 사무실에 걸려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그걸 매우 하찮게 대한다고! 

이쯤 해서, 시험삼아 아래 두 작품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한쪽은 잭슨 폴록이 직접 그린 진품이고, 한쪽은 위작이다. 일반인들은 (아무리 미술에 조예가 깊다 해도) 위작을 골라낼 수 없다. 그러면 전문가들은? 막상 그들도 위작을 골라내지 못했다. 돌아가신 폴록이 되살아와서 구별해주기 전엔, 아무도 그의 진품과 위작을 자신있게 구별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잭슨 폴록의 작품 둘 중 하나는 위작이다. 어느 쪽이 위작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위작: 왼쪽 것)

▲ 잭슨 폴록의 작품 둘 중 하나는 위작이다. 어느 쪽이 위작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위작: 왼쪽 것) ⓒ 넷플릭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다큐멘터리에는 부유한 자산가들, 예술계 전문가들, 예술계 취재기자들이 잔뜩 출연해서 '고상한 체하는' 언행과 표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겠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MADE YOU 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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