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불신 증후군(Memory Distrust Syndrome)이라는 심리적 현상이 있다. '내가 비록 기억은 못하지만 실제로 어떤 사건이 확실히 일어났었다고 믿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 이불에 오줌을 싼 기억이 내게 전혀 없지만, 가족과 친지들이 이구동성으로 "너, 이불에 자주 오줌 쌌어"라고 확고하게 말해준다면 오줌싸개였던 과거를 부정하기가 어렵다. 나중엔 스스로 "난 오줌싸개였어"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의식에서든 무의식에서든 거짓말을 구사할 의도가 없으며, 그 거짓말을 통해 자신이 얻을 것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벼운 수준에서 기억불신 신드롬을 겪곤 한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기억을 부분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건망증, 기억상실 같은 용어를 심각하게 거론하지 않고 대체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개인 수준에서는, 과학수사하듯 과거 기억의 오류 및 진실과 허위를 치밀하게 조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이 기억불신 증후군이 살인사건 신문과정에서 나타난다면 치명적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침묵의 크레바스>는 이 문제를 직접 다룬다. 러닝타임은 84분.
 
 <침묵의 크레바스> 포스터

<침묵의 크레바스> 포스터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침묵의 크레바스>는 1974년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났던 두 건의 실종 및 살인사건에서 시작된다. 그해 약 10개월의 시차를 두고 두 명의 남성이 실종됐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살해된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은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는데 4명은 혐의없음으로 풀려났고, 나머지 6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6명 중 1명(구디온)을 제외한 5명은 하나같이 학력이 낮고 제대로 된 직업도 없는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이었으며, 진짜 살인범이 아니었음에도 살인행위를 자백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나머지 한 명 구디온 역시 하지도 않은 살인을 자백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떡하다가 그 청년들은 자기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한 것일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 가능성의 첫 번째 '약한 고리'는 에를라였다. 1974년 고등학생이었던 에를라는 마약과 대마초가 난무하던 한 파티에서 사이바르라는 남자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사이바르는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열아홉 청년이었다. 부모님이 그들의 연애를 반대했더니, 에를라는 가출해 사이바르와 함께 살았다. 그들은 공금을 횡령하는 등 자잘한 불법행위를 통해 생활을 유지했다. 그들 나름으로 완전범죄(?)를 노렸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둘은 체포되었다. 그녀가 막 딸을 낳은 직후였다(1975년).
 
 다큐멘터리 <침묵의 크레바스> 스틸 컷

다큐멘터리 <침묵의 크레바스> 스틸 컷 ⓒ 넷플릭스

 
에를라는 자신들의 공금횡령 행각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그 결과 그녀는 30일간 구금되었다. 구금기간을 마치고 풀려나는 날, 한 형사가 그녀에게 갑자기 작년에 실종된 첫 번째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에를라는 대수롭지 않게 몇 년 전 그를 파티에서 본 적 있다고 대꾸했다. 당시 총인구 22만의 아이슬란드에서 젊은이들끼리 파티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는 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부터 그것은 대단한 단서가 되어버린다.
 
에를라는 대번에 실종(살인)수사 관련자, 나아가 용의자로 지목받는다. 사건수사팀은 에를라의 동거남 사이바르를, 구제불능인 데다 '뼛속까지 썩은 인간'으로 묘사하며 에를라를 불안하게 한다. 이윽고 사이바르의 친구 세 명이 추가로 불려온다. 곧이어 그들 다섯 명은 두 번째 실종사건에도 용의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두 번째 실종자와 친분이 있던 구디온이 최종적으로 용의선상에 합류(?)하면서 두 사건은 하나로 합쳐지고 주요 용의자 숫자는 도합 6명으로 정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를라, 사이바르, 크리스티안, 알베르트, 트리그비, 구디온은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 다큐멘터리는 녹음된 그들의 육성 자백을 차례차례 들려준다. 당시엔 앞뒤가 안 맞기도 하고, 수시로 말이 바뀌기도 하며, 공범이면서도 진술내용이 서로 달라 수사팀이 곤혹스러웠다곤 하나, 자백하는 그들의 음성과 어조는 진짜로 있었던 일을 태연히 진술하는 듯 들린다.
 
그러나 반전! 그 자백은 거짓이었다. 이 거짓 자백은 그들이 자기들의 실제 기억을 불신하는 증상의 여파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무지막지하게 고통스러운 조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유발된 증상이었다. 조사공간에서 무죄추정원칙은 일체 무시됐다. 스무 살 안팎의 어린 청년들은 이미 범죄자로 취급됐다. 그들은 독방에 각각 오래도록 감금됐고, 날마다 공포 가운데 방치됐다. 매일밤 잠을 잘 수 없도록 방해받았으며, 강압적인 유도신문에 시달려야 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이바르는 물고문을 당하기까지 했다. 가장 최악은, 그 같은 잔혹한 상황에서 나온 그들의 육성 자백이 곧 그들의 범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입증하는 유일무이한 증거로 쓰였다는 점이다. 단서, 물증, 증인도 없이, 그리고 무려 시신도 없이.
 
여기까지만 보면, 사건을 수사한 형사들이 무능하거나 사악한 사람들 같아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의 핵심엔 '여론'이 있었다. 여론은 사건수사팀을 강하게 압박했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도 덩달아 압력을 가했다. 결국 여론과 정치권력은 이웃나라 서독 보안대의 수장(칼 슈츠)을 모셔와 7인의 전담수사반을 꾸리도록 이끌었다. 여론의 지배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서 속히 결과물을 내놓으라, 재촉했다. 이제 전담수사반은 청년 용의자들에게 주목했다. 방탕하고 헐렁해 보이는 스무 살 안팎의 히피 청년들은 대충만 훑어보아도 범죄자스러웠다.
 
 다큐멘터리 <침묵의 크레바스> 스틸 컷

다큐멘터리 <침묵의 크레바스> 스틸 컷 ⓒ 넷플릭스

 
전담수사반은 용의자들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업무에 집중하게 되었고, 급기야 성공을 거둔다. 청년들이 정식으로 기소되자 여론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청년들의 품성은 일제히 저평가되며 비난까지 받는다. 주모자 격으로 알려진 사이바르는 거의 '악마의 화신' 급으로 인식되었다. 청년들이 법정에서 유도신문, 강압수사, 고문수사를 항변하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정과 여론은 귀를 닫는다. 물론 여론재판이 청년들을 정죄한 건 아니었다. 청년들은 공식의 절차를 따라 열린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년들 중 가장 긴 형벌(18년형)을 받은 사이바르는 만기출소 후, 큰맘먹고 1997년에 항소를 단행한다. 그런데 웬걸, 흥미롭게도 여론은 과거와 사뭇 달라져있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원천적 의혹, 재조사의 필요성이란 여론이 스멀스멀 피어난 것이다. 이 우호적 여론을 타고 젊은 기자가 뛰어들어 사건 및 수사절차를 다시 파헤치고, 영국에서 활동중인 아이슬란드 출신 허위자백전문가도 참여해 청년들의 자백내용에 의혹을 표한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자는 여론이 점증한다.
 
이렇게 여론의 향배가 사이바르와 친구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이바르는 항소에 실패했고, 결국 실망을 가득 안은 채 사망한다(2011년). 이제 여론은 불현듯 사이바르를 극진히 애도한다. 사이바르의 장례식엔 그와 일면식 없는 이들까지 한가득 참여할 정도였다. 과거 진실과 정의보다는 가짜 기억(살인)을 진술하도록 전담수사반을 초강력 압박했던 유력 공신이 바로 여론이었건만, 이제는 거꾸로 뒤집혀 여론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이 같은 여론의 갈짓자(之) 행보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변덕'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부족하다. 어느 누가 이 여론의 방향전환을 대표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래도, 아무리 조사과정이 고통스러웠다 하더라도, 잔인한 고문이 있었다 할지라도 '안한 일을 했다고 말한 건 문제 아닌가?' 질문할 수 있겠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목숨걸고 꿋꿋이 진실과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던 '기억불신 증후군'을 떠올려보자. 오줌싸개에 관한 이야기를 되살려보자. "그들은 어리석다. 나라면 내가 살인범이라는 허위자백 따위는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을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최소한 그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으리라.

그 청년들이 딱히 못나서 허위자백을 했던 게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해석'인 탓에(향후 '기억'과 '꿈' 등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리뷰할 계획임), 가혹한 수사과정에서 그 인식과 해석이 극단적으로 변경됐다고 보는 편이 적합하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변경해서라도 극심한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던 거다. 그들은 막강한 고통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않았으며, 다만 평범하고 취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아울러 사건 수사를 맡았던 형사들도 여론의 압력을 견뎌내느라 고통을 받았던, 또다른 의미의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들이었다는 사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끝으로 <침묵의 크레바스>는, 우리가 때때로 기억불신 증후군에 휘감기고, 종종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는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없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진실과 정의는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갔을지라도 마침내 드러나게 되며,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자아내는 희망 말이다. 흡사 실낱같이 가느다랄지라도 절대 끊어지지 않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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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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