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공감- 찾지 못 한 이름들

다큐 공감- 찾지 못 한 이름들 ⓒ EBS


새 정부 들어서 첫 번째로 치른 3.1절 기념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에 서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면서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고 강하게 말하며 당시를 재연한 태극기 행렬 앞에 섰다. 이 발언에 국민들은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날 부산 일신 여학교, 충북 옥천, 종로 보신각 등에선 3.1 운동 99주년을 맞아 당시를 재연하는 각종 행사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올해 3.1절은 대통령이 선언한 바 있는 '2019년 건국 100년'을 향해 가는 카운트다운 시작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그저 100년이 아니다. '임시 정부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이라는 정통성 있는 역사는 지난 정권들에 의해 짓밟힐 뻔했다. 그렇기에 3.1운동 99주년은 더 특별히 기념해야 한다.

그런데 브라운관으로 눈을 돌리니, 과연 3.1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관련 프로그램이 적었다. KBS 1TV를 제외하고는 상황이 거의 비슷했다. 물론 MBC의 경우 3.1절 특집극 <절정>을 방영했지만, 해당 단막극은 2011년 8.15 특집 때 처음 방영된 것이라 '재방송'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3.1운동 확산시킨 순국선열들의 역사 복기

밤 - 송몽규
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 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홀로 밤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머-ㄹ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99주년 3.1절을 맞아 EBS를 필두로 YTN과 KTV 등이 고군분투했다. 그 중 YTN이 기획한 <열도의 독립 운동가들>은 영화 <동주>를 통해 다시 기억된 윤동주, 송몽규, 그리고 이봉창 열사 등 일본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특히 다큐 취재 과정에서 송몽규 선생이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사실은 '독립 운동'으로 인해 퇴학당한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KTV는 전국적인 독립 운동으로서의 3.1 운동을 재조명했다.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선언문을 지켜 그걸 전국으로 퍼뜨림으로써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로까지 3.1운동의 열기를 확산시킨 순국선열들의 역사를 복기했다.

 열도의 독립운동가들

열도의 독립운동가들 ⓒ YTN


매년 3.1절과 광복절에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 나갔던 EBS는 이번에도 아직 독립유공자로 등재되지 못한 이들이나, 유해 발굴조차 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후손들의 절박한 심정을 <다큐 시선-찾지 못한 이름들>에 담았다.

김철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윤봉길, 이봉창 열사의 거사 배후로 추정되는 김철 선생은 오직 조국을 독립시켜야 하겠다는 열망으로 임시정부가 위기에 빠져있던 시절 주요 문서를 지키기 위해 도피 생활을 했다. 결국 김철 선생은 그 과정에서 병사를 하고 항저우에 묻힌 채 독립 운동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그가 묻힌 곳이 주택단지로 개발돼 시신을 되찾는 길도 쉽지 않다. 이와 같은 경우에 처한 건 김철 선생만이 아니다. 백농 이규형 선생의 후손들은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오랫동안 자료를 모아 보훈처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답은 냉랭하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기꺼이 가족과의 이별을 선택하고 타향을 전전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던 선열들. 하지만 독립 운동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고 사라저가고 있다는 사실에 다큐는 안타까워한다. 당시 임시정부는 열악한 상황으로 중국 곳곳을 전전했고, 결국 그들이 머물던 역사적인 자리는 방치되고 훼손되는 처지에 놓였다. 다큐는 국외 문화재의 열악한 현실을 동시에 고발한다.

3.1절을 풍성하게 보낸 건... KBS 1TV

 어느 가문의 선택

어느 가문의 선택 ⓒ KBS1


3.1절 하루를 가장 풍성하게 보낸 건 그래도 역시 KBS 1TV였다. 그 시작을 연 건 3.1절 특집 <다큐 공감- 태극기의 섬 소안도의 노래>이다(물론 새벽 2시였지만). 다큐는 3.1운동의 3대 성지인 남쪽 섬 소안도를 조명한다.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곳이지만, 이곳은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3.1운동 3대 성지이다. 이곳에는 1년 365일 태극기가 걸려있는데, 주민들은 설날이 되면 함께 모여 마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상을 차린다.

그 뒤를 이은 건 오전 11시부터 2부작으로 방영된 <이방인의 3.1운동>이다. 다큐는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 캐나다 선교 재단이 발굴한 3.1운동 자료, 일기, 서신 등의 미공개 희귀 자료 등을 총망라하여 3.1운동에 동참했던 이방인의 행적을 쫓는다. 19세기 말 문호 개방과 함께 조선을 찾은 이방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는 한편, 신문물과 지식을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다큐는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주목한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던 이방인들의 처지로 인해 오랜 시간 수면 아래 잠자고 있었던 역사 속 사실에 주목한다. 다큐는 전국 각지에서 이방인들이 세운 학교가 3.1운동 확산의 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또 해외 각지에서 조선 독립의 정당함과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다른 피부의 '동지'들의 이야기를 더한다.

3.1절의 대미를 장식한 건 <특선 다큐-어느 가문의 선택>이다. 흔히들 쉽게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지만 그 문구에 숨겨진 핏빛 역사처럼, 자신을 던져 대의를 실현하는 길은 쉽지 않다. '조국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조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했던 김마리아 선생은 두 번의 투옥 끝에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임시정부의 거름이 된 김마리아 선생 가문의 이야기를 특선 다큐는 진지하고 자세하게 다뤘다. 

가문의 일원이 6명이 모두 '건국 훈장'을 받은 '김순애 가문' 또한 특선 다큐의 조명 대상이다. 1차 대전이 끝나고 그 후속 조치를 위해 열린 '파리 강화 회의'에는 김규식과 그의 아내 김순애가 있었다. 중국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두 사람은 당시 결혼한 지 불과 2주일 된 신혼부부였다. 남자와 여자이기보다는 '동지'였던 두 사람.

남편 김규식은 파리 강화 회의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유럽 등에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렇게 김규식의 활약이 전해지며 일본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이 준비되고 김순애의 조카인 김마리아는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 회장'으로 이에 깊이 관여한다. 남편 김규식을 해외로 보낸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국내로 들어와 대구에서 김마리아, 광주에서 동생 김필례 부부를 만나 만세 운동 확산에 힘썼다.

김순애의 오빠는 세브란스를 1회 졸업한 우리나라 최초 서양의

 어느 가문의 선택

어느 가문의 선택 ⓒ KBS1


이후 김순애는 다시 상해로 탈출하여 '대한 애국 부인회'를 결성, 독립 자금 모금 및 독립 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돌보며 한국 지도와 태극기를 해외에 보내는 운동을 한다. 김순애의 상해 '대한 애국 부인회'는 서울에서 김마리아에 의해 조직된 '대한 애국 부인회'와 연계돼 여성 독립 운동에 앞장선다. 한편 남편 김규식은 미국에서도 구미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이후 독립 전쟁을 준비하며 '대한 적십자회'를 조직하였다. 또 아내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적십자회 활동의 일환으로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였다.

또한 김순애의 오빠는 세브란스를 1회 졸업한 우리나라 최초 서양의 중 한 명이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촉망받던 그는 조국에서 의사로 성공할 수 있는 삶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에서 북제 진료소를 연다. 이후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상촌 건설 등 독립 운동에 헌신하던 중 독살당하고 만다.

하지만 김필순가의 독립 정신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진다. 그의 아들 김염은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항일 영화의 주역으로 활동한다. 가장 잘생기고 인기 있는 배우지만, 독립 운동 가문의 후손으로서 상업 영화 출연을 거부하고 일본 제국주의 투쟁에도 힘을 보탠다. 그런가 하면 광주에 남았던 김순애의 동생 김필례는 애국 계몽 운동과 여성 운동에 앞장서 한국 YWCA창립을 주도했고 광주 수피아 학교와 정신 여학교를 복교하는 등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에 앞장섰다.

비록 시청률에 담보되는 공중파의 대부분은 면피를 하거나, 3.1절을 그저 또 하나의 휴일로 때웠다. 하지만 KBS1을 비롯하여 EBS, YTN, KTV 등에서 방송한 다큐는 여전히 우리의 3.1절이 마무리 되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방송이라면, 여전히 채 다 쓰지 못한 독립 운동사를 조명하는 것이나 건국 100년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그 역사적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그리고 대중적 인식의 확산을 위해 방송이, 문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이 필요하다. 2018년의 3.1절은 모든 방송사들에게 숙제를 던져준 날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KBS1<태극기의 섬 소안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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