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일본 후쿠이현 시카이시 도진보 절벽. 하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두 가지로 갈린다. 이 아름다운 명소를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로 택한 사람들, 도진보 절벽은 '자살 절벽'으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이 자살 절벽 주변에서 부지런히 순찰을 도는 사람들이 있다. 13년 째 이곳을 순찰하는 시게 유키오씨 등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구한다.

도진보 절벽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방송을 탄 바 있다. 2013년 9월 < EBS 다큐 프라임-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은 2013년 기준으로 8년째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다루며 도진보 절벽을 소개했다. 

 mbc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감정중독

mbc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감정중독 ⓒ MBC


가짜 감정

2017년 8월 < MBC 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 감정 중독(이하 가짜 감정 중독)>은 이 절벽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살의 대표적 예로 등장했던 도진보, 하지만 <가짜 감정 중독>은 자살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일본인들은 자살을 선택하나? 서양과 달리, 불교와 유교 문화권의 동양에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기 보다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각인되었다. 특히 일본의 '가망(がまん) 문화는 일본인들에게 참으라고 강요한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을 숨기다 못한 일본인들은 도진보를 찾는다.

일본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감정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5년차 정신과 의사 임재영씨가 거리로 나섰다. 병원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이미 상담만으론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음을 절감하게 된 그는 약물을 쓰기 이전의 상태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거리 상담을 자처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자는 평생 3번 울어야 한다'라던가,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넣어선 안 된다'는 전통적 감정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쉬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된 감정의 '쿨함' 역시 또 다른 감정의 통제 기제가 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하는 문화, 그로 인한 극단적 선택의 문제는 이미 새로운 문제 제기가 아니다. 8월 3일 다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짜 감정 중독'을 주목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제된 사람들은 그 자기 강제된 감정이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슬픔을 화로 표현하는 사람, 화를 내야 하는데 우는 사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 자체에 무감각해져 버린 사람.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가짜 감정에 중독된 상태'라고 다큐는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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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감정중독 ⓒ MBC


놀라운 변화

그리고 그 진단의 증명을 위해 두 사례자가 등장한다.

4살과 6살을 자녀를 둔 엄마 정인수씨(34), 그녀의 가정은 조용할 날이 없다. 엄마는 울컥울컥 화를 내고, 그 화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쏟아진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정신을 차린 엄마는 후회하지만, 결국 쳇바퀴 돌듯 그 '화풀이'를 되풀이한다.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공감할 이 장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그나마 정인수씨는 화라도 내지만 오현정씨(28)에게로 가면 더 심각하다. <비밀의 숲> 황시목처럼 외과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감정이 없다. 매사에 무표정하다.

정인수씨는 상담을 시작하자마다 자책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적어본 감정 노트를 채운 단어는 지친다. 외롭다. 힘들다이다. 이른바 '독박 육아' 속에서 그녀는 마모되어 가고, 그 마모된 자아는 '화'라는 가짜 감정을 통해서 폭발해 왔다. 기꺼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남들에게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 말,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했다. 그 저변엔 엄마 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의 상실감으로까지 뿌리가 드리워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던 오현정씨. 주변으로 부터의 상흔의 결과다. 그래서 늘 관계에 두려움을 가지고 주춤거리던 그녀는 어느 새 마음을 닫았다. 그 부작용은 몸으로 왔다. 울컥하지만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던 그녀가 병을 가득 채운 자신의 마음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화'라는 감정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현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 외롭고 슬펐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닫아걸었지만 사실은 그 누군가의 관심이 그리운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한 사람들, 놀랍게도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 사례자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상담을 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읽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90일간의 중독 치유 프로젝트, 놀랍게도 사례자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똑같은 사람인데, 화가 잔뜩 나있던 얼굴이 밝아졌고, 무표정했던 얼굴에 생기가 돈다. 화장법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른바 '관상'이 변한다.

ⓒ MBC


아이와 함께 친구 집에 놀러간 정인수씨, 아이는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잔뜩 화가 났다. 아이와 함께 조용한 곳을 찾은 엄마, 아이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엄마를 때리며 투정을 부린다. 그때 엄마 정인수씨가 말한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을 테니 말해봐 라고. 그런데 그 엄마의 말이 마법처럼 울며 떼쓰던 아이의 울음을 잦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아이, 결국 엄마의 품에서 감정을 토해내며 풀어진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더 놀라운 건 매사에 화를 내던 정인수씨다. 그저 화를 참았는가 싶던 정인수씨가 아이의 서러움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준다. 이게 정인수씨가 찾은 진짜 감정이다.

오현정씨도 마찬가지다. 늘 상처받을까 무표정에 자신을 숨겼던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흔히 '화'를 잘 내는, 혹은 항상 화가 나있다는 오늘날 한국 사회, 어쩌면 한국 사회의 '화' 역시 삶의 고난과 고통을 방어하는 가짜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MBC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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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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