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대표팀 이광종호가 '한일전'마저 넘고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정상을 노리는 한국은 28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8강전에서 후반 42분, 주장 장현수(광저우 부리)의 페널티킥(PK) 결승골에 힘입어 숙적 일본을 1-0으로 물리쳤다.

이로써 한국은 23세 이하 대표팀간 대결에서 6승 5무 4패의 우위를 이어갔고, 아시안게임 상대 전적에서도 6승 1패로 일본에 한 수 위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준결승에 오른 한국은 태국과 오는 30일 오후 8시 같은 장소에서 결승 진출을 다툰다. 이 경기의 승자는 북한-이라크전 승자와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일본은 아시안게임 참가제한 연령보다도 더 낮은 21세 이하 국내파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팀이었다. 일본 축구 내에서 주목받을 만한 스타도 없고, 와일드카드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동생뻘' 일본 선수들의 거센 저항에 예상보다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경기 주도권은 내내 한국이 움켜쥐고 있었지만 골문을 효율적으로 공략하는 데는 실패했다.

전력 차를 의식한 일본은 특유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는 패싱게임을 버리고, 한국을 상대했던 다른 팀들처럼 수비라인을 깊숙이 내리는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선택했다. 후반 중반까지는 한국의 이전 경기들과 비슷한 양상이 반복됐다. 그러다 후반 31분 한국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팀을 타 일본의 역습 상황에서 아찔한 실점 위기를 맞기도 했다. 측면에서 넘어온 공을 일본의 야지마가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했지만 김승규의 선방에 막혔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이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승부가 연장으로 향할 듯한 분위기가 짙게 깔리던 후반 42분, 한국의 저력이 빛을 발했다. 이종호가 페널티박스에서 볼을 경합하는 도중, 뒤에서 점프했던 일본 오시마가 등으로 착지하며 밑에 있던 이종호가 깔리는 상황이 됐다. 오시마의 체중에 눌려 얼굴을 강하게 땅에 부딪힌 이종호는 코피를 흘렸다. 부상까지 당하며 얻어낸 귀중한 페널티킥에서 주장 장현수가 키커로 나서 골키퍼를 완벽히 속이며 오른쪽 모서리로 공을 찔러 넣었다.

20년 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당시에도 한국은 2-2로 팽팽하게 맞서던 종료 직전, 황선홍이 상대 문전에서 얻어낸 페널티킥을 키커로 직접 나서 성공시키며 귀중한 승리를 챙긴 바 있다. 준결승까지 하루의 휴식 기간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일 연장전까지 치렀다면 한국은 설사 이겼더라도 엄청난 체력 부담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수들이 끝까지 승부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승리였다.

공격력 아쉽지만 뒷심은 '역대 최고'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5경기 연속 무실점의 철벽 수비를 이어가고 있다. 공격력이 전반적으로 답답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이광종호가 준결승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단기전, 그것도 어린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연령대별 대회에서 선제골을 내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력상 약체팀들을 주로 상대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변수가 많은 축구의 특성상 역습이나 세트피스 상황, 심지어 실수로라도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대목이다. 수비라인의 모든 선수가 잘해주고 있지만 특히 골키퍼 김승규와 수비형 미드필더 박주호의 와일드카드 발탁은 '신의 한 수'가 되어가고 있다.

반면 공격은 이번 대회 내내 한국은 상대의 밀집수비에 고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점유율은 높게 가져가고 있지만 공격루트가 단조롭고 유효슈팅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일본전에서도 계속된 문제다. 아직도 완전한 공략법을 찾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숙제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는 있다.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였던 사우디전에서 김신욱과 윤일록이 한꺼번에 부상을 당하면서 한국은 사실상 공격진의 1,2 옵션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대회를 치르고 있다. 이들이 모두 빠지면서 토너먼트 들어 주포 김승대의 위력도 반감됐다. 이광종 감독의 공격 전술이 지나치게 단조롭다는 평가도 있지만, 남은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돋보이는 것은 강한 뒷심이다. 전력상으로 보면 역대 AG 최약체라는 평가까지 듣는 이광종호지만 뒷심은 오히려 역대 최고라고 할 만하다. 5경기에서 10골을 뽑아내는 동안 무려 7골이 경기 종반인 후반 30분 이후에 터진 골이다.

세트피스, 중거리슛, PK 등 득점루트도 다양하고 여러 명의 선수가 돌아가면서 해결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내용에 대한 평가가 어찌됐든 고비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집중력은 누가 가르쳐줄 수도, 억지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것이다. 선수들이 그만큼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위기 관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증거다.

아시안게임은 어차피 내용보다 결과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28년 동안 언제나 우승 후보로 꼽히면서도 늘 좌절했던 것은, 아무리 화려한 전력이라고 해도 실속 없이 헛심만 쓴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챔피언 프랑스. 프랑스는 우승 직전까지 에메 자케 감독의 선수기용과 전술이 프랑스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2002 한일월드컵 우승팀 브라질은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등을 앞세운 막강한 공격력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대회 중반까지는 자국 해설자로부터 "수비력이 쓰레기 같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물론 우승이 확정되고 난 후 모든 비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승 전까지는 그 어느 팀도 완벽할 수 없는 법이다. 이광종호를 둘러싼 비판과 우려도 그만큼 우승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광종호가 이대로 28년 만의 AG 정상을 이뤄낼 수 있다면 훗날 팬들은 이광종호를 지루한 공격력보다는 역대 최고의 실리 축구로 더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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