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능계는 <무한도전> 이전과 <무한도전> 이후로 나뉜다."

<무한도전>의 가치는 이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하다. <무한도전>이 한국 예능계에 등장한지 어언 7년이다. 이 7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한국 예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평균 이하 여섯남자들'의 기막힌 코미디 쇼로 시작해 '대한민국 대표 예능'으로 우뚝 서기까지, 지금껏 그들이 걸어 온 역사는 어떠했는가. 과연 그들의 도전은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 것인가.

 <무한도전>의 전신 격인 MBC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의 전신 격인 MBC <무모한 도전> ⓒ MBC


2005년 4월 : <무모한 도전>과 유재석의 '자아실현'

<무한도전>은 전신격인 <무모한 도전>은 2005년 <토요일>의 한 코너로 TV 브라운관에 첫 등장했다. '쌀집아저씨' 김영희 PD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토요일>은 유재석 뿐 아니라 김제동, 남희석, 김용만, 박경림 등 당대의 명 MC들이 총 출동한 메머드급 프로그램이었다. 이 속에서 <무모한 도전>은 마니아 층을 결집하며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안팎의 기대와 달리 시청률은 그리 좋지 않았고 결국 MBC는 <토요일> 출범 6개월만에 <강력추천 토요일>로의 개편을 시도한다. 이 시기 <무모한 도전>은 <강력추천 토요일>의 메인 코너로 급부상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단연 유재석이 있었다. 당시에도 그는 <놀러와><해피투게더><진실게임><일요일이 좋다> 등 다수의 히트작을 보유한 인기 MC였다.

이미 <외인구단><감개무량>을 통해 비슷한 포맷을 시도한 바 있는 유재석은 <무모한 도전>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견인했다. 이 때문에 "실패한 아이템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이런 컨셉트를 하는 이유는 자아실현을 위해서다. 자라오면서 받았던 콤플렉스들, 설움들을 모아서 표출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때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MBC 예능국에서 폐지설이 흘러나왔을 때도 유재석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멤버들을 다독거리고 분위기를 수습하며 프로그램의 전열을 가다듬는데 주력했다. 이처럼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을 시작으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변함없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데에는 국민 MC 유재석의 은근과 끈기에 큰 부분을 빚지고 있다.

2005년 10월 : <무한도전>, 김태호 PD를 만나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MBC 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MBC 방송대학'에서 자신의 입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 이미나


명실상부 토요일 저녁 6시 황금시간대를 책임지게 된 <무모한 도전>은 2005년 9월 <무리한 도전>으로 코너명을 바꾸고 체제를 재정비한다. 이 때 새로운 메인 PD로 등장한 이가 바로 김태호 PD다. <일밤>의 '대단한 도전''상상원정대'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가 비로소 PD 인생의 새 장을 <무한도전>과 함께 열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한 도전>을 연출하면서 김태호 PD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역시 시청률이었다. 그는 현장보다 방송이 재미없는 이유를 '캐릭터의 부재' 때문이라고 봤다. 목적 없이 도전만 할 것이 아니라 멤버 개개인의 성격을 확실히 부각시켜 코미디를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멤버들을 실외에서 실내 스튜디오로 끌어 들이며 본격적인 캐릭터 구축 작업에 나서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이다.

'아하 게임'으로 대표되는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은 캐릭터 간의 모난 대립을 통해 관계를 설정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전형적인 캐릭터 쇼였다. <무모한 도전><무리한 도전>이 도전 그 자체에 의미가 뒀다면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은 게임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멤버들의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공포의 쿵쿵따><X맨>을 통해 이런 종류의 캐릭터 쇼를 성공시킨 바 있는 유재석은 놓치기 쉬운 상황과 멘트를 적재적소에 잡아내며 김태호 PD를 전폭 지원했다.

프로그램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멤버 교체도 전격 단행된다. 2005년 12월 하하가 합류했고, 이윤석이 하차하는 대신 2006년 4월 정준하가 들어오면서 '6인 체제'(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노홍철-하하)가 완성됐다. 이 6인 체제는 2009년 길이 합류하기 전까지 <무한도전>의 기본 구성으로 자리매김한다. <무한도전>을 상징하는 무도 로고도 이 때 처음 사용됐다.

 MBC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특집

MBC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특집 ⓒ MBC


2006년 5월 : 단독방송으로 독립, <무한도전>의 시작

2006년 5월 6일,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였던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이 단독방송으로 독립해 <무한도전>이란 이름으로 첫 방송을 시작한다. 이 시기 <무한도전>은 캐릭터 쇼로서 상당한 완성미를 갖추고 있었고, 마니아 층의 충성도도 대단했다. 특히 박명수는 이 시기에 트레이드 마크인 호통개그로 막무가내지만 결코 밉지 않은 '거성 캐릭터'로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한다.

유재석이 전체를 살피고 관리하는 입장이었다면 박명수는 그 속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무한도전>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그는 여러 멤버들과 다양한 관계를 설정하며 재미있는 상황극을 연출할 줄 알았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의외의 웃음을 뽑아내며 <무한도전>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다. 7년여의 긴 시간동안 박명수가 <무한도전>의 '2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박명수를 필두로 각 멤버들이 확고한 제 색깔을 찾아가면서 <무한도전>의 인기도 상승무드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월드컵 특집 3부>에 출연했던 김현철의 욕설 논란으로 <무한도전>은 한동안 곤욕을 치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은 '일찍 와주길 바래''신화 특집''납량 특집' 등 신선한 기획들을 잇달아 방송하며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작을 알린 아이스 원정대 특집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작을 알린 아이스 원정대 특집 ⓒ MBC


2006년 8월 : '아이스 원정대',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작

2006년 8월 19일 방송 된 '아이스 원정대'는 <무한도전> 방송 역사에 역사적인 한 획을 남긴 특집이다. 오랜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찍은 특집인 동시에 지금껏 <무한도전>이 표방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아이스 원정대' 특집의 특징은 총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멤버들의 실제 성격과 관계가 적나라하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 방송을 통해 시청자는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라는 것을, 정준하가 정많고 푸근하지만 편 가르기 좋아하는 소심한 형이란 것을, 멤버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권력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어느 정도 짜여진 구성이 있는 캐릭터 쇼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점을 보여준 것이다.

두 번째는 멤버들의 캐릭터가 전격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아이스 원정대' 특집 이전만 해도 정형돈은 건방진 뚱보였다. 하지만 '아이스 원정대' 특집을 거치면서 그는 못 웃기고 어색한, 웃기는 것 빼곤 모두 잘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예능인으로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캐릭터지만, 정형돈은 이 캐릭터를 장기간 유지하며 <무한도전>의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정준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뚱뚱보 컨셉트 이외에는 별다른 캐릭터가 없었던 그는 '아이스 원정대' 특집을 통해 잔정 많고 소심한 실제 성격을 캐릭터화 하며 <무한도전>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 인물로 성장한다. 후에 그는 박명수와 콤비를 이뤄 '하와 수'로 대표되는 상황극을 만들어 내는 등 놀라운 활약상을 보여줬다.

이렇듯 멤버들의 실제 모습을 까발리고, 캐릭터를 혁신적으로 바꾸면서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변모하게 된다.

 MBC <무한도전> '도전! 슈퍼모델' 특집

MBC <무한도전> '도전! 슈퍼모델' 특집 ⓒ MBC


2006년 11월 : '리얼'을 강화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아이스 원정대' 특집 이 후, <무한도전>은 리얼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하하와 정형돈이 주인공이었던 '빨리 친해지길 바래', 정형돈의 집에 불쑥 찾아갔던 '형돈아 놀자', 유재석과 나경은의 열애설을 폭로한 '무한뉴스-연애 후' 특집이 바로 그것이다. 일정한 틀 없이 매주 새로운 기획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동시에 극한의 리얼함을 강조하며 여타 예능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무한도전>은 '도전! 슈퍼모델' 특집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 하는 등 단순한 도전만 반복해 왔던 <무한도전>은 '도전! 슈퍼모델' 특집을 기점으로 도전의 과정과 멤버들의 성장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즉, 일회적 도전이 아니라 장기간 연습하고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도전에 방점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이 특집은 <무한도전> 최초의 장기 미션이기도 하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와 참신한 기획이 매주 등장하면서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단독방송 7개월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무한도전>은 2007년 1월 첫 주 방송에서 강력한 경쟁작인 KBS <스펀지>를 제치고 당당히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선다. 바로 <무한도전> 최고의 전성기인 07~08 시즌이 개막된 것이다.

 <무한도전>의 첫 번째 스포츠 특집 '셸 위 댄스'

<무한도전>의 첫 번째 스포츠 특집 '셸 위 댄스' ⓒ MBC


2007년 : <무한도전> 사상 최고의 전성기

2007년 중반부터 2008년 초반까지 <무한도전>은 유례없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예능의 입지를 다진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사주풀이' 특집에 대해 방통위가 "사주를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적 방법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다"며 주의 조치를 내렸을 뿐 아니라 야심차게 준비했던 두 번째 장기미션 '드라마 도전' 특집이 시큰둥한 반응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 4월 21일 '50회 특집'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영애, 최지우, 앙리 등 초특급 게스트들이 연이어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몸 개그의 진수를 보여준 '모내기' 특집과 리얼한 생존기를 그려낸 '무인도' 특집이 시청자들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변북로 가요제' 특집과 '하나마나 행사' 특집 등이 더해지면서 <무한도전>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결국 2007년 8월 '서울 구경' 특집으로 시청률 20%를 돌파한 <무한도전>은 '네 멋대로 해라' 특집, '김연아' 특집, '환장의 짝꿍' 특집 등 완성도 높은 에피소드를 방영하며 전국구 예능으로 발돋움한다. 바야흐로 진정한 <무한도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 바로 <무한도전> 레전드 특집 중 하나인 '셸 위 댄스' 특집이다. <무한도전>의 세 번째 장기미션이었던 '셸 위 댄스' 특집은 스포츠 댄스에 도전한 멤버들의 성장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화제성, 작품성 모두에서 흠 잡을 데 없는 구성을 보여준 이 특집을 시작으로 <무한도전>은 매년 새로운 스포츠 특집을 선보이게 된다.

이 외에도 12월 한 달간 '무한도전 달력' 특집이 최초로 기획되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고맙습니다 콘서트' 특집으로 멤버들이 직접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뜻 깊은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무한도전> 멤버들은 2007년 MBC 연예대상을 공동수상했다.

 MBC <무한도전> '인도' 특집

MBC <무한도전> '인도' 특집 ⓒ MBC


2008년 : <무한도전>,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다
 
2008년으로 접어들면서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끝없이 치솟아 오른다. 시청률 30%를 기록한 '이산 특집', 하하의 어머니가 등장해 화제를 모은 '융드옥정 떡국 특집'이 그 중심에 있다. 이 시기 <무한도전>은 반장선거를 통해 메인 MC를 박명수로 교체하면서 의외의 웃음을 선사했다. 부정선거(?) 논란이 있긴 했지만 놀랍게도 <박명수의 무한도전>으로 통칭되는 이 3주간은 <무한도전> 역사상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 <무한도전>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원년멤버 하하가 공익 근무를 이유로 일시 하차하면서 견고했던 프로그램의 구성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3주간 방송 된 '헬로, 인디아' 특집과 사막에서 고군분투했던 '식목일특사' 특집이 싸늘한 반응을 얻고 '100회 특집'에서 사용한 노래 '무한도전을 빛낸 100개의 장면들'이 저작권 시비에 시달리는 등 감당하기 힘든 내우외환이 계속됐다. <무한도전>으로선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 셈이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과도하게 높았던 시청률 역시 빠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시청률 조정기간을 거치게 된 것이다. '이산 특집'을 기점으로 최고조를 찍었던 시청률은 2008년 5월 중후반에 접어들며 적게는 10%, 많게는 15% 이상 떨어졌다. 언론이 본격적으로 '무한도전 위기론'을 주장한 것도 이 때부터다. 당시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무한도전이 만만찮은 도전 상황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위기론 초반에 "시청률 하락에 신경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실험성"이라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김태호 PD 역시 8월에 접어들면서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디시인사이드 무도 갤러리에 "솔직히 멤버들의 헝그리함은 이미 사라졌다. 너무 바쁜 스케줄에 일정 빼기도 힘들고"라며 속내를 드러낸 그는 "마음 같아서는 껍데기밖에 안남은 이 몸둥이 태워 정점 한번 찍고 '이제 저는 여기까지'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한도전> 위기론은 어디까지가 사실이었을까. 당시 <무한도전>의 평균 시청률은 15% 내외로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하하 하차 이후에 거품이 꺼진 것은 사실이지만 고정 시청층은 여전히 탄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론이 등장한 것은 2008년 초반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생각보다 너무 높았고, 그 때문에 덩달아 기대심리도 커졌기 때문이다. 시청률 문제만 놓고 봤을 때 <무한도전> 위기론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하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고, 5인 체제로 인한 멤버들의 캐릭터 조정이 불가피해 졌기 때문이다. 또한 우후죽순 생겨난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쇼와의 아이템 전쟁이 심화되면서 제작진의 피로도 역시 극심해졌다. 여기에 후발주자인 <1박 2일>과 자주 비교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 것도 상처라면 상처였다. 이렇듯 <무한도전> 안팎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니 언론이 주장한 '위기론'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MBC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

MBC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 ⓒ MBC


2008년 6월~12월 : 전진의 영입과 새로운 출발

위기는 기회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2008년 6월, <무한도전>은 새 멤버 전진을 영입하고 신선한 아이템을 시도하며 분위기를 쇄신한다. 이 때 방송된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은 <무한도전>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공표한 에피소드였다. <무한도전>은 멤버들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숨 막히는 두뇌대결을 긴박하게 엮어내며 예능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는 호평을 ㅂ다았다.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으로 위기론을 일축한 <무한도전>은 8월에 접어들면서 더욱 공격적인 기획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저주받은 특집으로 알려진 '좀비특집-28년 후'를 시작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즌을 맞아 '올림픽 특집'을 방송하며 화제몰이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스터 도전은 상당한 관심을 모았는데 실제 거들의 해설이 생방송으로 전파를 타 큰 이슈가 됐다.

이 후, '지못미' 특집, '네 멋대로 해라' 특집, '1일 매니저' 특집을 통해 안정기에 접어든 <무한도전>은 11월 장기미션인 '에어로빅 도전' 특집으로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낸다. '댄스 스포츠' 특집에 이은 두 번째 스포츠 특집이었던 에어로빅 도전기는 총 4부작으로 방송돼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달해 주었다. 이 특집으로 독특한 교육법의 에어로빅 강사 염정인 씨가 인기인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2008년은 <무한도전>에게 위기의 해인 동시에 기회의 해였다. 하하의 공백으로 휘청거렸던 팀워크를 전진의 영입으로 다잡는 한편, 다른 예능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다양한 특집들을 대거 기획하면서 스스로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였다. 멤버들 역시 발전을 거듭했다. '어색한 뚱보' 정형돈은 하하의 빈 자리를 훌륭히 채워내며 캐릭터의 변화를 시도했고, 노홍철은 사기꾼 캐릭터를 십분 활용해 추격전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예상치 못한 위기를 멤버와 제작진의 힘으로 훌륭히 돌파해 낸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도전' 특집

<무한도전> '레슬링 도전' 특집 ⓒ MBC


2009년~2010년 : <무한도전>에 다시 찾아온 황금기

2009년과 2010년은 <무한도전>이 양적, 질적으로 성숙미와 완숙미를 갖춘 시기였다. 전진이 개인사정으로 방송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준하가 예의 없는 방송태도로 구설에 올랐으며, 박명수가 간염에 걸려 쓰러지는 등 돌발 상황은 계속 터졌지만 그 때마다 <무한도전>은 더 단단한 결속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로써 <무한도전>은 한두 번 왔다 갔다 하는 시청률 표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09~10 시즌은 '봅슬레이 도전'과 '레슬링 도전' 특집으로 대표되는 스포츠 특집,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과 '의형제''꼬리잡기' 특집으로 대표되는 추격전, '육남매' 특집과 '죄와 길' 특집으로 대표되는 캐릭터 콩트 등 그간의 노하우가 축적된 양질의 특집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해이자 연말 행사로 진행되는 '달력 만들기' 특집과 2년마다 치러지는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 특집이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진행 된 해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유독 장기미션도 많이 진행됐다. 위에서 거론한 스포츠, 가요제, 달력 만들기 특집은 물론이거니와 '식객' 특집, '벼농사' 특집, '다이어트' 미션 등 상당한 시일이 특집들이 동시 진행 됐다. 이 때문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일주일 내내 무한도전 녹화"라며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무한도전> 제작진과 멤버들은 힘들었겠지만 덕분에 <무한도전>의 컨텐츠는 날이 갈수록 풍성해졌다.

2009년 중반부터는 멤버 구성과 캐릭터도 변화했다. 전진이 하차하는 대신 '길메오'로 활약했던 길이 합류했고 2010년에는 하하가 복귀하며 지금의 '7인 체제'가 완성됐다. 멤버 수가 늘어나며 캐릭터 운용도 훨씬 다양해졌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쩌리짱''미존개오'와 같은 히트 캐릭터다. 바야흐로 <무한도전>의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 MBC


2011년~현재 : 어깨에 힘을 빼고, 예능을 강화하다

장기 미션으로 힘들었던 09~10년을 지나 2011년 <무한도전>은 어깨에 힘을 빼고 '소소한 재미'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정총무가 쏜다' 특집, '미남이시네요' 특집, '무한상사 야유회' 특집, '명수는 12살' 특집, '짝꿍' 특집 등 쉽게 보고 즐기는 단발성 특집들이 바로 그것이다. 김태호 PD는 "거창한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예능적인 측면을 강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특집들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네 번째 스포츠 특집인 '조정 도전' 특집과 세 번째 가요제인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특집은 유례없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특히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특집에서 발표 된 곡들은 음원 차트 상위권을 싹쓸이하며 <무한도전>의 인기를 실감케 했는데, 이 특집을 통해 뮤지션 정재형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 하는 행운을 맛봤다.

2011년 9월에는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낸 '스피드' 특집이 방송됐다. 영화 <스피드>를 패러디 한 구성으로 스릴 넘치는 추격전을 담아낸 '스피드' 특집은 예능에서 보기 쉽지 않은 차량 폭파 장면을 처음으로 시도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장면에 대해 청소년들의 모방 범죄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무한도전>에 권고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무한도전>은 '나름 가수다' 특집과 '하하vs홍철' 특집을 연달아 방송하며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이 후, 6개월간의 MBC 노조 파업으로 방송 송출을 중단하였다가 2012년 7월 21일 방송을 재개한 <무한도전>은 2012년 10월 20일, 대망의 '300회'를 맞이하며 대한민국 대표 예능으로서 막강한 존재감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MBC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편

MBC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편 ⓒ MBC


<무한도전>, 도전은 계속된다

<무모한 도전><무리한 도전><무한도전>으로 그들이 걸어간 7년여의 역사는 한국 예능 생태계를 통째로 바꾸는 혁신과 변화의 길이었다. <무한도전>은 허구와 실제를 자유롭게 변주하고 그 속에 독특한 캐릭터를 결합하며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신기원을 마련했다. 이는 대한민국 예능계가 모두 함께 누려야 할 대단한 축복이다.

300회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무한도전>은 여태껏 그래왔듯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일 것이다. 부디 그들이 지치지 않기를, 그들의 도전이 언제나 계속 되기를 바란다. 정말 멋진 그대들, 고생했다!

========= <무한도전> 300회 특집 기사 =========

2. '무한도전 300회' 그들에게만 있었던 네 가지
3. 흥미 없었던 '무한도전'...그래도 이건 좋았다
4. [초식남의 음악육식] '무한도전' 이제 보지만 말고 듣자
5. '300회 무한도전', 모두에게 '쉼표'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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