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독립영화제 개막 이튿날인 지난 토요일, 동숭 아트센터를 찾았다. 평소 본인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관객과 만난다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장편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다. 2001년 9월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92년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기록해 놓은 엄청난 작품이었다.

▲ 전향무효선언 및 2차 송환을 위한 기자회견
ⓒ 박성호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옆에 앉은 아내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아내를 비롯한 주변 관객들은 간혹 우리 사회의 실정에 대해 통렬히 꼬집는 순간이 나오면 감탄사를 터뜨렸다.

상영이 끝난 후 객석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시작될 때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박수는 감독과의 대화시간까지 계속됐다.

평소에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이라 애정을 가지고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의 힘과 존재의 의의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사실 149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알고나서 인디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정관념때문인지 ‘지겹지 않을 수 없겠구나’라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어떤 드라마나 어떤 액션물보다도 149분 동안 관객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영화였다. 그 힘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이자 감독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의 힘이었다. 만약에 동일한 이야기가 극영화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런 감동과 힘을 느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종전 이후 한반도의 두 정권들이 일상적인 첩보활동을 계속해 왔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영화는 그 중에서 남쪽에 있는 장기수 즉 남파 공작원들이나 6·25 당시 북쪽의 전쟁포로나 빨치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치밀한 사전 기획에서 시작된 작업은 아니라고 한다. 김 감독은 "우연히 92년 출소한 두 장기수 조창손씨와 김석형씨를 알게 되고 그 중에서도 조창손씨와 가깝게 지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간첩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캠코더를 손에 들고 그들의 일상 혹은 그들의 모임을 세세히 찍었고 여러 장기수들을 만나 남파 경위, 감옥 안에서의 생활, 상상하기도 싫은 폭력적인 전향공작의 과정, 그리고 출소 후의 생활 등에 대한 증언을 기록해 나갔다.

그에게 이 작업은 일종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이었던 셈이었다. 제작 기간 중에 김동원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고, 송환이 끝나고 남한의 몇몇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방북단에 내정되어 있었지만, 국가보안법 안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도 장기수들을 여러 번 만났다. 소위 말하는 남파 공작원, 남파 공작원을 데려다 줬던 호송조들 그리고 월북했다가 다시 남파된 사람들이었다.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간첩도 그냥 사람이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집에 와서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이웃집 어르신 같고, 어떤 모임에서 만나면 똑같이 노래 부르고 노는 촌부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주 자주 한국과 미국과의 종속적인 관계와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한다. 또 아무 자리에서나 통일에 대한 염원과 북의 통치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밝히고, 지지를 보낸다는 점에서 그냥 평범한 노인네들이 아니다라는 것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그들의 맹목적인 논리를 동조하지 않았다. 단지, 철저하게 그들의 주장만을 담아 낼 뿐이다. 감독의 시선은 그들이 결국 한반도 근현대사의 희생물이었다는데 머물러 있었다. 결국 작품은 인간을 향한 인간의 애정을 보여줄 뿐이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간첩이라고 해서 어떤 사람들일까 걱정도 하고 여러 가지 상상도 많이 해 보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부질 없는 것이었다. 정말 장기수 몇 분을 만나 보면 우리 이웃집 혹은 내가 아는 나이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남한에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몇몇 단체의 도움 혹은 혼자 살아나가야 하는 그들의 인생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생각해 보자.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감옥에 수감되어 한 평생을 다 보내고 뒤늦게 냉엄한 자본주의 사회에 내던져 진다면 어떤 사람들인들 남은 삶을 순탄하게 살 수 있겠는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어떤 장기수도 어렵게 모은 돈을 빌려 줬다가 결국 떼였다고 한다. 자본주의에서 보면 그들은 정말 어리숙한 노인네에 불과하다.

거기에다가 그들은 대부분 출소 이후에 보안관찰을 받으며 감옥 아닌 감옥 같은 생활을 견뎌야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한 생활이 그리 즐거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안타깝게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강하게 옭아매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개탄스러웠다.

그동안 방송에서는 장기수들을 다룬 몇 편의 르포들이 있었다. 인천방송에서 방영된 ‘어느 장기수의 망향가’라는 작품도 있었고 KBS에서 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비참한 삶과 과거 대한민국 정부의 비인권적인 만행을 알지 못한다.

설령 피상적으로 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반공의 기치 아래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억압이 당연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반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인권까지 말살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애정과 호의를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 92년 김동원 감독이 처음 알게 되었다는 조창손 할아버지
ⓒ 박성호
사실 이 작품에 나오듯이 비전향 장기수들은 2001년 9월 63명이 북으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전향자로 분류되어 1차 송환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다시, 2차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 외에도 자신을 드러내기를 거부하고, 강제 전향시 행해진 폭력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우리 사회의 약자로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장기수들이 존재한다.

또한 전향 제도는 없어졌지만 수많은 양심수들이 감옥에서 전향각서가 아닌 준법서약서를 요구받고 있다. 이 준법서약서는 결국 모양새가 어떤가의 차이일 뿐 또 하나의 전향제도이며 결국 남북간의 첩보활동으로 인해 생기는 수감자들 이외에 수많은 장기수를 만들어 내고 있다.

149분만에 작품은 끝이 났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두 사람의 장기수들을 보면서 아직 우리 시대의 아픈 현실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김동원 감독은 두 사람의 장기수를 소개하고 그들에게 작품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 2차 송환 촉구 기자회견 한달전에 혼자서 전향무효선언 기자회견을 한 김영식 할아버지
ⓒ 오마이뉴스
작품 속에서 경운기를 몰며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김영식 할아버지와 기네스북 최장기수 김선명씨와 같이 출소하면서 한국 정부가 마련한 꽃 목걸이의 차이가 결국 장기수들을 가지고 또 한번 쇼를 한 거라고 꼬집었던 안학섭 할아버지였다.

김영식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 해방, 그리고 미군정 등 본인이 겪은 한국의 현대사를 아주 길게 설명하면서 영화 속에서 하던 이야기의 후편을 이었다. 그리고 안학섭 할아버지는 김 감독의 신변을 걱정하면서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서 지적했다.

비록 두 사람만 그 자리에 나왔지만 그 두분과 같은 처지에 여전히 놓여 있는 분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반도의 아픈 현실은 오로지 남북간의 영원한 화해만이 풀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와 극장을 나섰다.

다시 한번 좋은 작품을 만들어 준 김 감독에게 감사를 드리며 2차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분들의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해 본다.
2003-12-12 10:0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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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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