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본질적으로 흐르고 기다리면 언제나 새로운 계절이 오건만 다들 겨울이면 봄을 애타게 기다리고 봄이면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곤 한다. 겨우내 반포의 매미 그리고 곤충들도 봄을 기다리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니 살아 있기나 했을까? 워낙 겨울이라는 계절이 사람이나 아니면 사람 아닌 생명체들에게나 험난한 계절이다 보니 곤충들에게는 훨씬 더 가혹한 계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미의 산란 흔적을 발견한 이후 겨우내 나는 여전히 매미의 생태를 쫓고 있었다. 지난가을 매미 녀석들의 사체가 뒹구는 정원에서 그들의 산란 흔적을 확인하고는 내내 산란의 결과 즉 알의 존재와 부화의 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란흔적을 꾸준히 관찰했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매미 후세들이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점점 계절은 겨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비록 산란 흔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시간들을 가졌다.

봄에서 여름 그리고 가을, 세 계절 동안 반포 아파트 정원에서 갖가지 생명체들을 만났다.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매미, 그리고 매미를 관찰하면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개미와 송충이 그리고 지렁이와 달팽이. 고작 다섯 가지 정도다.

거기에 전혀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던 개체들 비둘기와 도둑고양이 그리고 원래 집안의 처마 밑이나 후미진 곳에 거미줄을 쳐놓고 살아가듯 아파트 베란다 구석에서 만났던 거미란 놈과 우리와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는 몇 마리의 바퀴벌레까지 쳐도 아홉 가지다. 이 숫자는 나에게는 의외였다. 사실 아파트 정원 그것도 서울 도심 중앙에서 다양한 생명 개체들이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맞았다. 그런데 예상한 것 보다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매미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다양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촬영의 반경을 조금 넓혀 아파트 정원을 벗어나 근처 공원과 경부고속도로 진입부에 우측으로 조성되어 있는 나무숲으로 진출해 보았지만 그곳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곤충도 아파트 정원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모든 곤충이 서식하기에는 도심의 환경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곤충이나 기타 생명체는 서식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번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깊은 숲에서 혹은 시골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도심으로 흘러 든 종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던 환경과는 분명 다른 도시환경에서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원래 도시의 멤버라고 할 수는 없는 다섯 가지 종들은 환경에 민감하지 않고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강인한 종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과정이야 어떻든 도심 환경에 맞게 유전자의 변형을 일으킨 종일 수도 있다. 후자의 설정은 좀 지나친 면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매년 겨울이 닥쳐오더라도 종의 번식을 이어간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나는 겨우 내내 확인 할 수 있었다.

11월28일

겨울철 아파트 정원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특별한 촬영을 생각해냈다. 12월에서 내년 봄까지 정원의 변화를 짧은 시간 내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내가 사는 아파트 복도의 한 지점을 선택했다. 그리고 여러 번 나누어서 촬영을 하더라도 똑같은 그림을 잡을 수 있도록 카메라의 앵글과 화면의 사이즈를 결정한 후 아파트 정원의 네 지점을 선택했다. 그 네 지점은 뷰파인더의 네 모서리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들을 지켜가면서 1주일에 한번 정도 촬영을 하고 난 후 그 화면들을 연속으로 편집하면서 각 컷트 사이를 디졸브로 처리하면 마치 인터발로 미터 촬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원 안에 있으면 나무는 볼 수 있으나 숲은 볼 수가 없다.

아파트 복도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면 반대로 나무는 자세히 볼 수 없으나 숲의 변화를 한눈에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 8층에서 바라본 정원의 부감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시각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느낄 수 겨울로 들어서는 초입이라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은 드물었다. 다만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현재의 아파트 정원 숲의 상황마저도 곤충들에게는 혹독한 현실일 것이다. 정원 어디에선가 온몸을 혹은 알이나 애벌레 상태로 꼭꼭 숨어 있을 곤충들의 입장에서는 잎이 떨어진다는 것은 계절에 대한 하나의 보호막을 상실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겨울이 더 깊어질수록 지금보다 곤충들이 살아가기에 더 힘든 환경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이 겨울 동안 나의 반포 매미 관찰은 매미 한 곤충에 국한 된 작업이 아니라 매미와 더불어 살아가는 정원 속의 곤충 모두의 삶.

움츠린 삶 그리고 그들의 변화를 기록하고 ….

12월 5일 퇴근 무렵

겨울 몸으로 느낄 정도로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늦은 가을 새별 날씨와 날씨와 겨울 철 해질 무렵의 날씨는 많이 닮은 데가 있었다.

곤충의 겨울 나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교보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샀다. 일본 곤충학자가 만든 책을 번역한 것이었다. 글 위주가 아니라 작가가 평생 찍은 사진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책의 구성 또한 계절과 달별로 곤충의 생태를 나열하고 있었다.

책에 의하면 곤충이 외부 환경에 민감한 세 계절 보다 겨울이 녀석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만큼 둔해진 곤충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더라도 후다닥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책에 실린 11월, 12월 그리고 1,2월의 곤충들의 모습은 평상시에는 관찰할 수 없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나무 속에서 자고 있는 곤충모습도 있었다. 나무에 구멍을 파 곤충의 보금자리 전면을 개방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몰인정하고 잔인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작가야 구멍을 파고 몇 장의 사진을 얻으면 되는 문제였지만 사진에 찍힌 곤충의 보금자리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고를 당한 곤충이 정상적으로 살아 남아 겨울을 넘겼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매미의 산란흔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갈라진 나무 가지 틈 사이를 벌려서 알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녀석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설령 내가 알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혹시나 녀석들이 부화할 때까지 살아 남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미 매미가 힘들여 쉽지 않은 장소 바로 목질 속에다 알을 낳은 것은 그곳이 알들이 부화 때까지 아무 탈없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이라는 본능적인 판단에서 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이 그곳을 벗어나거나 그곳이 일부 파괴된다면 당연히 녀석들의 생존율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12월 13일 오전

좌우지간 책에 실린 사진들을 가이드 삼아 겨울철 아파트 정원의 곤충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즉 쉽게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책의 얘기와는 다르게 어떤 곤충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 며칠 손발을 호호 불어가면 정원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도대체 이 놈들은 어디에서 살아 있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봄이 되어 다시 나타나려면 이 겨울 분명 정원 어디에선가 모진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아님 겨울 전에 놓아 둔 알이라도 어디에 있어야 할 게 아닌가?

12월 16일

정원 안에서 어떤 곤충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대신에 의외의 장소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곤충을 만났다. 아내가 어느 날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유는 방안을 날아다니는 나방 때문이었다. 때는 1월 중순 겨울의 한 중간이었다. 그만큼 추운 날 수가 많은 시기였다. 나방을 잡으라고 소리치는 아내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녀석은 한창을 날아다니다 냉장고 위 먼지 자욱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녀석은 우리 집 안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녀석은 며칠 동안 계속 보였다.

냉장고 위에 없는 날에는 우리집 안 다른 어디에 있었을 것이다. 그건 도시 곤충이 나름대로 확보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봄가을 바깥 날씨와 온도와 다르지 않는 아파트의 실내 환경은 녀석이 겨울을 봄가을처럼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녀석은 우연하게 우리집 베란다나 현관문을 통해 들어 왔겠지만 집안에 그가 원하는 먹이가 있었을 것이고 온기가 있어서 살수 있었을 것이다.

 나방녀석은 며칠 후 베란다에서 죽은채로 다시 발견되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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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이 실내에서 인간과 같이 살아가는 것은 도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겨울철 산장이나 시골집에서도 곤충들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서 경작하던 과수원에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다. 기와를 올리고 흙과 석회로 벽을 바른 집이었다. 그 집의 큰방에는 할머니가 해 놓은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 매주 뒤로 매달려 살고 있는 나방이 있었다. 어떤 나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구경하는 재미로 녀석들을 애써 쫓거나 잡지 않았다.

12월 18일

또 한번의 겨울곤충과의 대면은 모기였다. 여름 한철 동안 인간을 괴롭히는 모기, 그러나 이제는 그들에게도 사계절의 구분은 필요 없어진 듯 보인다. 어느 날 저녁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리며 팔이며 자꾸 긁기 시작했다.

이사를 오고 나서 집안에서 개미를 본적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자국만으로 봐서는 모기인지, 개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을 고려해 보건데 모기 때문일리는 만무했다. 원인은 곧 드러났다.

한겨울인데도 방안에 모기가 있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모기가 번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내의 따뜻한 기온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구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늪지가 있어야 하는데 실내에 그럴만한 늪지가 있을 리 만무하고 녀석도 결국 바깥에서 들어온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영상과 영하의 경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겨울 날씨에 아파트 정원 혹은 인근에 모기가 발생할 만한 늪지가 있다고 해도 기온 때문에 최근에 태어난 놈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모기의 수명을 생각해 보면 녀석은 분명 적어도 1,2개월 전 9월이나 10월초에 태어나서 여지껏 생존하고 있는 놈이었다. 참고로 모기는 매미 보다 알에서 성충이 되어 죽기까지의 시간 즉 전체 수명은 매미보다 짧지만 성충으로 세상에서 사는 시간은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기는 정도 물위에서 알을 낳은 지 약 3일 만에 부화되어 유충이 된다.

이 유충은 약 7일간 4회의 탈피를 하는 4령기(齡期)를 거쳐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물 속에서 약 3일이 지나면 성충으로 변태하게 된다. 모기는 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약 13∼20일 걸리고, 성충의 수명은 1∼2개월이다. 성충은 1개월 내지 2개월을 산다고 하지만 늦게 태어나서 늦게 변태를 하고 성충이 된 놈은 바깥 기온 때문에 자기의 수명을 다 채우기는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녀석은 어떻게 살아 남아서 때늦은 겨울에 아내와 나를 괴롭힌 것일까?

결국 그날 저녁 모기를 3마리나 잡았다. 녀석들은 분명 둔해져 있었다. 여름철 같으면 대충 손으로 때려잡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둔해진 녀석들은 내가 철썩 철썩 손바닥을 내려치는 대로 죽어서 내동댕이쳐졌다.

그날 저녁 생각나는 한가지 일이 있었다. 언젠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녀석의 예방주사를 맞히러 동물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종합예방주사를 맞히고 나서 동물병원 의사가 심장사상충 약을 먹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심장사상충은 모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인데 동물에게 있었서는 걸리면 죽음까지 예상해야 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서로 달았던 이야기가 있었다. 심장사상충 예방약은 사실 모기가 있는 5월에서 10월까지만 복용시키면 되지만 요즘은 일년 내내 먹이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도시 모기는 늦은 겨울까지도 생존하는 예가 있기 때문에 예방기간을 더 넓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겨울에도 모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10월까지만 예방약을 복용시키고 말았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12월초에 모기와 대면하고 나서는 그 동물병원 의사의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매미소리가 극성이라는 사실을 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기가 겨울에도 생존하는 원인을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달라붙었다.

의외로 원인에 관련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매미 소리가 하나의 이상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화두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겨울에도 기성을 부리는 모기’에 대한 기사가 꽤 있었다. 그리고 원인은 매미소리의 극성처럼 도시화라는 환경에 있었다.

곤충이 겨울을 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정확히 말해서 곤충이 겨울동안 종족을 이어가는 방법에는 알로써 이어가는 방식이거나 아님 직접 한해를 더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매미처럼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의해서 종족이 보존되기도 한다. 매미는 여름날 이주 밖에 살지 못하므로 종족이 보존되는 것은 전적으로 여름 동안 낳은 알과 이미 알에서 부화해서 땅속에서 칩거하고 있는 유충에 의해서다. 바깥세상에서 한해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것은 개개의 곤충의 입장에서 본다면 겨울을 나지 않아도 되므로 다행이겠지만 종 전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만큼 종족 보존이 힘들어 진다는 의미에서 불행일 것이다. 그러면 모기는 어떤 식으로 종족을 이어갈까?

기사 등의 자료에 의하면 모기가 이렇게 겨울에도 극성을 부리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다. 기사 검색에서도 근자에 가까워질수록 겨울철 모기에 대한 기사가 많아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추운 겨울에 어떻게 모기가 추위를 이기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모기는 종류에 따라서 겨울에 특정 상태로 월동을 한다고 한다. 그 시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조시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조시간이 대충 10시간 이하가 되는 10월말이면 유충이 월동 시기를 감지하고 몸 속에 영양분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영양분을 축적하더라도 숫모기는 월동을 할 수가 없다. 월동을 하는 것은 암모기만이다. 즉 유충에서 우화한 암모기는 숫모기와 교미를 한 후 흡혈은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때 암모기는 체내의 영양분 지방에 의존해 월동장소로 가서 동면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50여종의 모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를 겨울에도 괴롭힐 수 있는 모기 즉 성충으로 월동하는 모기는 숲에서 서식하는 모기를 제외하고도 3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도시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모기는 빨간집 모기라고 한다.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유력한 용의자(용의모기)가 바로 이 녀석인 것이다. 숲에서 서식하는 모기들은 대부분 알로 월동을 하므로 사실 숲에서 나와 우리가 거주하는 주거공간으로 침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녀석들이 깨어나려면 적어도 3월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빨간집 모기는 우리의 주거공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월동을 한다는 점이
바로 녀석을 범인으로 볼 수 있는 증거이다. 빨간집 모기는 주로 지하실이나 동굴, 하수도 혹은 지하철 같은 지하 시설에서 월동을 한다. 심지어 간혹 보일러실 같은 곳을 월동장소로 삼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영역 가까이에 있는데다가 요즘 도시의 실내온도가 녀석들의 활동기간을 길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한다.

원래 모기는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다. 그리고 공기 중 온도가 섭씨15도 이하로 내려가면 체온이 하락해 몸 속의 대사활성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결국 몸이 둔해져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간혹 추운 날 발견한 모기를 손으로 대충 때려 잡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민첩해서가 아니라 모기 녀석이 둔해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론상 아무리 빨간집 모기라 할지라도 겨울철이면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간혹 겨울철 실내 온도가 15도를 넘어가면 이 녀석들이 철을 잘못 알고 깨어나기도 하고 18도를 넘어가면 사람들의 피를 빨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우리의 겨울철 난방 때문인 것이다. 심지어 보일러의 폐수탱크를 습지 삼아 장구벌레를 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녀석들을 요즘은 백화점이나 병원 등 대형건물에서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원래 빨간집 모기였으나 인공적인 지하환경에 적응하다 그리고 종족보존을 위한 적응을 일으키다 보니 형태상이나 생식 방법상에서 빨간집 모기와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녀석들을 빨간집 모기가 아니라 ‘지하집 모기’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변이를 일으킨 녀석들을 겨울철에 퇴치하는 방법 또한 이색적인 게 있다. 바로 모기 유충이나 장구벌레의 천적인 미꾸라지를 모기가 산란할 만한 물탱크에 조금의 먹이와 함께 넣어두면 겨울철 모기의 수가 현격히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이러한 겨울철 모기를 방제하고자 여름철과 같은 방법으로 방제를 실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지하집 모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방제이므로 전혀 실효성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인간에게 가하는 활동의 제약성을 극복하고자 점차 강해지고 있는 겨울철 난방이 결국 모기의 겨울철 창궐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었다.

12월 24일

도시에서 서식하는 나무들은 사실 산이나 야생에서처럼 자기들의 방식대로 혹은 자기들의 생존논리에 따라 자라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인간의 삶에 어떤 유익한 방향에 맞추어져 생존하게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란다에서 아파트 앞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인간들이 대대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름 동안 너무 자라버린 느티나무 가로수의 가지들을 톱으로 엄청나게 잘라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의 느티나무들의 가지들은 굵은 가지 몇 개만 남겨놓고 다 잘리어져 덩그러니 몸통만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은 아파트 정원에서도 있었다. 해를 더해 갈수록 정원의 나무들은 수령을 더해가고 엄청 커간다. 한정된 면적 안에서 각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려면 결국 나중에 몇 그루의 나무들을 잘라 낸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장 성장이 저조한 나무들이나 병충해에 심하게 시달리는 나무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래서 정원에는 여기 저기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루터기만 남아 있어 살아 있는 나무라고는 보기 힘들어도 이런 나무는 곤충의 겨울철 아주 좋은 피난처 구실을 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거미줄 덩어리 안에 있는 것은 거미의 알로 추정된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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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루터기가 갈라진 틈 사이에서 거미의 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갈라진 틈 사이로 하얀 솜뭉치 같은 게 있어서 어떤 곤충의 고치인가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얀 솜뭉치 안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알인 듯 했는데 확실치 않았다. 솜 뭉치는 바로 거미줄이었다. 거미줄을 아주 촘촘하게 엮어 놓아서 솜처럼 보인 것이었다.

벽 구석에 혹은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에 쳐서 지나가는 다른 곤충이나 벌레를 사냥할 때 사용하는 거미줄과 같은 소재지만 작은 부위를 겹겹이 쳐서 마치 누에고치의 표면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실 누에의 고치도 녀석이 뱉어낸 실을 겹겹이 그리고 촘촘하게 엮어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내가 발견한 거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누에의 그것은 그 안에서 변태를 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면 내가 발견한 것은 알이 외부의 침입이나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하기를 비는 어미 거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거미줄의 실용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한 거미줄은 사냥감을 포획하는 사냥용으로, 적으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는 주거공간의 재료로, 이동수단으로, 상호 의사교환 수단으로, 특정한 위치를 표시하는 표지판 등으로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된다. 거기에 내가 목격한 것처럼 거미는 거미줄로 알을 싸서 부화할 때까지 보호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일부 거미들은 생식기간 중에 짝짓기를 할 배우자를 거미줄을 늘어 놓아 유인하기도 한다.

겨울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아니 곤충관련 책들에서 말한 것 보다 곤충을 만나기 힘든 계절이었다. 내 게으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예상외로 반포에서 겨울철 만날 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곤충은 많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그만큼 도시의 곤충 생태계는 매미와 같이 엄청난 개체수를 가진 종이 있는 반면에 종들의 다양성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1월 27일

시간이 많이 흘러 1월 말 무렵 같은 나무 그루터기를 찾았을 때 거미줄 안은 비어 있었다. 추측컨대 알이 부화를 해서 이미 거미 새끼가 바깥으로 나간 듯 했다. 혹시 아직 거미줄로 만들어진 알집 안에 남아 있는 거미가 없나 해서 주위의 나무들을 살폈다.

그루터기가 아니라 한 느티나무의 옹이 안에서 비지 않은 거미알집을 발견했다. 그루터기에서 발견한 거미알집과 형체가 똑같았다. 그 안에는 아주 작지만 거미의 형체를 하고 있는 새끼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전혀 미동을 하지 않았다. 녀석은 죽은 듯 했다. 거미줄을 헤치고 알집을 벌렸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살짝 건드려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모진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녀석은 죽어 버린 것이다. 거미알집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보아 외부의 침입이나 공격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겨울 환경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고 죽은 듯 했다.

이번 겨울은 지난겨울에 비해 혹독하지 않았다. 눈도 많이 오지 않았고 딱히 너무 너무 춥다는 기억으로 자리 남을 만한 날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건 곤충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추위로 인해 목숨을 접는 개체가 예년에 비해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겨울이라는 환경은 수많은 곤충들을 죽음으로 몰아 갔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사계절 중에 겨울은 나름대로 곤충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에 겨울이 없다면 여름날 반포의 매미 소리는 더욱 시끄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겨울에 많은 곤충들이 죽어가지만 또 살아 남는 개체들이 있고 그 살아 남은 개체들은 또 다음 계절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종을 이어간다. 그것은 자연의 신비함이었다.

2월 14일

 한 겨울이 되자 매미가 산란한 나뭇가지는 더욱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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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가을 발견한 매미의 산란 흔적에는 이날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사실 나는 거의 매일 그 산란 흔적에 와서 어떤 변화가 있나 살펴왔었다. 이날도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유독 걱정이 드는 날이었다. 이유는 이날 너무나 추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운 날 아무리 나무의 섬유질 속이라도 기온이 엄청 낮을 텐데 혹 알들이 모두 얼어 버리지나 않았을까? 여름에 산란된 알들이 100% 전부 부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목격한 알들만은 부화까지 무사해 주기를 겨우 내내 빌었다. 그런 마음이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 오히려 걱정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을에 촬영 테이프에서 산란광경을 발견하고 그 나뭇가지를 다시 찾아갔을 때 나뭇가지는 이미 말라죽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나뭇가지의 모습은 더 험해 보였다. 아무래도 겨울이 깊어 가면서 죽은 나뭇가지도 자연 속의 물질 모두가 그런 것처럼 분해의 정도가 좀더 진행된 듯했다. 과연 이런 나뭇가지를 보호막 삼아 알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일까? 걱정은 걱정일 뿐 나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천 조각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나뭇가지를 감쌀가도 생각했지만 오히려 어리석은 짓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예 그것은 포기했었다. 그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봄이 오기 시작하던 날 어느 밤 정원에서 이름 모를 한마리의 곤충을 발견했다.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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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말이 되도록 곤충들의 별다른 활동이 눈에 띄지 않았다. 3월 31일 처음으로 벌과 개미를 만났다. 그리고 5월초 드디어 무당벌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 큰 어미가 아니라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오는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작았다. 거의 1밀리미터 정도 됐다. 얼마 전에 버드나무 가지에서 주황색의 작은 알들을 발견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당벌레의 알들이었다. 애벌레가 빠져나간 알 껍질들은 하얀 색으로 변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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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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