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4일 낮
낮에 회사 일로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마포구청 앞에서 타서 연대 앞을 지나고 금화터널을 지나 광화문으로 가는 길이었다. 금화터널 입구에서 일시적인 정체현상이 있어 택시가 길 한가운데 섰다. 그런데 그곳의 매미 소리도 엄청났다. 금화터널 위쪽 수풀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곳이 그렇게 시끄러운지는 처음 알았다. 그래서 ‘여기도 매미가 장난 아니네’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택시기사는 무표정하고 키 작은 사내가 마포구청에서 금화터널까지 오는 20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던 내가 불편했던지 아니면 내가 말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지 내가 한마디 중얼거리자 따발총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글쎄 말입니다. 서울 매미는 영 이상하단 말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랄 때 듣던 매미 소리는 저런 소리가 아닌데 말입니다.”

육십 가까이 돼 보이는 택시기사는 말끝마다 ‘말입니다’를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말이 없어 보이는 사내여서 조심하는 말투였다. 나는 동안(童顔)이어서 택시를 타면 웬만한 사내들은 나한테 반말하기 일쑤였는데 나이 지긋한 양반이 그런 말을 쓰는 것을 보고 나로서는 그렇게 추측을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시골에서 자랄 때는 매미가 맴맴맴이라고 울었단 말입니다. 저 소리 보세요. 재네들은 매에에에에에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시끄럽다니까요. 아주 노이로제 걸릴 지경입니다. 내가 서울 올라온 지 10년 됐는데 그러니까 여름이 10번째인데 도통 저 소리하고는 친해질 수가 없어요.”

나는 짧은 말로 ‘저건 말매미입니다.서울에 제일 많은 종류죠.’라고 했다. 사내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사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놓치지 않고 바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매미 소리 녹취 때문에 항상 캠코더를 휴대하고 다니던 터라 앉은 채로 인터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내는 정색을 했다. 나도 막무가내였다. 그냥 레코딩 버튼을 누르고 질문을 해댔다.

“옛날 매미 소리가 그거 하나 밖에 기억 안나나요? 다른 매미 소리는 못들었나요?”

뭐뭐하던 것도 멍석 깔아 놓으면 안 한다는 말처럼 택시기사는 몇 마디 웅얼웅얼 하더니 금세 ‘아이 뭐 그런 것까지 다 찍을라고 그람니까?’로 입을 닫아 버렸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카메라에 대해 기피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에 바로 카메라를 놓을 수는 없었다.

“혹시 여러 가지 매미들이 어떤 방법으로 다른 소리를 내는지 아세요?
“매미 소리가 이상한 게 있긴 합디다. 그런데 뭐 내가 자세히 보기를 했어야죠.”

그날의 인터뷰는 그걸로 끝이었다. 자기네 아파트 주변 매미 이야기, 숫놈과 암놈의 울음소리 차이 등 몇 가지 이야기가 더 나왔지만 택시기사의 상식은 일천했다. 숫놈도 울고 암놈도 운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가 했던 이야기 중에서 시골매미는 서울매미처럼 울지 않는 다는 이야기는 내내 나의 기억 속에 남았다. 반포에는 어떤 매미들이 살고 있는지 더욱 더 그 울음 소리에 대한 갈망이 생기고 있었다.

매미 소리에 얽힌 영상제작자들의 에피소드

좌우지간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매미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 중에는 나처럼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들도 있었다. 대개는 그들에게 달갑지 않았던 경우다.

한 동시녹음 기사로부터 그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제작에 있어 요즘은 예전과 달리 동시녹음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만큼 장비가 좋아졌고 현장감을 중시하는 하나의 트랜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시 녹음기사들에게 있어서 여름철 가장 지겨운 놈이 매미들이라고 한다. 내가 ‘반포매미’촬영본을 일부를 가지고 1차 완성본을 만들고 나서 녹음을 하기 위해 녹음실을 찾았는데 그곳의 녹음기사가 예전에 동시녹음을 하던 분이었다. 그분의 말인 즉 어느 여름 야외에서 촬영을 하는데 매미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 동시 녹음이 거의 불가능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매미를 쫓기 위해 전 스태프가 동원돼서 나무도 흔들어도 보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보기도 하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그날의 승패는 매미의 승리했다. 촬영팀은 매미 소리를 포기하고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후시녹음을 다시 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두번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로 그 녹음실에서 들은 이야기다. 내가 녹음실을 찾았을 때가 10월 말이었다. SBS VJ영상대전 출품이 녹음까지 마친 완성본이어야 해서 반포매미 1차 완성본의 녹음을 하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침 철아닌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공중파 외주PD와 녹음실 기사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유인 즉은 녹음 중인 프로그램은 사실 여름에 촬영되었는데 방영이 되지 않고 차일 피일 미루어지다가 이제야 방송을 타게 되었는데 이놈의 매미 소리가 계절에 맞지 않는다고 전부 빼 달라는 것이 방송사의 주문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방송 외주제작에서 이런 일은 흔한 일이다. 외주란 것이 미리 계약을 하지 않고 일단 마스터 테이프를 보고 난 후 방영을 결정하기 때문에 담당CP가 까다롭게 굴면 이런 일도 생기는 것이다. 고민 중인 PD는 방영결정이 나서 좋았지만 매미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매미는 여름에만 우는 것이 아니라 10월에도 울지만 매미소리란 여름을 상징하는 소리기 때문에 담당CP의 요구에 외주PD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결국 녹음실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매미 소리란 것이 다른 한 오디오 트랙에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음과 함께 들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매미 소리만 분리해낸다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매미가 그야 말로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지만 그 PD에게는 애물단지였다.

10월 중순의 어느 날,
한 잡지사 기자가 내가 근무하는 회사를 찾아왔다. 이유인 즉 그 잡지에 다큐멘터리 사이틀 운영하고 있으며 현업으로 PD일을 하고 있는 나를 영상프론티어로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나를 찾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매미 이야기를 하자 ‘정말 제가 어렸을 적 시골 매미는 서울 매미와는 우는 게 달랐던 것 같아요’라는 대꾸를 했다. 여태 여러 사람에게 익히 들은 이야기라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서울에 과연 어떤 종류의 매미들이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가고 그리고 겨울도 지나가고… 그 사이에 나는 매미 울음 소리 말고도 매미 일생의 다른 부분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많은 성과도 있었다. 뜻하지 않았던 촬영의 결과로 매미의 일생 중에서 가장 신기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산란 현장도 담을 수 있었고, 그들의 죽음도 자세히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남은 가장 큰 당면과제는 울음소리였다.

10월27일(일요일)
모처럼 아내와 산을 찾았다. 서초구 예술의 전당 옆에 있는 도심의 산이다. 그런데 사실 이 산은 과천까지 연결되어 있는 꽤 큰 산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 해 시월 마지막 주까지 매미 가 있고 그들이 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월 마지막으로 매미 소리를 들은 것은 반포가 아니라 바로 우면산이었다. 우면산은 도심 아파트 단지보다는 숲이 깊어서인지 반포보다 훨씬 늦게까지 매미가 울고 있었다. 하지만 매미 소리 녹취에 대한 성과는 없었다. 고작 그 해 여름 촬영한 말매미 소리가 다였다. 물론 각기 다른 소리는 많이 들었다. 온 사방에서 다양한 매미들이 울어대니 그건 어렵지 않았지만 정작 그들이 우는 광경을 촬영해 내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매미 다큐멘터리 제작은 나의 호기심의 진동폭이 커지는 만큼 추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다. 사기도 충천해 있었다. 일단 매미 종류별로 다른 울음소리에 대한 연구는 어림 짐작 해 보건대 우리나라 곤충학자들조차 아니 매미 전문 곤충학자라고 하더라도 뚜렷한 결과물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더욱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더욱 열정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영준씨가 운영하는 한국의 매미라는 사이트에서 매미 종류별 울음 소리를 소리 나는 그대로 한글로 옮겨 놓은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글자로 풀어 놓은 매미 소리로 내가 들어왔던 다양한 매미소리를 구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점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그리고 가까이는 인터넷도 뒤져 보고 다양한 매미 소리에 대한 정보, 즉 어떤 소리가 어떤 매미의 것인지 하는 구체적인 그리고 그런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원리에 대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결국 종류별로 다른 매미 울음소리에 대한 기록은 한해를 더 기다려야 하는 숙제로 남게 되었다. 매미의 종류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안으로 식별하는 것 보다 소리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녹취는 도심에서 서식하는 주요매미를 알아내기 위한 개체조사의 역할도 할 듯 하다. 육안으로 식별하든지 녀석들을 생포하는 방법으로 도심에서 거주하는 주된 매미를 알아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전자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방법이고 후자는 알량한 조사를 위한 방법치고는 그 희생의 대가가 너무 큰 방법이다. 또한 후자는 나중에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신빙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종별로 다른 매미 울음 소리에 대한 녹취는 결국 도심에 어떤 매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듯 하다.

매미 울음 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매미 종류에 따라 매미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다른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 저도 촬영을 계속하고 있고 큰 성과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촬영은 계속될 것이고 그러는 중간 중간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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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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