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매미 알은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부화하는 것일까? 지난해 산란 장면을 확인한 후 거의 같은 질문들을 되뇌이며 녀석들의 부화를 기다려 왔다. 물론 단순히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부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결국 녀석들이 언제 부화하는지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매미 알의 부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물론 파브르 곤충기와 같은 기본 서적부터 시작해서 인터넷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보는 부족했다. 완벽하지 않았다. 부화방식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부화시기 혹은 산란에서 부화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정보가 빠져있거나 그런 식이었다.

곤충 서적들은 단어나 내용은 어려운 반면 정보는 자세한 것 같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들은 없었다. 어린이용 곤충 서적들은 매미 알을 클로즈업한 사진부터 시작해서 그림은 풍부했으나 역시 부화 순간의 그림 정보들이 결핍되어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들의 곤충 정보들은 페이지 수는 많았으나 대부분 몇 개의 사이트 정보들을 카피해서 올려놓은 것들이었다. 결국 정보량에 있어서는 제한되어 있었고 다만 페이지만 많은 뿐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이트는 유해곤충의 방제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있는 농업 관련 사이트들이었다.

매미는 분명 과실수에 있어서는 유해 곤충이었다. 매미가 알을 과실수의 줄기에 놓거나 심지어 과실에다 직접 놓을 경우 가지가 고사하거나 과실의 등급이 엉망이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과수 농가에서는 매미의 번식을 지상 과제일 수밖에 없고 매미의 번식을 줄이는 방법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매미 유충을 잡아 없애는 것보다 원천적으로 알을 못 놓게 하거나 알이 부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더 권장되고 있었다. 그래서 산란 시기나 부화시기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의구심이 들었다. 매미 알이 부화를 하더라도 모두 땅을 뚫고 들어가 4년이상의 시간 동안 살아 남아 유충이 되어 땅을 다시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닐텐데 부화를 막는 방법이 과연 타당한 방법일까? 그냥 두어도 상당수의 1령 애벌레들은 죽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한번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 산란을 막는 것이 방제의 방법으로는 훨씬 타당한 것 같았다.

정보는 부족해도 조각 조각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해서 나는 매미 알의 부화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기본정보는 파브르 곤충기에서 얻고 한반도의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한 해석은 인터넷 사이트들의 정보를 이용했다. 시기는 당연히 유럽과 한반도의 계절이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오히려 우리나라 사이트들의 정보가 적당한 것이었다.

과연 매미는 어떻게 부화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 부화하는 것일까? 부화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은 파브르 곤충기에 자세히 나와 있었다.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번역시 출판사에서 삽입한 것으로 보였다. 부화방식에 대한 것은 일단 이후 내가 직접 관찰한 매미 알의 부화를 설명할 때 이야기하기로 하고 부화시기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매미 알의 부화시기(한반도의 계절 상황에 맞는 내용)

@IMG2@매미 알은 산란에서 부화까지 1년의 시간이 걸린다. 한반도의 경우 6월초에 매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6월 중순이후 첫 산란이 이루어진다. 고로 첫 매미 알이 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시기는 6월 말이다. 물론 전해에 산란된 알이 부화하는 시기이다. 즉 1년 후에 부화한다는 것이다. 일단 알에서 나온 1령 애벌레들은 바로 땅에 떨어지고 땅 위를 헤매다 바로 땅을 파고 들어간다. 땅을 파고 들어간 애벌레는 그곳에서 사오년을 보내게 된다.

이 자료는 농업진흥청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정보다. 정보의 주장인즉 부화시기가 이때이므로 이때 산란 흔적이 있는 나뭇가지를 잘라다 불에 태우든지 해서 부화 자체를 원천봉쇄하라는 것이었다. 내게 아주 중요한 정보지만 사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녀석들이 부화하는 데는 365일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IMG3@나로서는 그동안 기다림의 순간보다 한층 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매미의 산란을 촬영한 것이 1년 전 7월 중순이었으므로 이제 거의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1년이 아니라면 적어도 매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6월에 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6월8일-모종의 실험을 실행에 옮기다

청년 파브르 최동환 학생이 다시 나를 찾아 왔다. 그도 오자마자 산란흔적이 있는 나무부터 확인했다. 그도 매미 알의 부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산란흔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정확히 1년이 되려면 한 달하고도 일주일 정도가 부족한 시점이었다. 다음으로 지난번에 제자리에 가져 다 놓은 부러진 산란가지를 확인했다. 거기에도 변화는 없었다.

나는 먼저 내가 찾은 부화시기에 관한 인터넷 농업진흥청 자료를 보여 주었다. 자료를 유심히 보던 동환 학생은 그때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산란 가지들에 아직 부화를 기다리는 알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했다. 그리고 그 때가 곧 오리라는 데에도 동의했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부러진 가지를 가져와 부러진 틈 사이에 들어 있는 매미 알들도 보여 주었다. 동환 학생은 상당히 신기해했다. 곤충광인 그가 그동안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놀라움이기도 했고 내가 말로만 설명해 주던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인 듯 했다. 그의 결론은 매미 알의 상태로 보아서 분명 죽은 알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윤기도 있고 마치 곧 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알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런 알이 어떻게 목질 속, 수분도 없는 상태에서 겨울을 나고 1년을 견디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목질 속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겨울철 기온이나 수분의 부족 등이 알이 생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어미 매미들의 본능적인 현명함이 개체를 보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IMG4@그런데 매미 알을 자세히 들여 다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나의 산란 흔 안에 대충 10여개의 알이 있었는데 색깔이 두가지였다. 예닐곱 개의 알은 불그스럼했고 나머지는 그보다 연한 우유 빛이었다. 녀석들은 모두 나뭇가지의 목질 속에 몸뚱아리를 나란히 대고 뭉쳐 있었다. 그래서 색깔의 구분은 더욱 선명했다. 꺾어진 산란가지를 발견하고 그 가지의 산란흔 속에서 매미 알을 처음 보았을 때 대부분의 색깔은 우윳빛이었다. 그렇다면 부화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같은 알들이 색깔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동환 학생과 나는 몇 가지의 추측을 해 보았다.

첫 번째 추측은 둘 중의 한가지 색깔의 알들은 부화를 할 수 없는 죽은 알일 가능성이었다.
처음 보았던 알들이 우윳빛이었으므로 불그스런 알들이 죽은 쪽일 가능성이 높았다.

두번째 추측은 둘 다 아직 부화할 수 있는 알인데 대신에 산란 시점이 따라 부화시기가 차이가 있고 그 차이로 인해 알 내부의 상태가 다를 가능성이었다. 알 내부에 있는 예비 애벌레나 알 내부를 채우고 있는 물질이 알의 성숙도에 따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든지 좀 다른 물질 단계를 취하고 있을 것 같았다. 즉 부화시기에 좀더 가까워져 있는 알과 그렇지 않은 알의 외형적 내형적 차이인 셈이었다. 그러나 후자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나의 산란 흔 안에 있는 알들이었으므로 각기 다른 매미가 낳은 알이라고 보기 힘들었고 고로 부화시기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아예 다른 매미 종류의 알일 가능성도 생각했었는데 같은 이유로 가능성을 배제했었다. 그렇다면 분명 둘 중 한가지 종류의 알들은 생명력을 잃어서 부패를 했거나 알의 성숙 단계 중에서 어떤 단계에서 멈춰버린 상태일 것으로 보였다. 혹시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둘 중에 한 가지 알들이 얼어버렸고 그로 인한 결과인지로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이었다. 이후에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고 주위에 물어 보기도 했지만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답을 알려면 일단 두 색의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색깔 모두 부화를 하든지, 한가지 색깔의 알들은 부화를 하지 못할 것이다. 둘 중 어느 경우가 되든지 그 원인은 부화 이후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동환 학생과 나는 다른 산란 흔적들을 찾아 정원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주로 산란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무는 단풍나무뿐이었다. 단풍나무 잎과 가지들의 푸른 녹색에는 한 두 군데 갈색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말라비틀어진 가지와 잎의 존재들이었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산란의 흔적들이 있었다. 이상한 것은 매미 녀석들이 단풍나무에만 산란하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다른 나무에서는 산란 흔적들이 잘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모종의 실험

@IMG5@이날 결국 매미 알이 부화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두 남자는 모종의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실험이라기보다 부화 순간을 확실히 관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를 하는 것이었다. 일단 꺾여져 있던 산란가지에서 매미 알 10여개를 채취했다. 그리고 이 알들을 동환 학생이 가지고 가서 예전에 다른 알을 부화시키던 방식대로 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동환 학생의 말에 의하면 산란가지를 그대로 두는데 단지 부화를 한 애벌레들이 바로 흙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점을 고려해 넓은 접시 같은 데에 흙을 깔아 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거기에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분무기로 물만 좀 뿌려주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매미알이 부화를 하기 위해서는 수분이 필요하다는 자료가 생각났다. 매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는 아니었는데 그 구절만은 아주 뚜렷하게 기억이 났다. 아마 여름철의 비가 매미 알의 부화에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바로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캠코더 한대를 빌려주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촬영방법에 대한 세심한 주의사항을 가르쳤다. 화이트를 맞춰주는 방법이나 수동으로 촬영하는 방법 등등 기본적인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일러주었다.

내가 이렇게 애초에 피하고 싶었던 임의적인 실험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연상태에서 매미 알만큼이나 작은 피사체의 부화를 촬영하면 과연 제대로 영상을 잡을 수 있을까하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바로 그렇다. 내가 동환 학생에게 알을 맡기고 부화과정을 촬영하려 한 것은 일종의 스튜디오 촬영이었던 셈이다. 종종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서는 자연상태에서 촬영 불가능한 부분을 임의로 설치된 세트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있다.

단 세트 촬영임을 밝히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다. 게다가 나의 출퇴근 시간이 좀 부정확하고 현재로서는 절대적인 관찰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도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알의 부화시점에 임박하여 동환 학생이 관찰을 한다면 훨씬 세심한 관찰이 가능할 듯 했다.

동환 학생과 나는 일종의 핫라인을 개설했다. 알에 어떤 조그마한 변화라도 있으면 바로 나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일단 그 변화사항을 검토해보고 내가 촬영해야 될 부분이면 바로 장비를 들고 동환 학생의 집으로 찾아 갈 수 있도록 차에다가 촬영 장비를 싣고 다니기로 했다.

6월10일

@IMG6@아파트 단지에는 아직 때도 이른데 매미처럼 왱왱거리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는 13일의 지자체 선거 때문에 때아닌 왕매미들이 단지로 몰려 들었던 것이다. 녀석들은 자기 목소리의 힘만으로 부족했던지 기계의 힘을 빌어 울어 대고 있었다. 녀석들의 울음은 매미들의 울음과 마찬가지로 들어주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매미 울음소리와 달리 그들의 울음소리에는 내용도 있고 열정도 있어 보였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이유는 아파트 주민들의 삶과 그들이 내뱉는 말들 혹은 약속들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서인 듯 했다. 아니면 아파트 주민들이 그런 정치 매미들의 울음소리에 질려 버려서 일 수도 있었다. 일단 한번 그 울음소리에 질리고 나면 그 소리가 좋은 소리이든 나쁜 소리이든 간에 모든 그들의 소리는 도매금으로 질리게 하는 소리로 인식되게 마련인 것이었다.

또 하나 요즘 도심을 뒤흔드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월드컵의 함성이었다. 경기가 있는 날 아니면 한국팀이 승리하는 날 ‘대한민국’이라고 우는 매미들은 새벽이 되어도 그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이날의 한국의 대 미국전은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붉은 악마들의 울음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나의 주인공인 매미들은 아직 6월을 여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아직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6월17일

월드컵 때문에 일주일 동안 아파트 정원 탐험을 잊고 살았다. 14일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포르투갈을 꺾고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 난 뒤 도시는 거의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나 또한 그들의 열광과 환희를 촬영하러 도시의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그야 말로 매미 울음소리가 채우던 한 여름의 허공을 사람들의 핏발 서 있는 함성들이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매미의 부화를 까마득히 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날 저녁에 최동환 학생이 다시 나를 찾아 왔다. 그렇지 않아도 부화를 관찰하기 위해 가져간 매미 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찾아 온 것이었다. 그는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한가지 신기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IMG7@매미 알이 부화했다는 소식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촬영한 매미 알의 접사 촬영장면이라면서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알이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모니터 절반만하게 잡힌 촬영 장면이었다. 기존에 내가 준 카메라로는 아무리 근접 촬영을 하거나 접사필터를 사용해서 촬영하더라도 그렇게 피사체가 크게 나올 수는 없었다. 그는 분명 다른 장비를 사용한 듯 했다.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도대체 무슨 장비를 사용했길래 매미 알이 이렇게 크게 보일까? 그 해답은 좀 엉뚱하기도 하고 정말로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들이 사용하던 캠코더 앞에 스틸카메라에 사용하던 35mm표준렌즈를 하나 더 달아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붙이는 것이 아니라 스틸카메라의 표준렌즈를 거꾸로 달았다는 것이다. 거꾸로 달린 스틸카메라의 표준렌즈가 일종의 초접사 렌즈 구실을 했던 것이다. 그 이치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스틸로 곤충 촬영을 계속해 온 동환 학생의 엄청난 노하우였다. 그 효과란 접사필터와는 비교가 안됐다. 사실 캠코더용 초접사 렌즈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최고의 방법이었다.

초접사로 촬영한 매미 알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너무 작아서 그냥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길쭉한 모양의 매미 알의 한쪽 끝에 갈색의 점이 있었다. 그냥 점이려니 생각을 했는데 아주 크게 확대된 화면을 보니 그게 눈 같았다.

최동환 학생도 매미 애벌레의 눈일 거라고 했다. 알 속에 있는 것이 알 껍질을 투과해 바깥으로 비치는 게 아니라 알 껍질의 아주 작은 한 부위가 갈색을 띄고 있었고 그 갈색의 점은 알 속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산란 직후 처음부터 그게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지난 5월 처음으로 내가 부러진 가지에서 매미 알을 발견할 때도 그런 점이 있었다.

추측컨대 부화가 가까워 오면서 알 속의 매미 애벌레가 조금씩 애벌레 신체의 유형을 갖추어 가면서 가장 먼저 형성된 것이 눈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신체 기관들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매미 알이 약간 반 투명한 듯 해서 알의 안 쪽에 매미 애벌레의 신체가 일부 형성되었으면 비칠 법도 했는데 그런 게 없었다.

만약에 한달 안에 부화를 한다면 그리고 그 알이 이미 10개월에서 11개월 정도 된 것이라면 남은 한달 안에 각 신체 부위가 제 모습을 형성해야만 하는데 과연 열 한 달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한달 안에 가능할는지 의문이었다. 인간 태아의 경우에도 임신 5주만 지나면 이미 팔다리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하는데 부화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다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좌우지간 청년 파브르의 등장으로 나는 큰 도움을 얻고 있었다. 일단 매미 알처럼 극도로 작은 곤충을 시각적으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나 혼자서 관찰했다면 그게 뭔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갈색의 점이 곤충의 눈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역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맞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동환 학생은 미래의 중요한 한국의 파브르가 될 듯 싶었다.

6월22일

2002년 대한 민국의 6월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시간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역사의 굵직한 한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의 매미 촬영도 그 뜨거운 만큼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청년 파브르가 매미 알을 자기 집으로 가져간 지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파브르로부터 알이 부화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다고 정원의 단풍나무에 있는 산란가지를 관찰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거의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정원에 내려가 산란 흔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단풍나무의 푸르름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지만 산란 흔에는 변화가 없었다. 매일 그 모습이 그 모습이었다.

오후 5시 정도에 내 핸드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주 흥분한 목소리였다. 동환 학생이었다. 드디어 매미 알이 껍질을 깨고 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직접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본 것은 아니고 어느 순간 자세히 들여 다 보니 노란색의 조그만 매미 애벌레들이 흙 위를 막 기어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더라 빨리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동환 학생의 전화를 받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일 몇 가지를 마무리 해 놓고 나가야 하는데 좀처럼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나도 흥분해 있었다. 거의 1년을 기다려온 순간이 아닌가? 그 부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코 앞에 다가 왔는데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오후7시

대충 회사 일을 마무리 해놓고 급하게 차를 몰고 동환 학생의 집인 신반포로 향했다. 물론 차에는 카메라도 실려 있었다. 얼마 전부터 오늘을 대비해 매일 차에다 카메라를 싣고 다녔었다. 도착해서 바로 동환 학생의 집으로 전화를 하고 호수를 확인하고 카메라와 밧데리 등 장비를 챙겼다. 이 과정에서 너무 다급한 나머지 자동차 키를 뽑지 않고 문을 잠궈 버리기도 했다. 일단 차 문이 잠긴 것은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동환 학생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9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 탑승시간도 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IMG8@동환 군의 방으로 들어가니 마침 동환 학생도 캠코더로 부화한 애벌레를 촬영하고 있었다. 동환 학생은 간단하게나마 매미 알이 부화할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조그만 샤알레에 흙을 깔고 그 위에 산란 흔이 있는 가지를 올려놓고 있었다.

동환 학생은 일단 샤알레를 자세히 들여 다 보라고 했다.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었다. 매미 알만한 작고 노란색의 벌레들이 흙 위를 막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는 녀석들이 깨고 나온 알의 껍질들이 붙어 있었다.

동환 학생은 스틸과 캠코더 둘 다 촬영을 했다고 했다. 먼저 그가 찍은 스틸 사진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의 컴퓨터에는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매미 애벌레 사진들이 여러 장 있었다. 거의 컴퓨터 모니터 크기만하게 촬영해서 해상도가 아주 좋았다. 매미 애벌레들의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한 마리 성충 매미의 압축판이라고 할까? 마치 성충매미를 노란 플라스틱이나 고무로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신체 각 부위의 모습이 거의 성충 매미와 동일했다.

다리며 등이며, 머리며 크기와 비율이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똑같았다. 한가지 차이라면 땅을 뚫고 올라오던 매미 유충들처럼 성충과 달리 날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네 다리로 기어 다니는 곤충이었다. 색깔에 있어서 매미 성충이 검은색이라면 우화를 앞둔 유충은 갈색 그리고 막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들은 노란색이었다. 몸에 윤기가 나고 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의 재질이 약간 반 투명한 듯 해서 황금색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IMG9@동환 학생은 매미 알을 집으로 가지고 온 날부터 매일같이 정성을 다했다고 했다. 혹시나 너무 마른 환경 때문에 알들이 부화하는데 힘이 들까봐 스프레이로 가지에 물을 뿌려 수분을 유지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날 오후에 촬영을 하려고 유심히 들여 다 보는데 나뭇가지에 예전에 보이지 않는 노란 유충들이 기어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급히 스틸카메라로 그리고 캠코더로 촬영하고 했는데 결국 기어다니고 있는 놈들만 발견했지 나무에서 뚫고 나오는 놈들을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IMG10@나는 가져간 캠코더로 촬영을 시작했다. 동환 학생이 사용하던 스틸 카메라의 표준렌즈를 거꾸로 달아 초접사 촬영도 했다. 초접사 촬영이라 조금만 거리가 맞지 않아도 포커스가 바로 나가버렸다. 그나마 바람이 부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방안이었으므로 포커스를 맞추는 약간의 노하우를 익히자 금방 촬영에 익숙해 질 수는 있었다.

애벌레들은 샤알레 바닥에 깔려 있는 흙을 끊임없이 이리 저리 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한 자리를 잡고 흙을 파고 들어가려고 했다. 흙을 파고 들어가다가는 유리바닥에 막히게 되면 다시 올라오곤 했다. 샤알레에는 총 5마리의 애벌레가 보였다. 녀석들의 이런 행동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아마 파고 들어가 몸을 거할 지점을 찾는 것 같았는데 녀석들은 그곳에 진짜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샤알레에 깔려 있는 흙은 두께 5밀리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들이 원하는 지점은 사실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세세히 샤알레 위의 흙 표면과 나뭇가지 표면을 살펴보아도 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알은 여전히 나뭇가지의 목질 속에 들어 있는 듯 했다. 샤알레에 있는 애벌레가 총 5마리에 불과한데 나뭇가지의 산란흔 자국이 거의 10개 정도인 것으로 보아서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이 훨씬 많을 듯 했다. 한 산란 흔에 적어도 10개의 알에서 20개의 알이 들어 있다고 계산하면 아직 부화해서 나타날 애벌레가 백여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동환 학생도 애벌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지켜보았지만 결국 그 순간은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즉 어떤 식으로 부화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동환 학생의 애벌레 발견 과정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취재하고 나서 나는 그날의 촬영을 마무리했다. 동환 학생이나 나나 이날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동환 학생이나 나나 마찬가지로 부화순간을 직접 목격하는 일에 대한 기대가 여전했으므로 그러한 특별한 기억의 순간이 또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밤9시30분

장비를 대충 챙기고 동환 학생의 아파트를 나섰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나는 어서 빨리 가서 정원의 산란 흔 가지를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샤알레의 알이 부화를 했다면 실제 정원의 가지에도 산란을 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차에 와서 보니 열쇠가 꽂힌 채로 차문이 잠겨 있었다. 그제서야 동환 학생의 집으로 올라갈 때 생각이 났다.

설레는 마음에 급하게 짐을 챙기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아 키를 꽂아 놓은 채 문을 잠궈 버린 것이었다. 결국 나는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자동차 서비스에 전화를 걸고 차 앞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동환 학생 집 주변의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정원 나무의 구성이 내가 사는 잠원과 아주 유사했다. 그 정원 속에서 해질녘 매미의 우화를 관찰하는 동환 학생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는 내가 가졌던 호기심을 먼저 가지고 정원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일을 먼저 한 사람이었던 셈이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6월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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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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