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울링 포 콜럼바인의 포스터
ⓒ 마이클무어
제너럴모터스의 공장 폐쇄로 미국의 플린트라는 도시가 어떻게 황폐화되고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 인디 다큐의 걸작 <로저와 나>의 감독 마이클 무어가 75회 아카데미 시상대에 올랐다.

3월 23일(현지 시간) 미국 코닥 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다큐멘터리 피처(장편 다큐)부분에서 감독 마이클 무어와 프로듀서 마이클 도노반은 미국의 총기 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시상식장의 반전 분위기

이번 아카데미상은 이라크 전쟁 때문에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미 많은 은막의 스타들이 이라크전에 대해 미국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시상식 참석을 거부한 상태에서 진행된 시상식이었다.

세계적인 무비스타들의 화려한 의상 화려한 입장으로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곤 했던 이 행사가 이번에는 반전 시위대들로 둘러싸인 채 배우들의 조용하고도 무거운 입장으로 시작되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전주의자 수잔 서랜드와 좌파로 유명한 팀 로빈스 부부는 시상식장에 입장하면서 손을 들어 평화를 상징하는 V자로 반전시위대에 동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시상식은 반전시위대와는 별개의 반전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수상 소감으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거나 노골적으로 반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니콜 키드만은 대 이라크전 때문에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와야 할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고 <피아니스트>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애드리안 브로디도 전쟁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을 받아서 유감이고 본인 또한 영화를 만들면서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비인간성을 처절하게 느꼈다면서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 감독 마이클 무어

▲ 시상대에 선 감독 마이클 무어
ⓒ 아카데미상주최측
이날 수상자들의 수상소감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였다. 그의 수상 소감은 미국에 대해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수상 소감 중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논픽션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같이 뭉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허구의 대통령을 뽑아야만 하는 허구의 선거결과를 가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선에서 민주당과의 경합에서 재검표까지 갔던 상황과 그 결과로 뽑혀진 공화당의 대통령 부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인 듯...필자 주) 또한 우리는 그 한 사람이 조작된 이유를 내세워 우리를 전쟁터로 몰아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뭐든 간에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합니다. 부시 당신은 우리의 수치입니다. 로마교황에서부터 딕시칙스까지 당신을 반대하는 판국입니다. 이제 당신 부시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딕시칙스는 미국의 여성3인조 보컬그룹으로 얼마 전 그래미상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이 그룹이 같은 텍사스 출신이면서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이 부끄럽다고 발언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이 일로 딕시칙스는 미국 내 많은 팬들로부터 그리고 특히 텍사스주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대국민 여론 때문에 이들의 음반에 대해 방송금지결정을 내리기도 했었다.

마이클 무어는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내세우는 개전의 이유가 정당하지도 않으며 아예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의 목소리는 반전을 담은 소감을 발표하던 다른 어느 배우들의 목소리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격앙되어 있었다.

반전의 목소리를 드높인 무어가 이번 아카데미상에서 수상의 영광을 거머쥔 작품 또한 우연하게도 미국인의 폭력성을 다룬 작품이었다. 장시간 미국의 폭력성에 대한 다큐멘터리적인 고찰을 한 감독이 이번 전쟁에 대해, 그리고 이번 전쟁의 주범인 부시에 대해 내린 평가는 단순한 한 개인의 반전 의사 개진 이상으로 보인다.

독일 나치 시절 그들의 프로파겐다 역할을 하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레니 리펜슈탈. 그가 남긴 기록영화들이 아직도 걸작으로 꼽히고 있지만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감독 개인에 대한 평가는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다큐멘터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본질적으로 인류애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것인 것 같다. 무어의 반전의 기상과 그리고 부시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은 다큐멘터리스트로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 누가 올랐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은 어떤 영화인가?

마이클 무어는 코미디언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로저와 나>와 같은 미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작품으로 국내 다큐멘터리스트들, 그리고 세계 영화계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이번에 상을 받은 <볼링 포 콜럼바인>은 최근 그의 작품 속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 내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Bowling for Columbine 2002, 120min

▲ 작품 속의 한 장면-감독 마이클 무어가 전자오락실에서 권총게임을 즐기고 있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마이클무어
제작자이기도 한 마이클 무어는 이 작품에서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사건을 중심으로 미국의 총기문화와 총기폭력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총기사건을 고발하는 단순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즉 그 이면에 마이클 무어 특유의 작가적인 정신과 치열함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마이클 무어의 트레이드 마크인 위트들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마이클 무어는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두 학생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미국이 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총기폭력사건이 많은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건은 국내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했었다. 15명의 같은 학교 학생들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을 당했었다. 본인도 사건 직후 미국 언론은 무엇이 이 청소년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었는가, 사건에 대한 희생양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는 보도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작품은 해마다 1만1천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권총으로 인해 숨지고 있어 총기 소유율이 거의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해 보아도 폭력사건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아서는 총기규제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인의 영혼과 인간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라고 본인은 주장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왜 미국은 총기폭력의 최대주범이자 최대의 희생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에서 그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CC-TV에 잡힌 사고 화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미국총기협회(NRA/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회장 찰톤 해스톤의 집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무어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사건과 같은 청소년 총기 사고에 대해 언론이 항상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나 미디어의 영향의 탓으로 돌리는 현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을 위한 '요리책'(무기 제조법을 담은 책)을 보고 네이팜탄을 만든 한 젊은이 이야기에서부터 여섯 살 난 꼬마가 다른 여섯 살짜리 꼬마에게 살해된 이야기 등 여러 가지 화면을 보여준다.

미국의 다른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무엇이 이 아이들을 그리고 미국사람들을 그렇게 폭력적으로 만드는지 그 원인을 찾으러 다닌다. 그러나 무어의 노력은 달랐다. 단편적이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좌우지간 이 영화는 유머스럽기도 하지만 총기 남용에 대한 섬뜩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왜 미국 시민들의 행복 추구가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지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한 미국 사회 전체와 그들의 과거에 대한 조명이라고 볼 수 있다.

▲ 두 학생의 폭력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도된 록그룹 매릴린맨슨
ⓒ 마이클 무어
참고로 이 영화의 제목 'Bowling for Columbine'에는 콜럼바인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이 내 놓은 해석에 대한 무어의 조소가 담겨 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마치 록음악이나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몹쓸 부모들의 영향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탈선과 폭력 빠진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두 학생이 저지른 납득할 수 없는 비극은 구체적으로 이들이 즐겨 듣던 록그룹 매릴린 맨슨의 성적이고 폭력적인 음악의 영향이라는 것이었다.

매릴린 맨슨의 음악은 세기말적이고 상당히 폭력적이고 사회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어는 이들의 견해가 말도 안 되는 넌센스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에 연루된 두 학생 딜란과 에릭이 사건 당일 아침에 보울링 수업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보울링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고 그 시간에 총기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만약에 아이들이 보울링 수업에 참석했다면 사건은 벌어졌을까?

전문가들이나 언론의 견해는 아이들이 보울링수업에 들어갔다면 총기난사는 없었을 것이고 고로 이 두 아이의 극단적인 폭력성의 원인은 보울링이라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은 말도 안되는 견해라는 것이다. 즉 두 학생의 폭력성의 원인이 매릴린맨슨에게 있다고 하는 것은 보울링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넌센스라는 의미에서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고 한다.

이는 이들처럼 똑같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고 똑같은 문화적 섭취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폭력적인 행동을 표출하지는 않는다는 무어의 견해를 담고 있다. 그는 미국의 폭력성의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제목은 관객들이나 관객들의 상상력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어떤 상황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무어가 작품에서 내린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이나 미국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결론은 알 수가 없다. 본인 또한 이 작품을 보지 못했고 볼 날이 요원해 보인다. 이 작품은 무어의 작품이 항상 그렇듯이 결과를 보여주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역인과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르포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마지막에 밝혀지는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현재의 불합리한 모순에 연관된 권력, 혹은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미국사회가 어떻다는 선언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로저와 나'에서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월마트에 가면 권총 탄환을 단 몇 불에 살 수 있고, 어떤 은행에서는 고객이 신규 계좌를 개설하면 사유재산 보호 차원에서 권총을 제공하는 등등, 미국 사회는 실로 우리가 보기에는 납득이 안 되는 사회다.

이것은 어떤 개개인들의 무장화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의 무장화에 대한 욕구라고 보여진다고 무어는 생각한다. 즉 개인이 총을 가지고 싶어하고 총을 가진다고 해서 무조건 지금의 미국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사회 시스템이나 국가가 개인의 총기소유를 조장하고 그 결과 개인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서로를 쏘게 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 록히드 마틴사에서 미사일을 직접 만져보고 있다. 무어가 이곳까지 찾아간 이유는 바로 미국의 폭력성이 단순히 개인들의 무장화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마이클 무어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잡다한 정보들을 취합해서 무어의 작품에 대한 모자이크를 해보았고 그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보았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다소 진부한 결론에 도달했다. 부시가 벌이고 있는 이 전쟁의 원인 또한 무어가 내린 결론과 같은 선상에 있는 듯하다.

미국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최대의 무기 생산국이자 최고성능의 무기 생산국이다. 즉 그만큼 무기 생산이 산업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이다. 고로 이런 나라는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한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무기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번 전쟁의 본질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도 실렸습니다.

2003-03-26 09:2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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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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