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의 산란-산란관을 나무에 최대한 박아 넣은 상태에서 꼬리를 부르르 떨며 빼낸다. 이때 녀석은 알을 그 구멍안에다 놓고 있는 것이다.
ⓒ 박성호
10월24일 밤
한 20, 30분 정도 밖에 안 되는 촬영본을 거의 수백번은 더 보았다. 앞으로 돌리고 뒤로 돌리고,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매미의 꼬리가 꼼지락거리고 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대롱모양의 산란관을 박아 넣기 위해 녀석의 꼬리가 꼼지락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란관을 어느 정도 박아 넣는 작업이 끝나자 꼬리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떨고 있다기보다는 아주 짧은 주기로 꼬리를 흔들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자잘한 매미 꼬리의 떨림이 있는 동안 나뭇가지 깊숙이 박혀 있던 산란관은 조금씩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나무 가지에 박혀 있는 산란관을 빼내고 있는 동작은 일분 정도 걸렸다. 우리가 나무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을 경우 들어갈 때도 한번에 들어가지 않고 빙빙 돌려서 들어가고 빼낼 때도 빙빙 돌려서 빼내듯이 녀석도 산란관을 천천히 빼냈다. 꼬리를 부르르 떠는 이유는 아마 배 속의 알을 밀어 내는 동작인 듯 했다. 여기서 추론 할 수 있는 것은 매미가 알을 놓는 시점은 산란관을 나무에 박아 넣을 때가 아니라 빼내고 있을 때라는 것이다. 일단 산란관을 송곳처럼 이용해서 나무 목질 속에 공간을 만든 다면 그 길쭉한 공간에다 자신의 알을 제일 안쪽부터 해서 바깥쪽 방향으로 쌓아 놓았을 것이다.

녀석의 이런 행동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산란관을 빼내고 난 뒤 바로 약간 옆으로 이동하더니 다시 산란관을 나뭇가지에 박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산란관을 빼내었다. 녀석은 주위의 어떤 환경적인 변화에도 무감했다. 내가 실수로 나뭇가지를 건드렸는데도 녀석은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뭘까? 살짝 잡으려고 다가가기만 해도 날아가 버리던 녀석들이 어째서 산란할 때는 주위의 적을 무덤덤하게 받아 들이는 것일까? 녀석에게 나라는 외부의 이상한 존재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엄청 중요하든지, 즉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든지 아니면 원래부터 매미는 산란할 때 감각이 둔해지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매미의 산란은 필사적이었다. 그만큼 녀석의 삶 중에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녀석들에게도 종족보존과 번식은 우리 인간들만큼 중요한 일인 듯 했다.

산란관의 모습은 거의 매미 주둥이와 흡사했지만 조금 달랐다. 주둥이가 정말 바늘처럼 가늘게 생겼다면 산란관은 그보다는 굵었다. 굵기로 따져 거의 대 여섯 배는 됐다. 가는 축에 드는 송곳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수액을 빠는 주둥이 관을 통해서는 액체가 통과하기 때문에 그 정도 굵기면 되지만 알이 통과해야 할 산란관은 알이 통과할 정도는 돼야 하므로 조금 더 굵은 것이 당연한 듯 했다. 매미의 산란관 굵기를 보면 대충 매미 알의 크기도 추측할 수 있을 듯 했다.

또한 나무에 박는 방법은 많이 달랐다. 수액을 빨 때 매미는 주사기 바늘처럼 생긴 주둥이를 나뭇가지 표면과 수직으로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다지 깊숙이 박아 넣지도 않았다. 당연히 녀석이 수액을 빨고 나도 나뭇가지 표면에 별다른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산란은 좀 다른 듯 했다. 일단 산란관은 나뭇가지 표면에 비스듬한 방향으로 박아 넣었다. 그리고 주둥이와 달리 아주 깊숙이 나무 표면을 뚫고 들어갔다. 화면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 센티미터 정도 되는 산란관의 절반 정도가 나무 표면을 뚫고 들어갔다. 산란관은 나무 표면을 비스듬히 파고들기 때문에 나무껍질이 일어나는 것도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카메라에 찍힌 녀석의 이런 행동은 약 일곱번 정도 됐다. 녀석을 발견했을 때 이미 동일한 동작을 진행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여덟번 이상 이런 행동을 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한번에 여러 개의 알을 여러 군데에다 놓는 것이다. 정확히 한번에 몇 개의 알을 놓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화면을 통해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내가 이 화면을 무심히 넘기지 않고 세심히 보게 된 데는 내가 가지고 있던 사전 정보 때문이었다. 매미에 관심을 가지고 녀석의 일생을 기록하면서 나는 여러 책과 자료들을 접했는데 당연히 산란에 대한 정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파브르 곤충기에는 매미의 산란을 아주 자세히 묘사해 놓고 있었다. 그야말로 파브르 곤충기에서 읽은 매미의 산란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행동이었다. 달리 해석할 수가 없었다. 매미의 일생을 죽음에서부터 거꾸로 쫓아 가고 있던 나의 기록은 사실은 죽음 다음에 바로 탄생을 기록한 셈이었다. 다만 내가 그것을 인지한 것은 한창 후였던 셈이었다.

매미의 산란을 지켜 보면서 나는 몇 가지 의문에 쌓였다. 내가 여름 내내 녀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언제 교미를 했단 말인가? 사실 이 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결국 교미의 순간을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의문은 과연 녀석이 낳은 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진짜 매미로 탄생하는 것일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일년의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매미의 알은 나뭇가지 속에서 일년을 보낸 후 일령 애벌레로 탄생한다고 하니 적어도 내년 여름이 되어야 녀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날의 발견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다. 사실 매미의 산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정원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나는 이미 매미의 산란 순간을 오래 전에 본 것이었다. 다만 내가 그 이상한 매미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몰랐을 뿐이었다. 가슴 한쪽에서 너무나 기쁜 감정이 몰려왔다. 이 세상에 도대체 몇 사람이나 매미가 산란하는 순간을 보았을까? 분명한 것은 우화 같은 경우는 시골 생활한 사람이라면 아니 조금만 관심을 갖고 여름날 매미들이 살아가는 숲은 관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순간이다. 하지만 산란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산란의 순간은 정말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개중에서도 일부만이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기쁨과 뿌듯함의 실체였다.

산란 순간을 촬영한 테이프는 거의 60분짜리 한 개 정도 됐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 저리 앞뒤로 검색을 해 보아도 매미의 산란관으로 뭐가 나오는지는 찍혀 있지 않았다. 매미 녀석이 나무에다 산란관을 박고 그 안에다 알을 놓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촬영한 것은 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알을 놓는 장면의 프로필 즉 측면 샷이였기 때문에 산란관을 통해 나오고 있었을 매미 알의 실체를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매미 알의 생김새는 과연 어떨까? 파브르 곤충기에 의하면 매미 알은 길쭉한 모양이다. 그리고 색깔은 우유 빛. 이 정도의 정보가 파브르 곤충기에서 얻은 전부다. 보고 싶었다. 매미 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무 섬유질 속에 있는 알을 어떻게 촬영한단 말인가? 이건 내시경 카메라가 있더라도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의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날 녀석이 알을 놓은 나뭇가지를 다시 찾고 싶어 안달이 났다. 퇴근하자마자 정원으로 달려가 헤맸지만 정확히 그 나무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원에 있는 단풍나무가 한 두 그루가 아니었기 때문인데다 밤이라 너무 어두워 대충의 나무 생김새를 화면 속의 나무 생김새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2003-02-18 18:5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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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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