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일당 단체사진
넷플릭스
그래서 <히틀러의 이너서클>은 히틀러 한 명 이야기만 서술하지 않는다. 히틀러의 측근들(henchmen) 이야기를 골고루 다룬다. 히틀러와 그들의 수직적 관계구조, 히틀러가 그들을 얼르고 달래는 병적인 방식, 거기에다 경제적 위기에 대한 독일 국민들과 이웃나라 국민들의 감정상태가 순환하며 당대의 악을 증식시킨 정황증거를 덧붙인다. 요컨대 악의 조각들이 악 덩어리로 불어나는 과정에서 악이 순환하고 또 순환했다는 것.
물론 그 악의 순환을 가능케 한 중심동력은 아돌프 히틀러다. 그가 악의 순환고리를 작동 및 유지되도록 이끈 주요 엔진이다. 그러나 히틀러에게 홀딱 반해 그의 개인비서를 자처한 헤스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반공주의&반유대주의&편견으로 똘똘 뭉친 해괴한 아이디어를 히틀러는 감히 체계 있게 정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노하기와 눈치보기를 오가는 공군 파일럿 괴링이 없었고 히틀러에 대한 인접국 국민들의 감정이 정녕 합리적이고 공정했더라면, 이웃나라들에 대한 히틀러의 무혈입성, 강제침략에 대한 인접국들의 이상스런 침묵사태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대인이 자신의 능력발휘를 방해한다 오해한 엘리트 청년 괴벨스 박사가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월한 독일의 자존감을 위해 누군가는 지저분한 일을 헌신적으로 맡아야 한다며 유대인대학살을 조직적으로 설계한 친위대장 힘러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히틀러 체제 안에선 무자비함이 고속승진을 보장한다는 것을 간파한 친위대원 하이드리히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밀어붙이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의 열등 및 피해의식에서 독성과 악성을 골라 뽑아내준 '툴레' 사상가이자 시인 에카르트가 없었더라면, 히틀러의 절친이자 '예스맨'이었던 군비장관 슈페어가 없었더라면, 히틀러 보필을 명분으로 쟁쟁한 정적들을 밀어내고 깎아내리는 뻔뻔한 사이코패스 보르만이 없었더라면, 히틀러는 자기가 메시아 급의 인물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히틀러 주변에서 악이 순환한 이야기는, 사실 더 있다. 하필이면 나치당이 죽을 쓰고 있던 때(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되는 바람에 경제공황을 겪게 된 독일 국민들이 표를 (나치당원들도 놀랄 정도로) 나치당에 몰아주어서 나치당은 재기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히틀러 총리임명 직후 독일 국회의사당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마침 나치 외교관이 암살당했기 때문에, 유대인 혐오주의가 가공할 만큼 신속히 유럽 전역으로 퍼졌기 때문에, 거기에다 독일 민족주의자들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했기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전체주의체제를 10년 이상 강력하게 운영해갈 수 있었다. 기독교 성서에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28)"는 구절이 있는데, 히틀러 전체주의체제의 경우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악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을 듯.
<히틀러의 이너서클>은 10편에 걸쳐서 그 같은 사실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데, 다만 열거할 뿐 아니라 상호관계도 맺어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복습(!)도 시켜준다. 그래서 이 10편을 다 보고 나면 히틀러가 조직한 전체주의체제의 양상에 대한 개괄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큰 이야기가 되는 모습을 체험하게 된다. 스토리(story)들이 모여 히스토리(history)가 되는 과정의 체험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런데, <히틀러의 이너서클>이 묘사하는 악의 순환고리(Circle of Evil) 즉 히틀러 일당에게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망상(delusion)'이다. 망상이란 있지도 않은 어떤 것을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제멋대로 확신하거나, 현실을 비현실적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히틀러뿐 아니라 히틀러의 측근들에게서 망상은 가히 일상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루돌프 헤스는 나치당 형성기에 이미 히틀러의 영악한 개인비서였다.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그는 부총통(2인자)이 되었는데, 어느 날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은 채 전투기를 조종해 영국으로 날아가, 처칠을 만나 평화협상을 시도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평화협상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없는 망상가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인들은 헤스와 나치당을 조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