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이너서클>은 나치 집권기 독일의 총체적인 비인간적 만행이 히틀러라는 개인 한 명에서 비롯된 것이긴 했으나, 그가 개인의 힘 하나만으로 '그렇게 대규모로' 악행을 저지른 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 일개인을 '거대 악'으로 무심결에라도 과대포장하지 않도록 환기하는 작품이다. 

즉, 그가 불세출의 초인이거나 능력자여서가 아니라, 당대 여러 요인들의 맞물림과 어울림을 이용할 줄 알았고, 그 요인들이 악을 향해 상승하도록 비틀 줄 알았던 전체주의 지도자였기에 인류역사에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히틀러 일당 단체사진
히틀러 일당 단체사진넷플릭스
     
그래서 <히틀러의 이너서클>은 히틀러 한 명 이야기만 서술하지 않는다. 히틀러의 측근들(henchmen) 이야기를 골고루 다룬다. 히틀러와 그들의 수직적 관계구조, 히틀러가 그들을 얼르고 달래는 병적인 방식, 거기에다 경제적 위기에 대한 독일 국민들과 이웃나라 국민들의 감정상태가 순환하며 당대의 악을 증식시킨 정황증거를 덧붙인다. 요컨대 악의 조각들이 악 덩어리로 불어나는 과정에서 악이 순환하고 또 순환했다는 것. 
 
물론 그 악의 순환을 가능케 한 중심동력은 아돌프 히틀러다. 그가 악의 순환고리를 작동 및 유지되도록 이끈 주요 엔진이다. 그러나 히틀러에게 홀딱 반해 그의 개인비서를 자처한 헤스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반공주의&반유대주의&편견으로 똘똘 뭉친 해괴한 아이디어를 히틀러는 감히 체계 있게 정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노하기와 눈치보기를 오가는 공군 파일럿 괴링이 없었고 히틀러에 대한 인접국 국민들의 감정이 정녕 합리적이고 공정했더라면, 이웃나라들에 대한 히틀러의 무혈입성, 강제침략에 대한 인접국들의 이상스런 침묵사태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대인이 자신의 능력발휘를 방해한다 오해한 엘리트 청년 괴벨스 박사가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월한 독일의 자존감을 위해 누군가는 지저분한 일을 헌신적으로 맡아야 한다며 유대인대학살을 조직적으로 설계한 친위대장 힘러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히틀러 체제 안에선 무자비함이 고속승진을 보장한다는 것을 간파한 친위대원 하이드리히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밀어붙이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의 열등 및 피해의식에서 독성과 악성을 골라 뽑아내준 '툴레' 사상가이자 시인 에카르트가 없었더라면, 히틀러의 절친이자 '예스맨'이었던 군비장관 슈페어가 없었더라면, 히틀러 보필을 명분으로 쟁쟁한 정적들을 밀어내고 깎아내리는 뻔뻔한 사이코패스 보르만이 없었더라면, 히틀러는 자기가 메시아 급의 인물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히틀러 주변에서 악이 순환한 이야기는, 사실 더 있다. 하필이면 나치당이 죽을 쓰고 있던 때(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되는 바람에 경제공황을 겪게 된 독일 국민들이 표를 (나치당원들도 놀랄 정도로) 나치당에 몰아주어서 나치당은 재기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히틀러 총리임명 직후 독일 국회의사당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마침 나치 외교관이 암살당했기 때문에, 유대인 혐오주의가 가공할 만큼 신속히 유럽 전역으로 퍼졌기 때문에, 거기에다 독일 민족주의자들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했기에, 히틀러의 나치당이 전체주의체제를 10년 이상 강력하게 운영해갈 수 있었다. 기독교 성서에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28)"는 구절이 있는데, 히틀러 전체주의체제의 경우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악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을 듯. 
 
<히틀러의 이너서클>은 10편에 걸쳐서 그 같은 사실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데, 다만 열거할 뿐 아니라 상호관계도 맺어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복습(!)도 시켜준다. 그래서 이 10편을 다 보고 나면 히틀러가 조직한 전체주의체제의 양상에 대한 개괄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큰 이야기가 되는 모습을 체험하게 된다. 스토리(story)들이 모여 히스토리(history)가 되는 과정의 체험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런데, <히틀러의 이너서클>이 묘사하는 악의 순환고리(Circle of Evil) 즉 히틀러 일당에게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망상(delusion)'이다. 망상이란 있지도 않은 어떤 것을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제멋대로 확신하거나, 현실을 비현실적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히틀러뿐 아니라 히틀러의 측근들에게서 망상은 가히 일상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루돌프 헤스는 나치당 형성기에 이미 히틀러의 영악한 개인비서였다.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그는 부총통(2인자)이 되었는데, 어느 날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은 채 전투기를 조종해 영국으로 날아가, 처칠을 만나 평화협상을 시도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평화협상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없는 망상가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인들은 헤스와 나치당을 조롱했다. 
 
 스크린샷: 헤르만 괴링
스크린샷: 헤르만 괴링넷플릭스
  
또, 헤르만 괴링은 한겨울 소련과의 전투 중 소련 지역에 고립된 독일군에게 일명 '에어브릿지'를 놓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전투기와 전투기 조종사를 택배활동으로 전용할 수 있다는 망상적 주장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이 주장이 히틀러에게 먹혔다. 그러나, 전투기는 화물비행기가 아니었기에 당시 군인들에게 필요한 절대적 배달물량을 채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때에 독일군 전사자 중에는 총과 포탄으로 사망한 독일군만큼 굶어죽은 독일군이 많았다.   
 
유대인 대학살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던 하인리히 힘러도 망상 분야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는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독일이 수세에 몰리게 되자, 이제까지 해오던 망상을 한 단계 격상했다.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 수천 명을 연합군과의 협상재료로 쓰려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유대인들을 풀어주면 연합군 측이 자신을 선처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수백 만에 달하는 유대인의 생명과, 그 생명에 가한 자신의 범죄가 얼마나 막중한지 생각할 줄 모르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지 싶다.  
 
그리고 박사학위는 발로 땄는지 요제프 괴벨스 박사의 망상도 위의 사람들 못지않게 중증이었다. 히틀러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도 따라 자살했다. 추후 발견된 그의 일기장엔 "히틀러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셀 수 없이 적혀있었단다. 또, 우직한 동성애자 에른스트 룀은 동성애혐오자들이 우글대는 나치당 안에서 그리고 히틀러의 묵인에 의거해 생존하다가 결국 남자들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자신의 입지에 대한 과대망상이 그를 쓰러뜨린 게 아닐까 싶다. 
 
 스크린샷: 요제프 괴벨스
스크린샷: 요제프 괴벨스넷플릭스
   
 스크린샷: 에른스트 룀과 히틀러
스크린샷: 에른스트 룀과 히틀러넷플릭스
  
이외에도 히틀러 측근의 망상 사례는 더 있다. <히틀러의 이너서클>에 말 그대로 잔뜩 나온다.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기상천외한 망상(피해망상, 과대망상)이 종합세트처럼 펼쳐진다. 그런 망상가들이 한데 모여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을 이끌었다니, 그게 정말일까 의아할 정도다. 그러나 그 망상가들이 독일을 이끌었고 유럽을 처참한 전쟁터로 만들었으며 유대인을 참혹한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그건 그들의 정치력이 출중해서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마이클 린치(Michael Lynch) 박사에 따르면, 히틀러 일당이 그런 무자비한 전쟁범죄를 자행할 수 있었던 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그때 거기에' 상황이 조성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분노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글부글하던 때에 경제공황이 일어났다. 그때 그들은 자기가 겪는 불행을 합리적, 객관적으로 성찰하겠다는 힘을 내지 않았다.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누구 '탓할 대상'을 찾기 시작한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들이 '탓할 대상'으로 찾아낸 사람들이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였다. 찾아낸 유대인이 공산주의자라면 곱절로 혐오했다. 그 무렵 그 같은 혐오 분위기를 타고 기괴한 망상가들 집단, 히틀러 일당이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히틀러 일당은 그들 스스로 그럴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시대와 상황이 함께 만들어낸 '괴물'일 수 있다. 합작품 괴물인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히틀러 일당을 그들 각각의 개성과 시대(상황)의 산물, 즉 합작품 괴물로 환기하는 것은 히틀러를 비롯하여 나치당 지도부를 장악했던 개인들을 면죄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추상적 의미의 '시대&상황'에 일정 정도 책임을 묻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히틀러 일당과 같은 망상집단의 출현과 폭주를 막을 방법은, 한 사회가 개인들의 망상을 검토하는 '합리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즉 우리의 사회가 정치경제사회적 불행에 대하여 개인들 스스로 합리적, 객관적 성찰을 성실히 진행할 수 있는 건전한 분위기를 지녀야 한다는 점을 짚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주제의식이 지닌 미덕 때문에 나는 비록 '옥에 티'처럼 간간이 나타나는 한글자막의 몇몇 오역에도 불구하고(예: Hitler's pet project는 '히틀러의 애완동물 프로젝트'로 번역하면 안 되고 '히틀러가 애착을 갖는 프로젝트'라고 번역해야 함), 이 작품의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이너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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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위즈덤하우스), 해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지식공작소), 환경살림 80가지(2022세종도서, 신앙과지성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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