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홍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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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슬기 감독이 영화를 구조화하기 위해 모녀를 활용하고 있는 방식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두 인물을 직접 부딪치게 만들어 사건과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이 놓인 상황을 마찰하도록 엮는다. 인물이 직접 부딪힐 때 감정은 즉발적이고 단면적으로 드러나지만, 상황에 의해 엮이게 될 때는 그보다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뭉근하고 꾸준하게 점진적으로 쌓인다. 이렇게 마련된 감정은 특정한 때에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일며, 원인이 되는 마음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놓인 온갖 묵은 부정적인 감정까지 이끌어낸다. 여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나 화해가 놓일 자리는 마련될 수 없다.
두 모녀의 관계에서만 표현되는 부분이 아니다. 엄마를 온전히 돌볼 수 없는 홍이를 대신해 낮 동안 도움을 주고 있는 해주 이모 역시 홍이에게 그런 비슷한 감정을 쌓아간다. 선의로 시작한 호의를 마치 자신의 권리인 양 행동하는, 자신의 상황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듯한 홍이의 모습으로 인해서다.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서도 인물 사이의 충돌 이전에 각자의 상황이 먼저 맞부딪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상황적 충돌의 중심에는 치매가 시작된 엄마 서희가 있다. 그녀가 홍이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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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사실은 일방적으로 홍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30대 여성의 삶에도 구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있다. 화목한 가정, 안정적인 경제력, 그리고 편안한 이성. 누구나 바라는 너무나 당연한 바람이다. 그녀도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구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최소한의 방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바짝 엎드린 상태에서. 이마저 비난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여러 문제를 더욱 키우는 일에는 홍이라는 인물이 가진 명확하지 못한 성격이 한몫한다. 엄마와의 관계는 물론, 이모 앞에서도, 심지어 오픈 채팅으로 만난 남성에게도 그는 솔직해지는 대신 자신의 일부를 감추는 선택을 한다. 이런 종류의 거짓이 잠깐의 시간을 벌어다 주는 대신 언젠가 이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폭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마다 그런 모습이 되고 마는 것은 역시 그의 성격 자체에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다. 이에 대해서 영화가 별개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의 그런 성격은 엄마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또 한 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