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첨벙>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나 여기 코치 준비하고 있어. 그런데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대."
그런 그녀에게 영화가 나아갈 최소한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장면은 센터에 수영 강사 육아휴직 대체 인력 공고가 붙는 지점이다. 세은은 서랍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수영복을 하나둘 꺼내 입어보기도 하고, 중고 수영복을 사기도 하며 감춰 놓았던 수영에 대한 꿈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수경의 강사증(출입증)을 훔친 세은이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의 수영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한 장면이다. 오프닝 신에서 어둡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청소를 이어갔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에게 수영이 어떤 의미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일이 상상처럼 풀리는 것은 아니다. 들뜬 마음으로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데스크에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공고가 취소되었다고만 알려오고, 수영을 멈출 수 없었던 세은은 강사증을 훔친 사실을 수경에게 들키게 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그는 수경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마저 알게 된다. 강사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임신을 피해야 했던 수경과 아이를 갖기 위해 수영을 포기했던 세은의 교환이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감춰줘야 할 일이 하나씩 생긴 셈이다. 이 장면의 완성을 위해 두 인물은 처음부터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04.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세은이 수영을 포기하고 센터의 청소부 자리를 받아들여야 했던 이유, 수경의 강사증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지금 강사로 일하고 있는 수경조차 자신의 임신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이유는 모두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순리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상황을 사회적으로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기에 감추거나 피할 수밖에 없는, 그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속여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되는 인물이 이 작품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현실의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극적 장치를 조금 더 강하게 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심인물인 세은은 그 모든 문제로부터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며, 수경은 그 곁에서 이를 한 번 더 강조해 내는 역할로 실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수경이 임신으로 강사를 그만두고 그 자리의 공고를 통해 세은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에 연대와 극복의 의미보다 안타까운 감정이 먼저 앞서는 것은 분명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