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영혼의 여행>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시겠습니까?"
영화는 아버지의 유언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아들 하야토를 따라 두 사람이 나서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혼하면서 두고 간 서퍼 보트를 되돌려주고 싶다는 바람이다. 두 사람은 생전에 밴드를 함께 했고 엄마는 리드보컬을 맡았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하야토를 가지게 된 엄마는 중절하고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했지만, 남편인 유조의 반대로 출산과 함께 그만두게 되었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 모두에게는 이겨내지 못한 마음의 자리가 하나씩 놓여 있다. 지금 세상을 떠난 상태로 하야토를 따라다니고 있는 클레어와 유조에게도 마찬가지다. 클레어에게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가족을, 특히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남아 있다. 유조에게는 반대로 아내의 커리어를 꺾은 일에 대한 것과 그로 인해 아들로부터 엄마를 빼앗은 일에 대한 마음의 짐이 남는다.
하야토는 20년 전 자신이 연출했던 작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머무는 상태다. 아버지의 유언을 모두 이뤘다는 생각이 들 즈음의 극단적인 선택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연출했던 <추억의 벽> 속 주인공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일종의 오마주이자 스스로 가장 강렬했던 시간에 대한 회고처럼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혼인 상태로 그의 곁을 맴돌던 클레어에 의해 저지되고 그 장면은 모두에게 회복의 의미를 갖는 장면이 된다.)
04.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영체화를 시도하는 것과 함께 '오본(Obon)'이라는 일본의 전통 명절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양력으로 8월 15일에 기념하는 한 여름의 명절이자 축제인데, 영혼이 지상으로 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고, 연기를 피워 모시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극 중에서는 이날이 '영혼의 여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시작점이자 모티브로 활용되고 있다. 이승을 떠난 존재가 자신의 자리로 잠시 되돌아오는 날과 지금 영혼이 되어 이승을 떠돌고 있는 클레어와 유조의 모습이 겹치면서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 이면에 어떤 한 존재와 사건이 지닌 양면에 대한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과거와 현재, 바람과 현실, 믿음과 경험, 그리고 생과 사의 측면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많은 지점이 그렇다. 하야토가 엄마의 선택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던 날 밤에 듣게 되는 사실 또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두 영혼이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의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이승을 유영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그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양쪽을 분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면의 합이 아니라 더욱 가까운 곳에, 서로 상호작용하며 얽혀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