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위대한 감독 중 하나로 손꼽힌다. 대표작은 <페르소나>(1966). 극 중 두 인물을 통해 인격의 교환과 경계에 대한 모호성과 인간의 내면성에 대해 펼쳐 보였다.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를 연출한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은 바로 그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까지 수상하며 할아버지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다. 6살 소년 아르망의 엄마 엘리자베스(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아들의 문제와 관련한 긴급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소환된다. 회의에는 다른 학생의 부모 역시 함께 참석하기로 돼 있지만, 이 자리가 아들의 어떤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지에 대해서 사전적인 정보를 얻지는 못한 상태다.
한편, 신임 교사 순나(테아 람브레크츠 베울렌 분)는 이 회의를 진행해야 할 임무를 맡는다. 교장은 그에게 학교를 대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견이나 개인적인 입장을 최대한 멀리하라고 주문하지만, 순나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또 다른 학생 욘의 부모인 사라(엘렌 도리트 페테르센 분)와 앤더스(엔드레 헬레스트베이트 분)가 학교에 도착하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아들 아르망이 욘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02.
"어린애잖아요. 아직 어린애라고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긴장은 아르망이라는 소년으로부터 시작된, 아니 어쩌면 소년이 받고 있는 오해로부터 시작된 양측의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소년이 받는 폭력에 대한 의혹이 '오해'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아서다.
문제를 제기한 욘의 부모 역시 아들인 욘의 진술에밖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며,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나선 학교 측 역시 다른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에게도 사건을 제일 먼저 발견한 교내 청소부의 진술이 전부다. 그 진술 또한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 피해자로 여겨지는 욘의 진술에 기대고 있다.
이제 양측의 대결은 허상 위에서 벌어진다. 아들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 가야 하는 사라와 앤더스. 그리고 역시 아들 아르망을 학교 폭력 가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의 주장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엘리자베스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이 사건의 당사자인 두 소년을 카메라 앞에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각자 아이들의 진술을 두둔하기만 하는 진창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하나, 어린아이들을 소비하고 전사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또 하나다.
이제 남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양측의 갈등을 점차 쌓아나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사건의 중재자이자 학생의 처분권을 갖고 있는 학교 측이 필요해진다. 이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의 힘에 기대기 위한 학부모 측의 접근 역시 이 과정에서 행해진다. (신임 교사인 순나의 어리숙함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하나, 처음에는 감춰져 있던 사실 하나가 초반부를 지나며 이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친한 친구 정도로, 사생활의 영역에서는 완전히 분리돼 있을 줄 알았던 엘리자베스와 사라 가족이 훨씬 가까운 관계라는 것이 드러나면서부터다.